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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위한 기도

by 수박씨

기도, 자체를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막막한데, 아빠가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이 상황에, 아빠 한번만 살려주세요, 아빠만 살려주면 무엇이든 할게요, 라는 절박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거짓말로 기도를 할 수도 없고. 아빠가 죽기를 바라지도 않지만, 억지로 억지로 목숨을 이어가는, 그런것도 바라지 않는다. 건강할 수 있을 때까지, 사람처럼 이야기하고 돌아다니고 먹으면서 지내다가, 그러다가 가셨으면 하는게 솔직한 바람이다.


아빠는 결국 입원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빠의 몸이 안좋아져 입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가 맞는 말이었다. 십이지장 쪽의 출혈이 다시 시작된 듯했고, 변도 좋지 않다 그랬다. 전이가 된건가. 철렁했다. 병원에 그냥 있었음 재출혈도 없고, 검사도 벌써 끝났을텐데.


아빠는 잠시의 퇴원 기간동안 먹고 싶은 것 먹고, 가고 싶은 곳 가고, 염색도 하고, 오는 친척들 맞이하고, 그렇게 보냈다. 원없이 하고싶은 것 하고가겠다는 의지인지, 난 아프지 않다라는 불인정의 태도인지, 분간도 안가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빠가 얼마나 살까. 아직 나온 결과가 없어 막막하기만 하다. 무슨 얘길 들어도 요즘은 마음의 동요가 없다. 처음 소식을 들을때만 해도 문득문득 눈물이 나 혼났는데, 지금은 담담하기만 하다. 가족들 모두가 그런 눈치다. 발병 한달 여밖에 안됐는데, 아빠의 고집불통 태도가 가족들의 마음을 굳어버리게 했다. 고집불통이 병에 걸려서 생긴게 아니라,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으므로, 아,이런 사람이었지, 놓아버리게 된다.


한편으론 이해도 된다.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간암이라니. 믿을 수 없고 인정하기 싫었겠지. 병원에 갇혀 지내는 것도 싫었겠지. 요즘은 보호자 외에 출입도 안되서 환자들의 외로움이 배로 늘은 것 같다. 아빠도 그랬을 거다. 집에서 가족들, 손주들 맘껏보고, 죽더라도 땅을 밟고 공기를 마시고 사람 만나며 지내고 싶은 마음, 알 것도 같다. 그래, 아는데, 다 아는데, 검사는 다 마치고 해도 되잖아, 아이처럼 왜그러는 건데, 결국 더 안좋아져서 병원으로 돌아와야 하잖아. 다시 이해 안되는 마음.


아빠는 투병중이지만 나의 일상은 변함이 없다. 슬픔은 묻어두고 회사에서 친절한 음성으로 고객을 응대하고, 아이를 돌보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마음 한 켠에 슬픔과 걱정이 있지만, 접어두고, 변함없이, 더 씩씩하게 하루를 살아낸다. 내 아이가 아팠어도 이렇게 덤덤히 살 수 있었을까. 내 아이가 병원에 안간다고 떼쓴다 한들, 아이를 미워할 수 있었을까. 아빠에 대한 마음이 왜이렇게 모질까. 아닌척 했디만 모진 마음이 또 미안하고 미안하다. 나의 변함없는 일상이 미안하다.


기도는 이렇게 해야겠다.

가족들의 모질어진 마음를 풀어내고 화해의 시간으로 돌려 달라고. 시간이 얼마가 됐든, 아빠의 남은 여생이 평안하고 기쁘게 해달라고. 그리고 우리 가족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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