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꿀까?
<삼미슈퍼스타의 마지막 팬클럽> 리뷰
복직을 하고, 고객상담팀에서 1년 넘게 일하면서 두 번의 사내공모와 낙방을 맛보고, 복직 전에도 갈구했던 사내공모 혹은 이직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는 그 일이 어떻든, 무얼하든, 내 적성과는 상관없이 일반직을 원했고, 그것이 아니라면 공무원 준비를 해야겠다며 열을 올린 적도 있었다. 왜 그렇게 내 자리에 만족할 수 없었을까. 여기만 바라보고 이거다 싶어 들어온 회사인데. <삼미 슈퍼스타의 마지믹 팬클럽>을 보며 깨달았다. 그건 바로 제대로 된 '소속감'을 원했던 거였다.
책을 읽고 소개글을 쓴다는 전문 분야의 일을 하는 줄 알았던 '전문직'군의 일은, 이 분야의 일만 할 수 있기에 승진도, 급여도 '일반직'과 달랐다. 본사의 어떤 직무도 가능하다는 일반직은 회사의 '주류'였고,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는 전문직은 '비주류'였건 거다. 그것이, 회사를 다니는 내내 신분차이를 느끼고, 불만족스러운 원인이었다. 나는 '주류'가 되고 싶었다.
야구의 '야'자도 관심없는 나는 결혼하기 전, 시아버지 생신에 댁을 방문했을 때부터 '기아'의 경기를 섭렵해야 했다. 물론 그냥 '보기만'했을 뿐, 당최 아는게 아직까지도 없는 야구 무지랭이다. 남편이 틈만나면 야구경기를 키는 4월이 두려울 뿐, 재미를 발견하지 못했다. 기아는 매년 봐도 비슷한 성적인거 같은데, 당최 무슨 재미로 보는건지. 그런 내가 야구를 주제로 삼은 소설책을 집어 들었다.
프로야구가 등장 하는 동시에 인천에도 '삼미 슈퍼스타'라는 전설적인 구단이 생기며, 열두 살 소년 야구팬의 마음에 불을 지피운다. 부푼 가슴을 안고 응원했다가, 유사이례의 연이은 꼴지의 성적으로 '삼미'의 팬이라는 이유로 부끄러웠다가, 다시금 전설적 플레이로 프로야구의 준우승을 차지하는 짜릿함도 맛보았다가, 다시금 꼴지의 자리로 돌아오는, 그리고 다시는 그 어떤 역전 드라마도 없는 '삼미'를 통해 소년이 청년으로, 그리고 중년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였다.
야구가 이렇게 대단한 스포츠였나 싶은게, 타율이며 몇할 몇푼 몇리의 기록이며 줄줄줄 읊어대는 소설에, 한 소리도 못알아들어 대충 스킵하기도 하면서 읽어 내렸다. 이건 기사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런 신문 기사들 모아 옮겨 놓은 것도 소설이 되는가 싶은가 하는 차에, 중간 부분으로 오니, 아 이건 야구 이야기가 아니구나, 꼴지 구단 '삼미'를 통해 나같은 '비주류'의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구나, 하며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새로운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그저 평범하다고 생각해온 내 인생이 알게 모르게 삼미 슈퍼스타즈와 흡사했던 것처럼, 삼미의 야구 역시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야구였단 사실이다. 분명 연습도 할 만큼 했고, 안타도 칠 만큼 쳤다. 가끔 홈런도 치고, 삼진도 잡을 만큼 잡았던 야구였다. 즉 지지리도 못하는 야구라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야구를 했다는 쪽이 확실히 더 정확한 표현이다. 다시 말해 평범한 야구를 했던 삼미 슈퍼스타즈.
그래, 지지리도 평범한 '삼미'같은 나. 그걸 인정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뭐라도 될 줄 알았고, 뭐라도 되고 싶었지만, 지지리 평범하디 평범한 자리가, 내가 있는 자리였다.
그래서 그 삼미들은 어떻게 되는걸까.
소년은 소속이 삶을 바꾼다는 것을 '삼미'를 통해 깨달으며, 인류대에서 대기업으로, 세상이 말하는 '프로'가 되기 위해 '하라는대로' 열심히 수행해간다. 그 당시의 '열심'이라는 것은 가족도 생활도 다 버린채 일, 일, 일에 목숨거는 때였고, IMF로 인한 구조조정으로 일도 가정도 모두 잃은 주인공은 처절한 패배를 맛본다. 이게 결국 삼미들의 최후인가.
<자신만의 야구를 하라>
아! '삼미'는 비주류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삼미'는 패배자의 표본이 아니고, 평범하고 비루한 자의 표본이 아닌, 과열된 경쟁 속에서, 소위 말하는 '프로'의 세계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자신만의 야구를 펼쳐 나가는 '그들만의 신앙'이었던 거다.
그 ‘자신의 야구’가 뭔데?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야. 그것이 바로 삼미가 완성한 ‘자신의 야구’지. 우승을 목표로 한 다른 팀들로선 절대 완성할 수 없는—끊임없고 부단한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의 결과야.
뭐야, 너무 쉽잖아?
틀렸어! 그건 그래서 가장 힘든 ‘야구’야. 이 ‘프로의 세계’에서 가장 하기 힘든 ‘야구’인 것이지. 왜? 이 세계는 언제나 선수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야.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중에서
아~~~
이렇게 적확한 시기에 이 책을 읽게 되다니!
아직 콜센터에서 일하는 것조차 부끄러워 말하지 못하는 나. 단축근무의 원활한 사용을 위해 내가 선택했던 자리이건만, 일의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사회적 인식이 낮은 탓에, 더 자리를 옮기고 싶었던 나, 어떤 '자기만의 야구'도 없이 프로의 세계로 진입하고 싶었던 나였기에, 이 책은 구원과도 같았다. 자기만의 야구를 한다는 것은, 프로를 추구하는 세계에서는 정말 하기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회사에서는 학벌이나 승진이나 처우 따위로, 육아에서는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힘을 쓰고 사는 우리. 부동산에 밝아 시세차익을 크게 낼 수 있는 집을사고, 주린이라도 되어 투자공부에 열을 올리고, 자기계발과 몸매가꾸기 등의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사는 것이, 똑똑한 삶을 사는 것일까.
어찌됐든 가정이 있고 서울 한복판에 살면서, 힘든 공은 안치고, 잡기 어려운 공은 안잡는 '삼미의 야구'는 나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아이들 기본적인 교육만 하는데도 월급이 모자랄 판이며, 가족의 사건사고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면, 힘들어도 칠 수 있다면 쳐야 하는게 맞는 것이다.
그러나, 과열될 필요는 없다. 힘에 부치면 쉬었다 가면 되고, 나를 원치 않는다면 안 가면 그만이다. 소속이 어디든,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칠수 있는 공이라면 기꺼이 치면서, 위축되지 않는 것! 이게 오늘의 핵심이다. 하지만 정말 어렵다는 건 잊지말고.
그러고보니 오늘은 승진대상자이나 매니저만이 다음 직급으로 승진할 수 있다고, 인바운드 아닌 지원쪽 일도 해보라는 권유를 받으며 팀장님과 면담을 했다. 티오가 나면 알려주십사 부탁드렸고, 집에 와서 나는 나와 비슷한 직급들을 훑었고, 매니저의 공석을 확인했고, 할 수 있다면 해봐야지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크고, 남편이 자리를 잡으면, 하고 싶은 공부도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