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깊게 잘 못 잔지는 1년이 넘은 것 같다.
워낙에 생각도 많고 이것저것 신경 쓰는 것도 많고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도 많아서 의지적으로 조절하지 않으면 잠시도 편하게 쉬는 게 사실 잘 안 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내 성향 자체가 뭔가를 맡으면 욕심이 많아서 항상 그 상황에 몰입하고 성과를 내는 데에 습관이 되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뭔가 맡아서 하면 사실 나는 내 스스로도 잘 감당이 안된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사람들로부터 인정도 많이 받고 칭찬도 받았지만, 그로 인한 만족은 잠시뿐이고
그 이후엔 다시 스스로를 채찍질할 때가 많았다.
나를 만나면 사람들은 너는 뭘 하든 참 잘한다고
칭찬해주지만, 사실 나는 뒤쳐질까 봐 항상 두렵고 불안하다.
사람들에게 그런 인정과 칭찬을 듣는 것에서
내 존재의 이유를 찾아서 그랬던 걸까? 어렸을 땐, 그 부분이 상당히 컸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뭔가를 시작해도 그냥 하는 건 싫었다.
시작하면 끝까지 제대로 해야지.
내 스스로 맡은 일에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그 이후에도 자꾸 생각이 나고 후회가 되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내게 맡겨진 순간들에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내 주변에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얘기할 때가 많다.
“뭘 그렇게 피곤하게 사니? 그냥 좀 편하게 살아라.”
“…”
어느 누구보다 나는 정말 간절하게 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그래서 예전엔 사람들의 그런 말들에 내가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고 얘기하고 나면 내가 좀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져서 상처도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내 스스로도 내가 감당이 안될 때가 있는데 내 주위 사람들은 더 그렇게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고, 그 사람들 입장에서 나를 위해 생각해서 해주는 말들이니깐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더 깊이 내 마음을 표현하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적어지는 것 같다.
내가 잠을 잘 못 자서 힘들 때가 있다는 건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른다. 내 옆에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남편에게는 내가 잠을 잘 못 자서 좀 힘들 때가 있다고 표현하고 도움을 구했다.
처음엔 몇 일 잠을 못 자는 거겠거니, “내가 또 생각이 엄청 많은가 보다. 몸이 좀 힘드네.”라고 느끼며 넘겼는데, 점점 잠을 깊이 못 자는
시간들이 많아지니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는 게 느껴졌다. 회사에서 일을 해야 하는 시간에 잠을 못 자서 몸이 너무 힘드니 괴로웠다. 그리고 집에 가서는잘 때가 되면 잠을 자야 내일 몸이 안 힘들 텐데라고 생각하며 더 빨리 자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할수록 잠을 더 깊이 못 자는 게 반복되고 아침에 눈을 뜨면 머리가 멍해지고 하루를 시작하는 게 두려울 때도 있었다.
이렇게 안간힘을 쓰는 게 나에게 별로 좋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불면증을 없애려 하기보다는
그냥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건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
받아들이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잠을 못 잔 날에는 그냥 잠을 못 잤네. ‘아 오늘은 몸이 많이 피곤하겠구나. 조금 더 컨디션 조절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했고,
잠을 그래도 잔 날에는 ‘오늘은 잠을 좀 자고 나니
개운하네. 감사하다. 힘 내보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상 중에 또 바뀐 건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고 예전엔 부족한 잠을 자거나, 같이 일하는 분들과 얘기를 했다면, 지금은 그 시간에 혼자 산책하며 멍 때리는 시간을 갖게 됐다.
처음엔 햇빛을 보며 산책을 하는 게 불면증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작은 거라도 실천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하루 중 이 시간이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요즘같이 날이 좋은 날에는 산책할 때 더없이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
평일 낮에 혼자 공원을 돌면 운동하는 분들도 보이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깐 쉬러 나오신 분들도 보이고, 유모차에 아기를 데리고 나온 분들도 보이고 반려견들과 함께하시는 분들도 보인다.
잠을 잘 못 자서 멍해지는 날에도 아무 생각 없이 주변을 보며 산책을 하면 어느 순간 뿌옇게 많았던 생각들이 걷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 점심에 산책을 하는 건 나의 일상의 루틴이 되었다.
그리고 간간히 남편이 점심에 혼자 산책하는 날 위해 달달하게 마시라고 기프티콘을 보내주기도 한다.
그럴 때면, 산책하면서 맛있는 음료 마실 생각에 행복해진다.
내가 불면증으로 계속 불행하다라고만 생각하며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순간들이다.
불면증이지만, 행복하다.
지금도 잠을 못 자서 너무 힘들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또다시 너무 괴로워지기도 하지만,
괜찮다.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은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리면, 내 삶에 감추어져 있는 보석 같은 순간들을 또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