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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루코 Feb 04. 2022

번아웃 탈출기

11.



모닝 페이지를 시작한 지 열흘이 조금 넘었다. 처음에는 할 말도 많고 집중도 잘 되고 무언가를 깨닫곤 했는데, 요즘엔 할 말이 많지 않아 억지로 종이를 채우기 위해서 이런저런 포부를 적어보기도 한다. 그런데 포부를 적는 행위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인지, 희망적인 포부로 페이지를 메우며 시작하는 아침이 꽤 기분이 좋다.


무언가를 열망하는 삶.


나는 꽤 오랫동안 모든 게 아무렇지 않았다. 이루어도 아무렇지 않고 이루지 못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잃어도 아무렇지 않고 얻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이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 상태에서 가장 안정감을 느꼈다. 크게 기쁘면 크게 낙담하겠지, 적당히 기뻐하다 적당히 슬프자. 되뇌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감정의 폭이 큰 사람인지라, 나는 여전히 크게 기뻐하고 크게 실망하며 요동쳤지만, 그래도 마음을 그렇게 먹으면서 내 감정을 최대한 깎아내려갔다. 보기에 예쁘게, 아니, 적당해 보이게.


그 태도가 나에게 가져다준 것은 다름 아닌 무기력이었다. 무얼 해도 기쁘지 않으니 종국에는 무엇도 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과연 이걸 해서 무얼 할까, 아무 의미가 없는데. 싶은 것이다. 주어지는 일들이 버겁게 느껴졌고, 그냥 산속에 들어가서 풀이나 뜯어보면서 하루 종일 하늘만 바라보고 있고 싶었다. 그 상태에 이르니 나는 꽤 편안하기도 했다. 내 마음에 타격을 주는 게 거의 없었다. 해탈한 스님 같았고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실제로 이런들 저런들 별 상관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친구는 잘 지내고 있는 거냐 물었고, 나는 솔직하게 아-주 몹시 편안하다. 괜찮다고 대답했다. 친구는 몇 번이나 거듭해서 진짜 괜찮은 거 맞냐고 물어보더니, '어 이상하다... 왜 에너지가 안 느껴지지?'라고 하더라. 


그 말은 어쩐지 내 마음에 쿡 남았고, 나는 그 후 며칠간 에너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의 에너지. 내 몸을 감돌고 있는 에너지. 에너지. 에너지. 에너지라- 며칠 생각을 한 뒤 나는, 내게서 에너지를 느끼지 못했던 친구에게 그 이유를 단언할 수 있었다. 친구가 나를 본 거다. 그냥 친구가 나를 봐 버린 거다. 나를 보았다면, 그냥 알 수밖에 없었다. 당연했다. 더 보태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친구의 말이 맞았다. 그냥, 에너지가 없었으니까. 스스로에게 몇 번을 고쳐 물어도 에너지가 없는 게 맞았다. 사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모든 게 괜찮아져서 괜찮았던 것이 아니라, 모든 게 아무래도 상관없어서 괜찮다는 말 말고는 딱히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아마도 일에서도, 내 삶에서도 지독한 번아웃이었다. 사실 사람 관계도, 일적인 만남도, 일 자체도 모두 버거웠다. 그 버거움을 안고서,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대책 없이 삶이 흐르는 대로 나도 흘러가버렸던 것 같다. 살아지는 대로 살았더니 남는 것은 극심한 피로였다. 주체성을 잃은 삶은, 정말 난파선 같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만히 머물러 있었다면 더 빨리 헤쳐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닥치는 대로 뭐라도 했다. 끊임없이 했다. 쉬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쉬지 못했다. 하지만 목표하는 지점 없이 바쁜 활동은 나를 소진시키기 바빴다. 입력값은 없이 출력되기 바빴고, 나는 정말로 소진됐다. 그 사이 책도 만들었고 전시도 했고 바리스타 자격증도 땄으니, 스스로에게 계속 움직인 삶이었다는 것은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게 남아있던 건 성취감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이루었는데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으니 나 또한 조금은 답답했다. 하지만 결국에 내 마음에 가득 찼던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마음. 그보다 나아가서 어쩌면 모든 게 지겨워져 버린 마음. 그뿐이었다.


그 무렵 나는 지겹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생각하는 것도 지겹고 무언가를 느끼는 것도 지겹고, 겨우 잡힌 오디션도 지겹고 촬영도 지겹고. 잠시 아드 레난 린이 솟구쳐 재밌는 하루가 왔다 가도 집에 오면 그냥 또다시 지겨워졌다. 아, 삶이 계속 이렇게 지겨울 거라면, 대체 왜 사는 거지?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워서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정말 몹시도 지겨워서 그만 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말로는 이렇게 쉽게 주절주절 내뱉지만, 정말 극심한 지겨움이었다.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랄 게 없는 지독한 지겨움이었다.


이 지겨움에서는 운 좋게 벗어났다. 친구의 질문은 내가 지금의 문제를 인식하는 계기가 됐고, 때마침 읽었던 모든 책들이 나에게 움직이라고 권하고 있었다. 12월부터 읽은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가 그랬고 부의 추월차선, 아티스트 웨이가 후발주자로 내 등을 떠밀어 주었다. 새해가 시작된 것도 분명히 한몫을 했으리라. 연말에 느꼈던 엄청난 열패감은 나에게 엄청난 자극을 주었고, 그 이후로도 내 자격지심을 건드리는 사건들이 몇 차례 연달아 일어났다. 그러고 보면 역시 모든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가 보다. 참 속상했던 일이 결국 지금의 열망과 이어진 것을 보면, 모든 것은 다 나쁘지만도, 다 좋지만도 않은 것이리라. 사실 모닝 페이지를 시작하게 된 책 '아티스트 웨이'도 배송이 온 지 이미 한참 지나있었다. 어쩐지 손이 가지 않아 뜯어보지도 않은 채 방 한쪽에 방치해두었었다가 보름 전에 갑자기 열어보게 된 것이다. 이럴 때 보면 다 때와 시기가 있는 모양이지? 2022년이 오면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내가 되겠다고 몇 겹의 다짐을 했는데,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다 나를 지금으로 연결시킨 것만 같다.


다시금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열망이 마음 안에 장착되다 보니 뭐랄까, 삶이 참 개운해졌다. 뿌연 안갯속에서 한 발짝 한 발짝 힘 없이 내딛으며 어디로 가든 상관없지 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았다면, 지금 내 눈은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게 어딘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분명히 목적하는 지점이 있고 나는 그쪽으로 하루하루를 세우고 있다. 정말로 '건설'하는 기분이 든다. 


오늘 아침엔 베란다에 있는 에어 프라이기에 미니 돈가스를 집어넣고 15분을 돌리고는 주방으로 돌아와 순두부찌개를 끓였다. 보글보글 끓는 순두부찌개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저 뒤편에선 돈가스가 익는 고소한 향이 퍼져오더라.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서 꽤나 풍요로운 아침이었다. 이렇게 스스로를 위해서 준비하는 식사가 문득 오랜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요리라는 실제적 행위는 크게든 작게든 계속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내가 먹을 음식을, 내 손으로 준비하는 시간을 그 순간 실감하니, 아 사실 삶이라는 게 이렇게 작고 단단한 데에서 시작하는 거였지 싶었다. 금방 한 밥에 인스턴트일지언정 방금 만든 반찬과 찌개로 내 배를 따끈하게 채우는 것은, 스스로 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감각,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감각, 어쩌면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단단하게 나를 지탱하고 있는 토대 같았다. 

내가 나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하지 못하면, 그걸 실감하지 못하면, 사람은 생의 전선에서 무력하게 떨어져 나가고, 누구의 도움 없이는, 지지 없이는 살아남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그랬기에 누군가의 도움과 지지를 그토록 열망하면서 외로웠었을까? 보글보글 끓는 순두부를 보면서 이제까지의 시간이 조금은 애틋하고 아렸다.


지독한 무기력에서, 지독한 지겨움에서 빠져나와 정말이지 기운을 차리고 행동하는 시간을 보내니 스스로에게 너무나 잘 됐다고, 아주 잘 버텼다고 칭찬해주고 싶어 진다. 한 번 넘어왔으니 다음번에는 지금보다는 좀 더 수월할 거라고, 한동안 힘들고 나면 또다시 이렇게 열망하는 힘이 생겨 있을 거라고. 

나는 나를 긍정하고 새로이 희망하는 지금이 무척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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