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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루코 Feb 14. 2022

우리는 반드시 다시 연결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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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부끄러워지면 자기 자신에게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존감이 낮아진다. 자존감이 낮아지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며 그 감정이 심화되면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기에 이른다. 그러다 보면 점점 고립되어 자기 안으로만 향하게 되고 외로움은 지속된다. 이 외로움이 부끄러워지면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더 큰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다 보면 더 자존감이 낮아지며, 이 악순환의 고리가 점점 더 심화되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 참고)


<우리는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 책을 읽어 내려가며 외로움과 수치심에 대한 정의를 새로이 새기게 되었는데, 새롭게 새긴 정의로 하여금 내 고질적인 문제를 보다 제대로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종종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 녹은 빙하로 겨우 제 몸만 한 얼음 조각을 찾아 그 위에서 먹이를 찾는 북극곰처럼, 왠지 그렇게 부서진 조각 하나에 온 몸을 의지한 채 부유하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온 세상에 혼자 놓여있는 것 같다. 내 세상이 무너지고 위태로운 기분. 어느 날 그 기분이 느닷없이 찾아오면 그저 조용히 흘러가 주기를 처참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했다. 최근에도 정말 실존하는 누군가를 피부로 만져야만 안정되는 기분이 들어 일부러 집 밖을 나선 적이 있었다. 나 이외의 그 누구도 여기서 나를 구해낼 수 없을 텐데, 나 또한 여기서 나 자신을 구해내지 못하고 번번이 걸려 넘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홀로 단단히 서 있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절망적이었다.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린 것이리라. 이 감정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외로움이 부끄러웠다는 것을, 책을 읽어 내려가며 깨닫게 되었다. 감정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주게 된 것이었다.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 하에서 사회적 동료도 없고, 공통된 관심사를 함께 나눌 네트워크마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흔들리는 가운데에 외롭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외로웠고, 나의 외로움은 오직 나만의 비밀이었다. 책에서 읊어 준 그대로, 외로움이 수치스러워진 악순환의 고리를 내가 고스란히 밟고 있었다. 내 외로움을 나 스스로 비밀에 부치면서 나는 그 누구에게도 구조 요청을 하지 않았고 내 안으로만 깊숙이 들어갔다. 


사실 외롭다는 감정은 어쩌면 익숙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그 개념은 조금 낯설었다.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내밀한 감정, 함께 일상을 공유하는 타인에게는 절대 공유하고 싶지 않은 나의 비밀들. 그러니까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의 취약한 부분들. 그것들이 까발려질까 두려운 모습. 

영화 <셰임>이 떠올라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마이클 패스밴더가 연기한 <셰임>을 보았다. 이 영화의 제목이 왜 셰임일까, 왜 수치심일까 영화를 처음 봤던 10년 전엔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한 친구는 이 영화를 보고 수치심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고 표현했는데, 나는 어디에 어떻게 수치심이 묻어있는지 이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책을 통해 수치심에 대한 개념을 새로이 세우고 난 뒤 영화를 보니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치에서 수치로 점철된 영화였다. 캐리 멀리건과 마이클 패스벤더는 정반대의 양상이지만 사실 거울처럼 똑같았다.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 건강한 관계를 건설할 줄 모르는 것, 엄청난 고립. 한쪽은 완벽하게 관계에 매달리며 고립되어 가고 있었고, 한쪽은 완벽하게 관계를 차단하며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관계에 중독되고 섹스에 중독된 채. 이 불안한 상태를 계속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내내 어딘가 짓눌리는 기분이 들어 마지막 장면에선 갑갑함에 눈물이 났다. 완전한 고립이 사람을 어디까지 내몰 수 있는지,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는지 영화를 통해 엿보면서 조각나 버린 사회 속 관계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우리는 이미 단절되어있고 크게든 작게든 조각나 있다. 셰임 속 주인공과 같은 일상이 이제는 전혀 특수하지 않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흔히 찾을 수 있다. 마치 이것이 보통의 상태라는 듯 너무나 만연해 있다. 책 제목처럼 우리는 기필코 다시 연결되어야만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정 관심을 기울이고 시간을 쌓아야만 한다. 대화를 나눌 땐 진심으로 물어야 하고 진심으로 답해야 한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이 어렵지 않도록 도움이 필요한 상태에 조금은 당당해져도 된다. 우리는 취약성을 드러내며 견고한 관계를 다져 나가야 하며, 끊임없이 서로를 향해 진정 궁금해할 줄 알아야 한다. 


오늘은 정말이지 사람이 사람을 버리지 않는 세상 속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친절하기를 영영 포기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크고 작은 역경이 배어있는 관계를 더 사랑하게 될 것만 같다. 내 주변에 나를 지탱해주는 관계들에 무한한 감사와 애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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