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함은 나약함이 아니다.

이시형 박사 집필 도서 '숙맥도 괜찮아 용기만 있다면'

by 이시형박사

섬세함은 나약함이 아니다: ‘숙맥’이라 불리는 아이의 뇌를 지키는 법


많은 부모가 아이의 예민함을 마주할 때 불안을 느낀다. 작은 일에도 쉽게 울음을 터뜨리고, 타인의 시선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며, 새로운 환경 앞에서 머뭇거리는 아이를 보면 “저렇게 약해서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걱정이 앞서기 마련이다. 그래서 흔히 선택하는 처방이 바로 ‘강하게 키우기’다. 아이를 일부러 거친 환경에 노출하거나, 감정을 억누르라고 다그치며 세상의 매운맛을 미리 보여주려 애쓴다.


하지만 뇌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대단히 위험한 오해에서 비롯된 선택이다.


뇌가 약한 것이 아니라, 안테나가 예민한 것


우리가 흔히 ‘숙맥’ 혹은 ‘섬세한 아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뇌는 결코 약하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 아이들의 뇌는 타인의 표정, 공간의 분위기, 미세한 자극을 남들보다 훨씬 더 빠르고 깊게 받아들인다. 뇌의 안테나가 고성능으로 설계되어 늘 열려 있는 상태인 셈이다.


문제는 이 섬세한 안테나를 향해 부모가 “왜 그것밖에 못 하니?”, “그 정도로 주눅 들지 마라”라는 부정적인 메시지를 반복해서 보낼 때 발생한다. 아이의 뇌는 부모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부모의 다그침이 반복되면 아이의 뇌는 세상을 ‘위험하고 적대적인 곳’으로 규정짓기 시작한다.


불안의 뇌는 커지고, 조절의 뇌는 위축된다


부모의 강압적인 태도는 아이 뇌의 편도체(불안과 공포를 담당하는 부위)를 과도하게 활성화한다. 늘 긴장 상태에 놓인 뇌는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보호하려 든다. 이 과정에서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의 기능은 점차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아이의 내면에서는 소리 없는 붕괴가 일어난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틀린 것인가?’, ‘나는 정말 쓸모없이 약한 사람인가?’라는 자기 검열에 빠지는 것이다. 결국 아이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길을 택한다. 겉으로는 얌전하고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보일지 몰라도, 속으로는 평생을 긴장과 불안 속에 살아가야 하는 ‘내면의 위기’를 겪게 된다.


강함이란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것


부모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섬세함은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라, 특별하게 다뤄줘야 할 고귀한 자질이다. 아이를 강하게 키운다는 것은 아이의 타고난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예민한 감각을 지닌 아이가 세상과 안전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부모가 든든한‘완충 지대’가 되어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다.


“세상은 버텨야 하는 곳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탐색해도 되는 곳이다.”


부모가 이 믿음을 아이에게 심어줄 때, 아이의 뇌는 비로소 안정을 찾는다. 섬세한 아이는 자기만의 속도를 존중받을 때 비로소 타인의 아픔을 깊이 공감하고, 세상을 정교하게 읽어내는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아이의 섬세함을 나약함으로 오해하지 마라. 그 섬세함이야말로 아이가 세상을 향해 뻗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촉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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