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빠가 암판정을 받았다.

by 수박씨

너무 미워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사랑했던, 결혼하고 아이낳고 나니 그런 아빠였어도 존재 자체로 의지가 되는구나 싶었던, 아빠. 전이되고 있는 암의 근원을 찾고자, 아빠가 오늘 입원했다.


그간 각자의 삶에, 먹고 살기, 애키우기 바빠 자매들끼리는 한 번도 뭉치지 못했는데, 아빠 덕에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어쩌면 아빠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각자의 시간을 억지로 빼내어 앞으로의 시간을 대비하고자 했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죽음의 순간이 닥치는 걸까. 예견할 수도, 알았어도 다음 상황을 가늠하기 힘든 이 순간에, 그래도 나 혼자가 아니어서 감사했다. 남편도, 자식도, 친구도 아닌, 가족이 지금만큼은 절실했다.


고집불통인 아빠의 성격 탓에, 딸들은 괜한 다툼을 일으키기 싫어 비상식적이라고 생각되는 일들도 회피해버렸는데, 그런 작은 무관심이 모여 큰 병이 올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던건 아닐까, 세 딸의 이야기를 주섬주섬 모으며 생각했다.


몇달 전부터 혈색이 좋지 않았었지, 허리가 아픈 후로 건강이 급속도로 안좋아졌었지, 혼자 알부민도 맞으러 다녔었네, 아빤 어느정도 예감했었을까, 그즈음부터 '얼른 천국가야지'라는 말이 늘었었지, 유통기한 넘은 식재로들도 그냥 먹고 지냈었는데, 그런 환경탓이었을까? 싸우더라도 다 정리를 해줬어야했는데, 왜 그렇게 무심했을까...


사진도 뒤적였다. 아빠 사진은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왜 이렇게 추억이 없는거지. 퇴원할수 있다면 가까운 데라도 억지로라도 다녀와야지..


상황들도 예측해봤다.

손쓸 도리 없이 얼마 안남은 경우, 약간의 치료와 시간이 있는 경우, 항암이 길게 갈 경우.


우리처럼 여유없는 집에서의 최악은, 항암이 길어지는 경우였다. 엄마가 일을 못하고, 치료에 전념해야하는 기간이 길어지게 되면, 가장 큰 걱정은 돈이었다. 이만하면 됐지했는데, 큰 일이 나고 보니 모아둔 돈이 터무니없이 없었다.


서로에게 줄 것 없는 가족들이라, 서로가 참말 미안하다.

20201126_142248.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금은 휴가중.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