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천천히 꺼내어 씁니다
처음엔 단순히 비행기를 타는 게 좋았다.
공항에 가는 설렘, 탑승권을 쥔 손끝의 긴장감,
구름 위를 나는 창밖 풍경까지 모든 것이 나에겐 특별했다.
그때는 목적지보다 비행 자체가 전부였고,
어디를 간다는 것보다는 ‘떠난다’는 감정에 취해 있었다. 그래서 정작 여행지보다는,
구름 너머의 하늘만 기억에 남아 있다.
어느 날, my.flightradar24.com이라는 사이트를 알게 됐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탑승한 모든 항공편을 하나씩 정리했다. 도시, 항공사, 항공기종...
내가 지나온 하늘의 흔적이 하나둘 지도로 쌓여갔다. 700시간이 넘는 비행 기록이 남았지만, 지도 위에는 여전히 빈칸이 많았다.직장을 다니며 짧게 떠나는 여행은 늘 가까운 곳이어야 했다. 그래서 내 지도는 편향되어 있고, 공백은 더 많았다.
그래도 그 시절엔 괜찮았다.
비행기만 타도 좋았고, 출국장에만 있어도 설렜던 시절이었다.
사실 나는 여행을 늦게 시작했다.
외국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국제선 비행기를 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이다.
낯선 공항, 낯선 언어, 낯선 거리...
그 모든 것이 두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한 번 떠나고 나니 알게 됐다.
새로운 일은, 언제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걸.
그리고 나는 바뀌기 시작했다.
비행보다 머무는 시간이 더 궁금해졌고,
낯선 도시의 골목과 사람들의 표정,
커피 한 잔에 담긴 조용한 위로에 더 오래 머물고 싶어졌다.
그래서 기록을 시작했다.
블로그를 열고 사진을 정리하고, 내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감정들을 붙잡기 위해.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기록하지 않는 여행’을 해왔다는 걸.
멋진 풍경보다, 내 마음을 찍지 못한 여행.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감정.
그러다 문득, 감정을 중심에 두고 쓰는 여행 글들을 마주하게 됐다.
"내 마음을 붙잡았던 문장들"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 스며드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글은 그런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뒤늦게 시작한 여행이었고,
서툴고 느린 기록이지만,
내가 지나온 도시들, 느꼈던 감정들,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