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느닷없는 자가격리

by 수박씨

아이의 유치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유치원 수업 특성상 전층을 오가며 수업을 했기에, 원생 전원 자가격리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추가 확진자는 없이 모두 음성이었다.)


우리 집은 화장실도 하나, 구성원이 아이 셋에 할머니까지 6명이나 되니 분리가 잘 되지 않는다고 시설에 들어갈 것을 담당 공무원이 제안했다. 시설? 시설은 어떤 시설이지? 하랑이랑 나랑 둘이 들어간다고? 나머지 애들은 어쩌지? 오만가지 생각이 오갔다.


주말이 지나 공무원과 다시 얘기하니 모든 것은 선택사항이며, 조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조부모님 댁으로 보내는 방법, 그것도 안된다면 한 집에 있되, 아이들을 분리시키고, 밥을 따로 먹고, 이가 화장실을 다녀오면 소독제를 뿌려 분리시키면 된단다.


아이 둘 이상의 집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절! 대! 화장실이 하나든 둘이든! 아이가 방안에만 있지는 못할 것이며, 분리는 꿈에라도 안될 것이라는 사실!(뭐, 잘하시는 분들도 물론 있겠지만..)


하여간 이렇게 해서 자가 격리자의 보호자로서 2주간의 무급휴가가 주어졌으며, 온 가족이 20평짜리 집에서 왁자지껄 복작복작, 집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만들기와 놀이들을 하며 보냈다. 내가 다시 육아휴직을 낸 건가 싶을 정도로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다행히 자가 격리자 외에는 모두 정상생활이 가능해서 가까운 슈퍼 정도는 왔다 갔다 할 수 있었고, 그렇다면 이 자가격리가 의미가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 ※모두 음성으로 격리 해제되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아빠가 위독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혼수상태가 이어졌고, 아빠는 24시간 내에 죽는다며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위치추적이 달린 휴대폰은 집에 두고, 부랴부랴 새벽부터 친정으로 향했다. 혀가 말린 아빠의 말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고, 임종 때 보인다는 모든 징후들이 보여, 우리는 마지막을 준비했다.


회사에 연계된 상조업체에 전화해 임종했을 때의 대처방법을 알아두고, 점찍어뒀던 화장터에 연락해 예약을 걸어두었다. 나름의 패셔니스트였던 아빠의 옷가지들을 박스에 담아 정리하고, 버리지 못했던 널브러져 있는 책들을 버렸다. (아빠가 건강했을 땐 먼지 하나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었는데, 이참에 아빠 방이 정리가 되니, 속 시원했다는 건 안 비밀이다.)


그리고는 임종의 때에 가족들이 할 일을 찾아보니 사랑한단 말과 좋았던 기억들을 많이 이야기하란다. 차마 사랑한단 말은 나오지를 않으니, 유튜브 찬양을 틀어놓고 따라 부르며 아빠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빠도 천천히 입을 열어 따라 불렀다. 가슴 깊은 곳 어딘가가 뜨거워졌다.


바로 죽을 것 같던 아빠를 뒤로하고, 집에 가서 일단 미뤄뒀던 집안일을 해놓고 다시 올 참이었다. 그건 바로 아들의 격리 해제를 위한 코로나 검사였고, 무사히 음성으로 마무리됐다. 임종을 앞둔 아빠가 있어도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게 또 어른의 삶인가, 싶었다.


아빠는, 아직까지는 괜찮다.

나라에서는 요양간호사도 보내줘서 건강체크를 할 수 있었는데, 혈당이 급격히 떨어져서 혼수상태까지 갔던 거란다. 설탕물이라도 먹고 혈당이 회복되면서, 아빠는 언제 혼수상태가 왔었냐는 듯 발음도 정확하고, 심지어 걸었다!


정신이 든 아빠는 물었다.


내 옷은 다 어딨니? 여기 있던 책은?


엄마가 쿨하게 답했다.


얘네들이 아빠 돌아가시는 줄 알고 다 버렸어~!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남은 시간 평균 3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