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게 '생리'란 아주 많은 의미가 있다.
매주 주기적으로, 정확한 시기에 한다는 건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분비되고 있으며, 임신 가능성이 있으며, 건강하다는 증거다. 원래 주기적이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들은 항상 불규칙적이었기에 3~4일 늦게 '생리'를 한다고 한들 신경쓰지 않는다.
반면, 나처럼 정확한 주기에 생리를 하던 사람이, 일주일여 지나도 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건 직감적으로 '임신'이었다. 머리가 쭈뼛 섰다. 새벽 4시에 눈이 떠져 잠이 오질 않았다. '혹여나 진짜 임신이면 어쩌지?'
넷째에 대한 블로그를 훑었다.
다들 경악했고, 당황스러웠고, 그럼에도 기쁘게 낳을 준비를 하는 기록들 이었다. (그리고 당장, 남편들이 묶으러 갔다는 글들이 많았다...때는 늦었겠지만...)
여느 까페에는 부정적 의견들도 있었다.
경제적인 면이나, 부모의 정신적 물질적 뒷받침이 되지 않는다면 낳지 말라는 조언들이 보였다.
나는, 나는 어떡해야 할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이라면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낳아야 된다면, 서울에서는 못 살겠네. 넓은 집으로 가야하니까.
회사도 못다니겠네. 넷째 육아휴직을 도대체 어떻게 쓴단 말이냐.
어머님, 엄마한테는 어떻게 말하지? 넷째도 키워달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고, 내가 다 감당해야 할 일이구나. 이제부터 진짜 전업맘으로 육아일기를 써야 되나?
삶이 360도 바뀌는 풍경이었다.
이제 회사에 적응해서, 운동도 시작하고 살만한데. 하늘이 무너져 땅으로 꺼져 버렸다.
한숨이 수만번 나왔다.
새벽기도를 가려던 남편이 깨어있는 날 보며 깜짝 놀랐다.
남편: 뭘 보고 있어?
나: 넷째 임신한 사람들 블로그. 생리를 일주일 넘게 안해.
남편: 좀 늦는거겠지~ 그럴리 없어~ 난 한게 없다구!!!
니가 안하면, 뭐 동정녀 마리아처럼 성령이 잉태했겠니?
겨우 맘을 추스리고, 퇴근 길에 당장 임신 테스트기부터 샀다.
요즘 임신 테스트기는 정확도도 높고, 생리예정일 전에도 확인이 된다고 했다. 밤낮도 상관이 없다고 했다.
누가 볼까 조심조심 화장실로 향했다. 1분, 2분, 3분 후.....
다행히도 음성이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남편과 하이파이브를 외쳤다.
정말, 다행이야....생기지도 않은 아이에게 괜시리 미안했다.
더욱 다행히도, 남편 스스로 비뇨기과를 당장! 예약했다.
(뚜둥, 그런데...... 여름에는 정관수술 하는거 아니라고 의사가 돌려보냈다!!!언제 또 갈 수 있을지..)
소동 이후 2-3일이 지나도 바라던 '생리'는 기미가 안보였다.
왜지? 또다시 불안했다.
테스트기의 적정 시기는 생리예정일이 아닌, 관계 후 14일부터가 정확하다는 글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는 또 남편을 잡았다.
남편은 때마침 휴가이니, 아예 산부인과를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아이 셋을 맡기고 아침부터 산부인과로 부랴부랴 향했다. 초음파로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고, 피검사로는 정확한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산부인과에서는 초음파로 검진했다. 자궁내벽이 두꺼워지지 않은 걸로 봐서는 임신은 아닌 것으로 예상되나, 정 확실하게 알고 싶으면 피검사를 해보아라, 결과는 내일 나온다, 그러나 다음주 정도에 임신테스트기를 한 번 더 해보는 걸 추천한다, 는게 의사의 의견이었다. 하루이틀 빨리 안들 뭐 별 수 있겠나 싶어, 다른 검사는 하지 않고 돌아왔다.
그리고 14일이 되는 날, 다시 테스트기를 해봤다.
역시나 음성이었다.
그럼 도대체 왜, 여태, 생리를 안하는거지? 나처럼 정확한 주기를 맞추던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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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었다. 올해 나이 방년 40세.
아직, 만으로는 39살인데요..폐경은 아닌거죠..
이젠 [마흔 초반 폐경]으로 블로그를 탐색했다.
때아닌 임신 소동으로 집안을 온통 뒤집었던 건,
나의 노화 때문이었다.
그 후로 2주 후 폐경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다행이고 또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