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기 위해서.
모닝 페이지 둘째 날.
오늘도 어김없이 알람이 울렸다. 뜨르르 뜨르르르. 뜨르르르. 뜨르르... 눈을 뜨는 것이 몹시 힘들어 아, 고작 작심 이틀인가! 더 잘까? 잠시간 고민했다. 그래도 나 세루코. 고작 잠에 질쏘냐! 어제와는 조금 다른 속도였지만 (한참 느렸지만) 그래도 몸을 일으켰다. 떠지지 않는 눈으로 비몽사몽 흐느적흐느적거리며 차 한잔 우려 와서는 책상 앞에 철푸덕 앉아서 모닝 페이지를 써 내려갔다. 뭐라고 썼더라. 기억도 안나. 너무 졸렸던 거지.
졸려서 이리저리~ 이 생각 저 생각~ 휘갈겼는데, 휘갈기다 보니 오늘은 거대한 인정 욕구가 마치 태산처럼 높이 솟아 나를 은밀히 공격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어떤 한 시기에 아주 굳세게 토라져서, 매듭이 꽁꽁 묶여 풀지 못한 채 외면해버린 관계가 있었는데, 오늘 아침엔 불현듯 그 관계가 떠올랐다. 왜 떠올랐는지, 무엇을 해결하고 싶었던 건지 잘은 알 수 없었지만(졸렸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이나 휘갈기다 보니, 그 과정 안에서 어렴풋이 답을 찾게 됐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거듭하다가 내가 다다른 곳에는, 인정받고 싶었던 연약한 내가 새침하게 앉아있었다. 인정받고 싶었던 시점에 인정받지 못한 경험이 몇 차례 쌓였는데, 나 또한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했기에 서로를 할퀴고 아픔을 주고받게 된 듯싶다.
'아, 나 인정받고 싶었구나. 내가 가진 생각과 마음을 고스란히 인정받고 싶었구나. 그 인정에 기대어 살고 있었구나. 그래서 나는 타인과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자유롭지 못했구나.'
누군들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겠냐만은, 한 꺼풀 알았으니 한 꺼풀 가벼워지겠지 생각했다.
모닝 페이지 분량을 채우고 미사를 봉헌했고, 상쾌한 마음으로 돌아오면서 엄마와 집 근처 빵집에 들렀다. 나는 본디 올리브 치아바타 빠순이다. 어느 빵집에 들어가건 올리브 치아바타가 있으면 무조건, 정말 무조건 1순위로 고른다. 이 빵집에는 내 마음속 1위 올리브 치즈 치아바타가 이미 팔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올리브 치아바타를 사지 않았다. 매번 선택하는 것만을 선택하던 조금은 지루한 삶을 살아왔기에, 조금 다른 선택들로 내 삶을 다른 색채로 물들여보고 싶었다.
올리브 치아바타는 무화과 크림치즈 치아바타로. 기본 시오빵은 트러플할라피뇨시오빵으로.
고작 빵 두 개를 원래 먹던 것에서 바꿨을 뿐인데, 뿌듯한 통쾌함이 밀려들어왔다. 혹자는 고작 이런 걸 가지고 뿌듯에 통쾌까지 느끼다니- 신기하게 혹은 이상하게 바라볼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나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어쩌면 작은 변화가 가져올 거대함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여태껏 올치순이(올리브치아바타순이)가 빵집에서 올리브 치아바타를 발견한 것이 100번이라고 치면, 거기서 타의로 다른 빵을 골라 먹은 것은 다섯 번 미만일 것이다. 진짜 못해도 90퍼센트의 확률로 언제나 올리브 치아바타를 골랐던 올치순이가 자의로! 제 의지로! 제 선택으로! 올리브 치아바타가 아닌 다른 치아바타 빵을 고른 것은 아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이 것은 올치순이 살아생전 최초의 일이며,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뜻하는 것이다. 거기에 덤으로 트러플할라피뇨시오빵...? 무조건 베이직한 메뉴를 고르는 것 또한 오랜 습관이다만, 시오빵 옆에 있는 트러플 할라피뇨 시오빵을 고르다니. 아, 이건 진짜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무려 트러플+할라피뇨+소금...과연 세루코. 과감했다. 스스로에게 감탄하다.)
앞서 말했듯 그저 다른 선택이 하고 싶었다. 딱히 무화과 크림치즈 치아바타가, 트러플할라피뇨시오빵이 어마어마하게 먹고 싶었다기보다, 늘상 호기심이 일어도 굳이 선택하지 않았던 나의 고착화된 패턴에 제동을 걸고 싶었다. 호기심이 이는 쪽으로 걸음을 옮겨 보자. 다른 쪽으로 한 번 걸어보자. 다른 쪽으로 조금이라도 옮겨가면,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세상이 보일 테니,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세상에 살게 될 테니, 아주 조금이라도 넓어진 세상에 살게 될 테니. 희망하면서 말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우선 무화과 크림치즈 치아바타는 말이지. 아... 그것은 말이다. 그것은! 그것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전-혀- 아니었다. 맛이 없는 것은 분명 아니었는데, 뭔가 굉장히 달았다. 그리고 나에게 단 치아바타는 곧 싫음으로 직행했다. '엄마, (초코 빼고 젤리 빼고 사탕 빼고) 나는 단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나 봐.' 두어 조각 씹어 물면서 아, 정말 이건 아니다 싶어 내려놓았다. (엄마는 '그러게, 정말 다네?' 말씀하시면서도 몇 조각을 더 집어 드셨다. 엄마에게는 취향이었던 모양이지.) 그리고 트러플할라피뇨시오빵. 이것은 정말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성공적이었고 꽤 로맨틱한 맛이었다. 빵을 베어 물자 확 퍼지는 트러플 향이 아주 묘하게 고소했고 가끔 있는 할라피뇨가 느끼함을 잡아주었고 감질나게 뿌려져 있는 소금덩이가 제값을 톡톡히 했다. 이것은 취향. '아, 이거 선택한 나 칭찬해 칭찬해, 정말 칭찬해!' 하면서 내 몫을 와구와구 먹었다.
다른 선택을 하고 보니 말이다. 별 게 아니었다. 맛이 조금 없어도 별 일이 아니었다. 그냥- 아, 이건 내 취향이 아니구나 알아차림만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 무화과 크림치즈 조합은 피해야지 기준 하나가 생겼을 뿐이었다. 올리브 치아바타를 향한 애정에 확신이 생겼을 뿐이었다. 설령 당장에 조금 실패처럼 보이는 일이 벌어졌다고 할지라도 자그마한 변화들을 얻어내지 않았는가.
아, 아니 이 말을 고치고 싶다.
그냥 조금 다른 상황이 펼쳐졌을 뿐이다. 선택이 달라서 행동이 달라졌던 것뿐이고 그에 따른 결과가 달랐고 그 순간의 만족도가 그러하였던 것뿐이다. 그 순간엔 '더'도 '덜'도 없다. 오직 이 순간만을 살고 있다면 만족도가 더 높을 수도, 더 낮을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오로지 이 순간만을 충실히 살고 있다면, 매번 그 순간 내리는 선택은 그 순간의 유일한 선택일 것이며, 그 선택에는 사실 비교가 존재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판단이라는 것은 과거를 가져오거나 미래를 내다보았을 때, 그러니까 현재에 없을 때, 그때 가능한 것이었다. 과거도, 미래도 없이 현재뿐이라면, 정해진 정답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어쩌면 나의 제한된 선택은 현재에 살지 못하고 때론 과거에, 또 때론 미래에 묶여있었기 때문이리라. 실패하지 않고 싶은 마음으로 과거에 기대거나, 미래를 의식하면서 여태껏 한정적인 선택들로 삶을 이루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 미래엔 한정적인 선택들로 이어진 제한된 행복이 넘실거릴 뿐이었을지도. 분명 이 시간은 저 시간으로 이어지지만,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지금 뿐이므로, 그저 지금을 경험하도록 해야겠다. 최소한 빵을 고르는 것이라도 말이다.
원래의 회로에, 원래의 사고 회로에, 원래의 행동 회로에 일부러 다른 것을 더해보는 것이 어쩌면 현재를 충실히 사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 현재의 삶으로 떠오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보다 현재에 충실하기 위하여, 일부러 다른 선택을 하기로 한다. 쉽게 되지 않을 테니 연습해보기로 한다.
언젠가 죽을 때는 말이야, 이 순간에 존재하며 죽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