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천천히 걷는 아침

오래된 카페의 아침부터, 이자카야의 밤까지

by 문 달

후쿠오카의 아침은 유난히 조용했다.
햇살은 눈부시지 않았고, 바람에는 바다의 소금기만 살짝 묻어 있었다. 여행지의 아침이면 대개 일정에 쫓기듯 서둘러야 했지만, 이 도시는 달랐다. 어디로 가든 괜찮으니 천천히 걸으라고, 도시 전체가 속삭이는 듯했다.


아침이라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고, 가게 셔터는 아직 절반쯤 내려와 있었다. 바닥에 물을 뿌려 청소한 흔적이 남아 있었고, 흙냄새와 비슷한 습기가 골목에 가득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건 빨간 차양막이 드리운 오래된 카페였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묵직한 커피 향이 퍼졌고, 낡은 나무 바닥은 발밑에서 살짝 삐걱거렸다.

창가에는 작은 장난감 비행기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벽시계는 느릿한 속도로 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일본식 모닝 세트는 두툼한 계란 샌드위치와 샐러드, 그리고 블랙커피 한 잔. 단정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조합이었다. 신문을 읽는 노인, 담배를 피우며 커피를 음미하는 손님, 출근길 직전의 중년 남성. 모두 각자의 아침을 시작하고 있었고, 그 풍경 속에 잠시 나도 스며들었다. 커피 향에 담배 냄새가 은근히 섞여 있었지만, 그마저도 ‘후쿠오카의 아침’을 완성하는 풍경처럼 느껴졌다.


아침 시간을 마무리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관광지로 향하는 대신, 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리를 따라 하카타역 근처의 작은 상점가로 발길을 돌렸다. 진열장 안에는 생활용품과 간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가게 앞에서는 상인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관광지의 활기와는 다른, 일상의 호흡이 느껴지는 거리였다. 그 끝에서 ‘きだ’라는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상가 건물 안, 낡았지만 묘하게 정겨운 글자가 나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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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여는 순간, 오래된 담배 냄새가 먼저 맞이했다. 벽에는 빛바랜 달력과 액자가 걸려 있었고, 창가의 초록색 벨벳 의자는 세월의 흔적을 묵묵히 견디고 있었다. 구석에는 만화책이 빼곡히 꽂힌 책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낡은 표지와 빛바랜 종이가, 이곳이 얼마나 오래된 시간을 견뎌왔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순간, 이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누군가의 오래된 ‘거실’ 같았다.


주문을 마치자, 이곳의 공기가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종이 넘기는 소리, 컵이 부딪히는 소리, 낮게 오가는 대화가 공간을 차분히 감싸고 있었다. 잠시 후, 주문한 오므라이스와 함박스테이크 세트가 금세 식탁 위에 올랐다. 촉촉하게 감싼 오므라이스 위로 진한 데미그라스 소스가 넓게 흘러내렸고, 그 옆에는 작은 함박스테이크와 곱게 채 썬 양배추가 가지런히 자리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직한 맛이었다. 한 입 삼킬 때마다 이 가게의 공기와 풍경까지 함께 씹히는 듯했다. 담배 연기, 커피 향, 만화책을 넘기는 소리가 뒤섞여 만들어낸 낮의 리듬 속에서 나는 이 도시의 오랜 일상을 맛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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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에는 오호리 공원으로 향했다. 지하철역을 나오자마자 탁 트인 호수가 눈앞에 펼쳐졌다. 도심 한가운데 이런 호수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호수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물 위에는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 보트와 잔잔한 물결, 그리고 가끔 지나가는 러너들의 숨소리.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자, 아이를 데리고 산책 나온 가족이 옆을 지나갔다. 호수 건너편에는 일본식 정원이 보였고,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 잎사귀가 반짝였다.

그곳에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늘 ‘어디를 가야 하지? 무엇을 먹어야 하지?’라는 조급함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그냥 ‘앉아 있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기분이었다. 도시의 한가운데인데도, 호수 위에 비친 하늘은 너무나 고요했다. 오호리 공원은 그 자체로 후쿠오카라는 도시의 여유를 상징하는 공간 같았다.





해가 저물 무렵, 골목의 불빛이 하나둘 켜졌다. 회사원들이 삼삼오오 모여드는 작은 이자카야에 들어섰다. 안에서는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 고조된 목소리, 그리고 웃음소리가 섞여 따뜻한 소란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고등어회를 시켰다. 한국에서는 잘 접하기 힘든 메뉴라 조금 긴장됐다. ‘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은 첫 입에 곧 사라졌다. 신선한 바다 향과 담백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고구마 소주를 곁들이자 부드럽게 번지는 단맛이 고등어회의 풍미를 더했다. 낯설지만 묘하게 중독적인 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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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웠던 건 분위기였다. 한국의 술집이 ‘왁자지껄한 큰 소리’라면, 일본 이자카야는 ‘낮게 깔린 소란’에 가까웠다. 큰 음악도 없고, 억지스러운 고성방가도 없었다. 대신 탁자마다 작은 이야기가 오갔고, 그 합이 공간을 채웠다. 술보다는 안주에 집중하는 듯한 손님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같은 술자리인데도 문화가 다르면 공기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싶었다.


마지막 잔을 기울이며 생각했다. 후쿠오카의 하루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된 카페의 연기 자욱한 공기, 레트로 식당의 오므라이스, 호수 앞의 고요, 그리고 이자카야의 고등어회까지. 작고 평범한 순간들이 모여 이 도시를 오래 기억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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