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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히 지나간 한 달

무심할 수 없었던 일상

by 수박씨

끝내 아빠는 이 세상과 이별하셨다.

변변찮은 유서도, 유언도 없이.

마지막 예배를 마치고, 심장이 멈추었다.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다는 것에 감사했다.

아빠가 부를 때에 지체하지 않고 가봤던 것이, 위안이 되었다.


아빠의 굳은 몸을 안고 꺼이꺼이 울 때는 슬픔이었는데,

아빠를 태워 한 줌 흙으로 만들어 꽃으로 피우는 장지에 가서는 편안했다. 평안했던걸까.


그렇게 무심할 수 없던 큰 일이 있었고, 한 달이 지났다. 인생의 가장 큰 일 중 하나일텐데, 일상은 참 그대로, 바쁘게만 흘러갔다. 평소에도 아빠와 가깝게 지내진 않았던터라, 살아계셨을 때의 일상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단지, 아들이 마포 할아버지를 찾을 때면,


할아버지는 이제 아프지 않아. 아프지 않는 천국에 계셔.


라고, 말해주는 것 말고는.


그러는 사이, 부서 이동도 했다.

더는 전화는 받지 않아도 됐다.

마음이 정돈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객들을 대하기가 힘에 부쳤는데 때마침 자리가 생겼다. 지원했던 부서는 아니지만, 전화는 안받아도 되니 가겠다고 했다.


살아서는 아빠가 참 마음의 숙제같은 존재였는데, 돌아가시니 다 아빠가 도운 것 같다. 살아계실 때보다, 더 곁에 함께하는 느낌이다. 가족들도 무슨 좋은 일이 생기면, 아빠다 도왔나보다, 자연스레 말한다.


전화를 안받으면 마냥 좋을 줄 알았다.

오고나니 인바운드의 자유로운 휴가와, 콜이 많지 않을 때의 휴식과, 동료들의 잡담이 그리웠다. 떠나고 나니 욕하던 고객들은 생각이 통 안났다.


사람 마음이란 이렇게 얇디 얇다. 부서지지나 말아라, 얕은 바람에 휘리릭 날아갈지라도.


이렇게,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 특별한 일상들이 지나간다. 잘 흘려 보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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