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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련 Nov 01. 2022

불면증인데 행복합니다.

잠을 깊게 잘 못 잔지는 1년이 넘은 것 같다.


워낙에 생각도 많고 이것저것 신경 쓰는 것도 많고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도 많아서 의지적으로 조절하지 않으면 잠시도 편하게 쉬는 게 사실 잘 안 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내 성향 자체가 뭔가를 맡으면 욕심이 많아서 항상 그 상황에 몰입하고 성과를 내는 데에 습관이 되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뭔가 맡아서 하면 사실 나는 내 스스로도 잘 감당이 안된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사람들로부터 인정도 많이 받고 칭찬도 받았지만, 그로 인한 만족은 잠시뿐이고

그 이후엔 다시 스스로를 채찍질할 때가 많았다.


나를 만나면 사람들은 너는 뭘 하든 참 잘한다고

칭찬해주지만, 사실 나는 뒤쳐질까 봐 항상 두렵고 불안하다.


사람들에게 그런 인정과 칭찬을 듣는 것에서

내 존재의 이유를 찾아서 그랬던 걸까? 어렸을 땐, 그 부분이 상당히 컸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뭔가를 시작해도 그냥 하는 건 싫었다.


시작하면 끝까지 제대로 해야지.


내 스스로 맡은 일에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그 이후에도 자꾸 생각이 나고 후회가 되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내게 맡겨진 순간들에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내 주변에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얘기할 때가 많다.


“뭘 그렇게 피곤하게 사니? 그냥 좀 편하게 살아라.”


“…”


어느 누구보다 나는 정말 간절하게 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그래서 예전엔 사람들의 그런 말들에 내가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고 얘기하고 나면 내가 좀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져서 상처도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내 스스로도 내가 감당이 안될 때가 있는데 내 주위 사람들은 더 그렇게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고, 그 사람들 입장에서 나를 위해 생각해서 해주는 말들이니깐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더 깊이 내 마음을 표현하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적어지는 것 같다.


내가 잠을 잘 못 자서 힘들 때가 있다는 건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른다. 내 옆에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남편에게는 내가 잠을 잘 못 자서 좀 힘들 때가 있다고 표현하고 도움을 구했다.


처음엔 몇 일 잠을 못 자는 거겠거니, “내가 또 생각이 엄청 많은가 보다. 몸이 좀 힘드네.”라고 느끼며 넘겼는데, 점점 잠을 깊이 못 자는

시간들이 많아지니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는  느껴졌다. 회사에서 일을 해야 하는 시간에 잠을  자서 몸이 너무 힘드니 괴로웠다. 그리고 집에 가서는잘 때가 되면 잠을 자야 내일 몸이  힘들 텐데라고 생각하며  빨리 자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할수록 잠을  깊이  자는  반복되고 아침에 눈을 뜨면 머리가 멍해지고 하루를 시작하는  두려울 때도 있었다.


이렇게 안간힘을 쓰는 게 나에게 별로 좋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불면증을 없애려 하기보다는

그냥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건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


받아들이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잠을 못 잔 날에는 그냥 잠을 못 잤네. ‘아 오늘은 몸이 많이 피곤하겠구나. 조금 더 컨디션 조절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했고,

잠을 그래도 잔 날에는 ‘오늘은 잠을 좀 자고 나니

개운하네. 감사하다. 힘 내보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상 중에 또 바뀐 건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고 예전엔 부족한 잠을 자거나, 같이 일하는 분들과 얘기를 했다면, 지금은 그 시간에 혼자 산책하며 멍 때리는 시간을 갖게 됐다.


처음엔 햇빛을 보며 산책을 하는 게 불면증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작은 거라도 실천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하루 중 이 시간이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요즘같이 날이 좋은 날에는 산책할 때 더없이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

평일 낮에 혼자 공원을 돌면 운동하는 분들도 보이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깐 쉬러 나오신 분들도 보이고, 유모차에 아기를 데리고 나온 분들도 보이고 반려견들과 함께하시는 분들도 보인다.


잠을 잘 못 자서 멍해지는 날에도 아무 생각 없이 주변을 보며 산책을 하면 어느 순간 뿌옇게 많았던 생각들이 걷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 점심에 산책을 하는 건 나의 일상의 루틴이 되었다.


그리고 간간히 남편이 점심에 혼자 산책하는 날 위해 달달하게 마시라고 기프티콘을 보내주기도 한다.

그럴 때면, 산책하면서 맛있는 음료 마실 생각에 행복해진다.


내가 불면증으로 계속 불행하다라고만 생각하며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순간들이다.


불면증이지만, 행복하다.


지금도 잠을 못 자서 너무 힘들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또다시 너무 괴로워지기도 하지만,

괜찮다.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은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리면, 내 삶에 감추어져 있는 보석 같은 순간들을 또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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