숙맥, 감추는 병

이시형 박사 집필 도서 '숙맥도 괜찮아 용기만 있다면'

by 이시형박사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숨기며 산다.
작은 실수 하나, 사소한 허물 하나도 덮어두고 싶어 한다.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런 태도 역시 따지고 보면 체면에서 비롯된다. 자기 신상에 관한 문제는 물론이고, 가족과 가문, 심지어 조상 이야기까지 숨기려 드는 심리가 우리에겐 깊이 배어 있다.


학력을 감추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낙제한 이야기, 입시에 실패한 일, 실연당한 경험도 체면상 쉽게 말하지 못한다. 문제는 한 번 숨기기 시작하면 계속 숨겨야 한다는 점이다. 거짓말 하나가 또 다른 거짓말을 부르고,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느라 정신은 늘 긴장 상태가 된다. 그렇게 쓰이는 에너지가 얼마나 큰지, 당사자는 잘 모른다. 그 결과 인간관계는 늘 피곤해진다.


이런 상태가 심해지면 대인기피로 이어진다. 혹시 들통이 날까 전전긍긍하고, 사람들이 웃기라도 하면 나를 비웃는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해진다. 심한 경우 피해망상으로까지 발전한다. 집안에 창피한 일이 생기면 가문 전체의 체면이 깎일까 두려워 숨기기에 급급하다. 예전에는 족보를 돈 주고 사는 사람도 많았고, 집안이 빈약할수록 골동품이나 대형 백과사전을 진열해 체면을 세우려 했다.


그런데 진짜 큰 사람은 다르다. 정말 자신 있는 사람은 숨길 것이 없다. 돈이 없을 때는 족보도 팔아먹는다는 말처럼, 체면보다 실체를 중시한다. 누구나 솔직한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솔직해지지 못하는 모순을 안고 산다. 하지만 사람은 커질수록 솔직해질 수 있는 배포가 생긴다.


정몽주는 자신의 인간적인 실수를 숨기지 않았다. 정주영 회장의 회고록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도 그 솔직함 때문이다. 학력도, 실패도, 부끄러울 수 있는 과거도 그대로 털어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솔직함이 그의 체면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적인 신뢰를 더했다.


정주영 회장이 자주 했다는 말이 있다.
“해봤어요?”
자신이 없고 망설여질 때, 해보지도 않고 물러서려는 사람에게 던진 질문이다. 이 말 한마디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은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자란다. 실패가 없다는 사람은 바보이거나 거짓말쟁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걱정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무시당하지 않을까, 약점을 잡히지는 않을까, 체면이 상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대부분 기우다. 실수담이 오갈 때 분위기는 오히려 부드러워지고, 인간적인 온기가 생긴다. 지나고 나면 웃으며 꺼낼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될 뿐이다.


현대 사회는 바쁘다. 당신의 실수담을 오래 기억해줄 만큼 한가한 사람은 없다. 숨기고 버티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그만큼 마음만 무거워진다. 차라리 솔직해지는 편이 낫다. 그래야 사람을 만날 배짱이 생긴다.

체면이라는 허식을 하나씩 내려놓아 보자.


감추는 병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어깨가 펴지고 사람이 편안해진다.
솔직함은 약점이 아니라 힘이다.
숙맥처럼 숨기며 사는 삶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갈 용기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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