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소견 결과가 나온 지 꽤 됐다. 위에 궤양이 심해 움푹 파여 있는데 회복이 불가하고, 간암도 말기인 단계라, 어느 한쪽을 치료하면 어느 한쪽이 무리가 가서 약을 쓰기도 어렵다고 했다. 통증제 만 받은 채, 평균적으로 3개월 보면 된다고 했다. 길게는 1년 넘게도 살지만, 한 달 안에 응급상황도 발생할 수 있으므로, 평균적으로는 3개월을 선고받았다.
처음 발병됐을 때는 문득문득 생각날 때마다 눈물이 쏟아졌고, 검사를 한다 안 한다로 아빠와 실갱이하며 슬픔이 무디어졌다가, 3개월 선고를 듣고 나니 다시 울컥했다. 그 시간 동안 뭘 해야 할까.
생각난 건 복지카드였다. 시집가기 전 1년에 소정 지급되는 회사 복지카드를 준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 아빠가 요즘은 그 카드 없어진 거냐고, 은근 그 카드 쓰는 맛이 쏠쏠했다며 기대심을 내비쳤다. 차곡차곡 모아 여행이라도 가야지, 아님 애들 교육비에 보탤까, 나도 계획이 있던 돈이라 선뜻 줄 수가 없었는데, 3개월 일지 모르는 아빠에게 뭔들 못줄까, 판정을 받자마자 나는 카드부터 쥐어 주었다. 이 몇 푼 때문에 평생 후회할 수도 있으니까. 전화도 최대한 상냥하게 받고, 안부도 자주 물었다.
그런데 그것도 오래는 못 가나 보다. 어제 아빠가 전화해서 갓김치가 먹고 싶은데 엄마가 못 먹게 한다며 투정을 부렸다. 나더러 사달라는 말이겠지. 얼마 안 되는 복지카드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푹푹 써내는 카드 알림 문자에, 좀 아껴 쓰지 라는 마음까지 들었다. 어제는 사내공모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다 탈락 결과를 접한 직후였다. 아이 셋은 각자대로 말썽을 부리고 있었고, 도와줄 이는 그 시간엔 아무도 없었다. 때맞춰 전화한 아빠에게 나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잘 대답하려고 해도 툴툴툴 거리고 있었다.
여섯 살 된 첫째가 요즘 매일같이 혼나는데, 밤마다 본인의 행동에 대해 미안했다고 고백한다. 말썽을 안 부리고 싶은데 자꾸 말썽을 부리게 된다면서. 매번 같은 사과를 하고 같은 말썽을 부리지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어디 아이들 뿐인가, 아이들 잘못인가. 내 말 하나도 내가 조절할 수가 없는데, 바로 사과해주는 아들은 나보다 백 배 천 배 낫다. 말이라도 예쁘게 해주는 게 얼마나 감사한가.
퇴근길에 아빠한테 전화해 봐야지. 말이라도 예쁘게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