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쾌, 환멸, 환영의 모닝 페이지
모닝 페이지 첫째 날.
오랜만에 알람을 듣고 잠에서 깼다. 보통 촬영이 없는 경우에는 알람을 맞춰놓고 자지 않는데, 일이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많았으니 알람을 듣고 깬 건 정말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는 유형의 사람은 아닌지라 평소보다 두어 시간 일찍 깬 셈이다.) 아직 해가 채 뜨지 않은 시간, 캄캄한 방에서 뜨르르르 뜨르르르 요란하게 울려대는 알람 소리에 미처 상황 파악도 하지 못한 채 꿈과 현실의 어스름한 경계에서 소리를 인식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이게 무슨 소리지, 이게 무슨 소..ㄹ... 소리의 근원지가 핸드폰인 것을 알아채고 핸드폰 알람 화면을 끄면서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순간 의식이 되돌아왔다.
아, 맞다. 나 오늘부터 부지런한 미라클 모닝 하기로 했지!
한치의 고민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 우선 첫날이지 않은가. 첫 째날부터 조금만 더 자자 느적거리기에는 어제의 다짐이 꽤나 굳건했다. 보통은 눈을 뜨고 간밤에 온 카카오톡을 확인하고, 그것을 확인하다 보면 하나하나 답장을 하고 싶고, 답장을 하다 보면 지난밤 대화로 생각이 이어졌고, 그러다 보면 대화에서 주로 다루던 토픽으로 연결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쩔 땐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어쩔 땐 넷플릭스를 켜기도 하고. 그렇게 밍기적 밍기적 눈만 뜬 모닝을 침대에 딱 달라붙어 누렸던 시간이 많았었다. 오늘은 이제까지의 보통의 아침이 아니니까, 알람을 끈 핸드폰은 잠시 옆에 치워두고 모닝 페이지를 하러 책상 앞에 앉았다. 아, 그전에 따뜻한 차 한잔 우려와 책상 위에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아직 뭔지 모를 모닝 페이지를 쓰기 시작했다.
첫 모닝 페이지는- 뭐랄까, 불쾌, 환멸, 환영. 이렇게 요약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평소에 나는 쓰기와 친한 편이다. 말보다 쓰는 편이 훨씬 쉽고 편할 정도이다. 일기는 생활화되어있고,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무언가를 마구잡이로 써 내려가면서 내 무의식이 드러나는 경험도 좋아한다. 그렇게 문제가 눈에 드러나서 정리되는 걸 정말 정말 좋아한다. 나는 쓰기의 힘을 굉장히 신뢰하고 있으며, 삶에서 기록하는 시간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는 시간은 나에게 기도와 명상과 같았고, 그 시간 동안 나는 나를 가장 자유롭게 놓아주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모닝 페이지를 쓰면서, 나는 여태껏 내 글쓰기에 '검열관'(잠재의식의 억압력)이 있었음을 깨닫고 말았다. 고작 한 장도, 아니 반 장도 채우지 않은 시점에.
내 안에서 뻗쳐 나오는 자유로운 생각에 제동을 거는 것들에 '엑스표'를 치라는 아티스트 웨이 책의 내용에 따라 '검열관'을 의식의 영역에 두었더니, 내가 쓰는 일기에 '검열관'이 있었다. '검열관'을 의식했더니 그냥 있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까. 이제까지는 파란색을 몰라서 뭐가 파란지 몰랐다가, 아예 생각조차 않고 살다가, 파랑이 뭔지 알게 되니, 하늘도, 바다도 사실 파란색이었네- 알아버린 것처럼. 하늘이 하늘 그 자체 보다도 '파란색'으로 인식되는 것처럼. 갑자기 온 세상의 파란색이 눈에 띄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파랑이 쏟아져 보이는 것처럼. 그냥 검열관의 존재를 알았더니, 검열관이 쏟아졌다. 반 장을 쓰는 동안,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저기에서도 여기에서도 검열관은 쉴 새 없이 나타났다.
어느 순간부터 내 일기엔 다짐이, 희망이 많았다. 달리 말하면 온통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밝아야만 하는 아이가 끝맺는 인사를 하고 있었다.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려는 아주 작은 걸음들의 가치, 그렇게 살고자 다짐하고 그쪽에 희망을 두는 태도로 점철된 일기. 물론 거짓말은 아니었다. 어느 상황에서고 희망할 거리를 찾는 능력은 내가 사랑하는 나의 재능이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을 거라고 나 자신을 안심시키고, 검열관을 애써 지우고 흘러나오는 대로 휘갈긴 모닝 페이지에서 내가 써 내려갔던 것은 어젯밤 내가 써 내려간 정돈되고 따뜻한 일기와는 사뭇 달랐다. 비난과 짜증, 합리화와 우울, 그리고 어떤 분노. 페이지가 한쪽을 넘어가고 그다음 장에서도. 부정적인 펜질이 멈추질 않았다.
이 모든 것이 흘러갔어야 할 감정들이었구나. 휘갈기면서 깨달았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다 그 자체로 정당했는데, 그 자체로 받아들여줬어야 했는데, 어쩌면 그래야 흘러갈 수 있었을 텐데. 희망하고 사랑하려고 애썼던 태도는 부분만 진실이었다. 멀리서 보면 철저하게 위선이었고 내 위선이 나를 아프게 했던 모양이다. 차라리 마음껏 미워하고 증오했으면 나았을까. 묵어있는 미움이, 설움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해서 내 안 여기저기에 고여 있었다. 나에게 깊이 부정당한 채 떠돌고 있었다. 사랑하려고 애썼는데도 쉽게 사랑할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아주 애썼기 때문이었으리라. 아주 애를 써서 슬픈 마음을, 미워하는 마음을 눌러놓았기 때문이리라. 모닝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채우면서 앞으로 얼마간은 이렇게 계속해서 쏟아내겠구나. 이렇게 계속 조금씩 어두운 나랑, 슬펐던 나랑, 분노했던 나랑 마주치겠구나 싶었다.
제대로 바라보고 제대로 흘려보내면, 평범한 나의 일상에 갑작스러운 틈새 공격은 줄어들지 않을까. 검열관을 세우지 않은 채 적어 내려갔던 나의 모닝 페이지는 무언가에 대하여 끓어오르는 감정만이 가득했으나, 치열하게 미워하고 있었던 어떤 실체를 마주하니 속이 후련한 기분이었다. 치열하게 미워하고 치밀하게 저주를 퍼붓고 몹시 증오해야지. 차라리 완전한 답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미워하는 마음을 애틋하게 안아주면, 아니, 애틋이라는 말도 잠시 집어치워버려야지. 미워하는 마음에 제 자리를 마련해 주면, 그놈이 이 때다 싶어 철저히 날뛰겠지. 그리고 제 풀에 지쳐 어느 날 깊은 잠에 들겠지. 그러면 그때서야 비로소 자장자장 자장가를 불러주면서 애틋하게 바라봐 줘야지. 그날이 오면 잔뜩 힘주고 있던 거 확 풀어버리고 어디로든 너 원하는 데로 가라고 놓아줘야지. 그러면 말이야, 그러면 말이지. 어느 날 심수봉의 노랫말을 내가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