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다.
가을이 오면, 나는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이 너무 좋다.
따사로운 햇빛에 살이 탈까 봐 걱정하는 것보다는 햇빛을 쐬며 잠깐이라도 산책하는 걸 즐기는 나는 지금이 좋다.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날씨.
여름에 무성하게 푸르렀던 초록색 잎이 붉게 물들어
새로운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산책하다가 너무 예뻐서 떨어진 낙엽을 주워서 들고 오기도 한다.
내가 원래 이렇게 감성적인 사람이었던가..
대부분 사람들은 여름에 더위를 타거나 겨울에 추위를 타는 사람으로 나뉘는데,
나는 여름과 겨울 둘 다 탄다. 정말 안 하는 게 없다.
여름엔 너무 더워서 누가 먹여 주지도 않았는데 혼자 더위를 먹어서 힘들어하고,
겨울엔 몸이 차서 조금만 추워도 몸에서 난리가 난다. 솔직히 정말 내 마음 같아선 겨울엔 겨울잠 자는 동물처럼 몇 달 동굴에 들어가서 나오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그래서 사실 난 일 년 사계절 중, 컨디션이 애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좋을 때가 많지 않다.
가끔씩 이런 내가 나도 적응이 안 되는데, 내 옆에 있으면서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은 더 힘들 듯하다.
이렇게 난 계절적으론 가을을 좋아한다.
그러나 가을이 오면,
나는 유독 어렸을 때부터 마음이 많이 외로웠다.
가을에 맑고 청명한 하늘과, 곱게 물들어 아름다운 단풍과 달리 내 마음은 어둡고 슬펐던 기억들이 더 많은 거 같다.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 외롭고 슬펐던 기억.
그런 기억들을 잊고 살고 싶은데도 몸에 배서 가을만 되면 마음에서 반응을 하는 것 같다.
몸에 상처가 나면 아물어도 흔적이 남을 때가 있듯이, 나에게도 지난 시절의 아픈 기억들이 시간이 흘러 아물었지만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살면서 누구나 저마다의 아프고 힘든 기억을 가지고 있듯이 나 또한 그렇지만, 그 순간 슬퍼지고 외로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렇게 가을이 오면, 나는 마음이 외로워진다.
예전엔 이런 마음조차 느끼는 게 사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 옆에서 나를 격려해주고 함께해주는 남편이 있기에 이런 외로운 마음도 헤아리며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의 슬프고 외로운 기억들은 어떤 때는 나를 이상하리 만큼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예전과 상황은 달라졌고, 나는 혼자가 아니지만, 그 감정을 감당하는 건 오롯이 내 몫이기에 슬퍼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별 것 아닌 일에도 눈물이 나고 마음이 먹먹해진다. 정말 씩씩하게 살고 누구보다 에너지 넘치게 살다가도 멈춰지는 삶의 순간들이 있다.
예전엔 몸부림치며 이런 감정들을 거부했지만, 지금은 이 모습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음이 많이 슬프구나. 많이 외로웠구나.
이렇게 내 마음을 돌봐주기로 했다.
그리고 소소하게 내가 웃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한다. 크게 웃진 않더라도 싱긋 미소가 지어지는 일이면 충분한 듯하다.
가을이 오면,
애쓰며 지금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나를 더 격려하며 응원해줘야겠다. 충분히 잘 해왔고, 잘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