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한지 사흘째에 아빠는 퇴원을 했다. 간암인데 일주일도 안되서 퇴원을 한다고?조직검사도 MRI도 남아있는데, 더이상 병원은 싫다고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가족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다. 그건, 우리가족의 뿌리깊은 루틴이었다. 아빠의 고집은 그 누구도 꺾을 수가 없었고, 그게 옳든 그르든, 상식이든 비상식이든, 그냥 못본 척 못 들은 척으로 외면하면서 살았다.
퇴원의 이유로 입원비 때문일까 생각해봤다. 그건 아니었다. 나라지원으로 5프로만 내면 되고, 실비에 간병인 보험까지 있어 병원에 있는게 가족에겐 이득이었다. 내일이 당장 MRI 촬영인데 굳이 오늘 퇴원하겠다는 아빠가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나릉 포함한 가족 외 아빠의 병을 아는 타인 모두. 하지만 아빠는 그렇게 했다. 병원 밥은 먹을 수 없고, 답답하다는 이유였다. 병원이니까 답답할 수는 있다. 밥은 나도 먹어봤는데 맛만 있었다. 이렇게까지 답답한 양반이었나, 싶었다. 우리 가족은 언제나 그렇듯 아빠를 포기했다.
퇴원을 앞두고 친정집 정리를 좀 해둬야싶어 들렀는데, 작디 작은 아빠 방엔 버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쌓여있는 책들, 약들, 물건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엄마와 동생은 아빠의 물건을 건드렸다간 집안이 시끄럽기 때문에 먼지 한 톨 건드리지 않았다. 치우러 갔던 나 역시도 아빠 방은 포기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버리지 못하고 사는지.
아빠가 선언한 날에 결국 아빠는 퇴원을 했다. 동생은 그런 아빠가 싫어 퇴원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았고, 본인도 엄마도 일해야하므로 집에 와도 돌볼 수 없다는 입장을 쌀쌀맞게 얘기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아빠는 엄마가 일을 마치고 오는 날까지 딸들이 한 솥 끓여놓고 간 죽으로 끼니를 떼웠다. 집에서 찾아보니 간암환자에게 빠르게 흡수되는 죽이 좋지는 않다고 했다. 게다가 흰쌀로 지은 죽이었다. 불안했다. 아이가 셋인 나는 오도가도 못하고 새벽배송만 배달해대면서 아빠의 동태를 살폈다.
병원의 항암을 원치 않기에 아빠는 조직검사는 안받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아빠의 의견을 수용하고, 자연치유 쪽으로 탐색했으나, 그 쪽에서도 조직검사까지는 받아야 치료방향을 잡을 수 있다가 맥락이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병원은 더 이상 안가도 된다, 가 공통의 의견이었고, 부부가 의견이 같으니 자식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엄마가 집에왔다. 아빠와 산책 중이라고 했다. 이제 그만 신경써도 된다고 했다. 그게 엄마의 방식이었다. 너희는 몰라도 돼, 우리가 알아서 해. 언니에게 들으니 오늘은 오리고기도 먹었다고 한다. 간 해독이 아직 안될텐데..녹즙도 아직 준비가 안됐는데..식이를 한다던 엄마의 방법은 도대체 뭘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내가 간섭할 수 있는건지, 이렇게 또 못들은척 못본 척 있어도 되는건지, 이렇게 아빠를 보내게 되면 후회하지는 않을지, 아직, 아무일도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폭풍전야같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