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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 후 첫번째 외래.

by 수박씨

MRI까지 찍고 난 첫번째 진료라 최종 결과가 나올 줄 알고, 반차까지 써가며 병원으로 갔다. 이 간단한 진료부터 우리는 막혔다.


퇴원 당시 간호사는 MRI때는 금식을 해야하나, 두 번째 외래 진료 때는 안해도 됩니다. 오기 한 시간 전에 채혈을 하고 와야 합니다. 몇 번을 설명해주어 기억하고 있었고, 유의사항이 적힌 안내문도 받았다. 그 이후로 나는 병원에 동행하지 않았고, 안내문은 동생의 책상 위에 두었으나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검진 당일 오전 10시경 아빠는 문자를 받았다고 했다. 진료시간이 연기되었으며 8시간 금식하라는 문자를. 금식을 못한 아빠는 진료를 미루겠다고 병원으로 전화했고, 우리에게 통보했다. 먼저 소식을 접한 언니는 병원을 뒤엎어야겠다고 열이 나 있었다. 경증도 아닌 중증환자인데 금식안내 문자를 당일에 보내며, 진료시간은 마음대로 미루고, 중증환자가 진료를 미루겠다는데 그냥 그러라고 하냐고.


피검사에는 금식을 하지 않는게 맞으며, 문자는 본래 입원했던 환자에게는 별도로 나가지 않는다는 답변이 왔다. 나는 병원의 착오이니 오늘 진료를 볼 수 있게 처리해달라고 항의했다. 최종 결과를 듣고자 언니도 나도 휴가까지 냈는데, 다음으로 미룰 수는 없었고 아빠에게도 오늘 진료는 봐야한다고 소리쳤다.


결과는 허무했다.

조직검사를 받아야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 이전에 다 들었던 내용이었다. 고작 이 얘기 듣고자 아침부터 열일하는 간호사들과 싸워가며 진료에 왔는가. 진단명은 아직 악성종양일뿐, 암이라는 병명도 쓰지 못했다. 그게 문제였다. 아빠는 그래서 암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엄마도, 나도, 언니도, 친척들도 얘기했지만 아빠는 짜증만 늘었다. 얼굴은 부쩍 더 노랗게 뜬 것 같았다. 아빠가 결정하기를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는걸까. 그렇다고 묶어서 데려갈 수도 없고. 언니는 이틀내내 아빠를 설득해 보더니, 모르겠다고, 포기라고 그런다.


아빠는 과연 어떤 생각일까.

암진단을 받아야 국가지원도 될텐데. 조직검사할 때 말고는 치료의 방향은 본인이 결정하라고 누누히 강조했는데. 무엇때문에 검사를 마다할까. 아빠가 어떤 결정을해서 죽어가더라도, 아님 살더라도, 본인 선택이려니 할텐데, 가족들의 어떤 상황도 고려하지 않는 그 이기심은, 아빠가 죽어서도 가족들의 원망을 들을텐데, 그건 알기나 할까. 그런것 따윈 정말 상관없는 사람인걸까.


기다려본다. 아빠의 결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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