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의 경우에 말이다.
일을 하는 데 있어 잘 해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이걸 내가 하는 게 맞나 싶고, 일을 그만둬야 하나 싶고, 다른 팀원에게 민폐가 아닌가 싶고, 등의 생각으로 곤혹을 치른다. 그리고 대게는 그때에 피하는 방법을 택했다. 휴직을 하든지,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든지. 그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했다.
재미있게도 그 순간은 피해도, 다시 비슷한 상황은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넘어야 할 산은 낮은 턱에서 중간 턱으로, 중간 턱에서 꼭대기로 계속해서 생긴다. 그만큼 나도 마음이 단단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다지 잘 이겨내진 못했다.
상담직 3년 차. 인바운드를 2년 가까이하고, 아빠의 죽음이라는 일생일대의 큰 일을 겪고 나니, 다시 전화를 받는 일이 버거워 다른 보직을 신청해 문구류 제휴몰 부서로 옮겼다. 비수기였고, 처음 맡는 거라 그다지 크지 않은 몰로 배정받아 2~3개월 편히 지냈다. 바로 이거지! 하며 룰루랄라 지냈으나, 이쪽 일은 6개월씩 로테이션으로 담당을 바꾸었다.
6개월이 한참 되기도 전, 휴직자의 복직과, 휴직을 들어가는 팀원이 맞물려 더 빠른 로테이션을 맞았다. 급한 휴가를 쓰는 일이 다른 팀원보다 많았던 나는, 매니저님이 넌지시 인바운드, 배송관리, 1번 몰, 2번 몰이 휴가가 자유롭다고 추천했다. 그리고 그 일은 내가 하기 싫던 1순위의 업무기도 했다. 인바운드는 다시 갈 자신이 없어 거절했고, 그 후 배정받은 일은 배.송.관.리. 였다. 때마침 연말연시 다이어리, 스티커, 필기구의 시즌이었다. 바로, 극.성.수.기!
문구류는 우리 회사의 주력이 아니다. 고로 시스템이 세상에, 수작업이었다. 만여 개가 넘는 주문 건 중 3일 이상, 2일 이상의 기준으로 지연된 주문 건을 추출해, 수동으로 건건이! 문자를 보내고, 취소를 하고, 다시 문자를 보내고를 반복했다. 여기에 출고가 안 되는 모든 업체에 일일이! 전화해 언제 내보내냐고 재촉하는 일도 내 몫이었다. 또 업체에서 요청하는 게시판의 글들을 각 담당자에게 배분하는 일도 또한 내 일이었다. 야, 이건 뭐야, 노가다잖아!!!!!
점심 먹을 시간도 사치였고, 퇴근시간은 늦어져만 갔다. 끊어두었던 필라테스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가운데 손가락 중간마디 뼈가 아파왔고, 위가 아프다고 호소했다. 몸이 망가져도 성과가 좋으면 위안이 되는데, 몸은 몸대로 성과는 성과대로 우울했다. 관리 누락건이 자꾸만 나왔고, 항의하는 고객이 생겼으며, 고스란히 나의 업무과실이 되었다.
이 아날로그적 시스템을 모두 통탄하고 있기에 대단히 뭐라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거쳐온 일이고, 다들 겪어본 마음이니까. 다만, 꼼꼼하지 않은 내 일처리 때문에 누군가 곤혹을 치르는 모습을 보는 건, 내가 직접 혼나는 일보다도 마음이 괴로웠다.
나는 기도했다. 이 일로 휴직한다고 하긴 14년 차 직장인에게 좀 면이 안 서고, 남편의 직장이 지방으로 가기를. 마침 이직 시즌이어서 이력서를 넣고 있던 참이었다. 그중 내가 바랐던 서울과 그리 멀지않은 지방에 남편이 덜컥 합격했다. 하나님의 뜻이구나, 감동이 밀려왔다.
하지만 웬걸, 남편이 바라던 곳도 합격되었다. 그곳은 인천이었다. 아뿔싸, 인천은 멀기는 해도 출퇴근은 가능했다. 오, 하나님은 누구 편이신가요! 집 주는데로 가자는 나의 강력한 요구에 처음엔 지방으로 가기로 얘기가 됐으나, 입사 거절에도 불구하고 재차 연락하여 그 생각 변함없냐는 물음에, 또 지방에서 준다던 집의 위치가 원하던 조건과 조금 어긋나는 부분이 생기면서, 나의 바람과는 달리 인천으로 확정되었다. 아, 남편 편이셨군요. 또르르르.
인천으로 가면 출퇴근은 어떻게 하지? 매장으로 옮겨야 하나? 거긴 주말근무가 있는데? 저녁 근무도 있는데? 그러나 저러나 집도 나가지 않아 이사도 못한 상태이기에 출근은 어쩔 수 없이 계속됐다. 그렇게 참고 버틴사이 극성수기가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관리 건수가 눈에 띄게 줄었고, 조금 많아져도 12, 1월 초에 비할 건 아니었다. 이 시기를 지나고 나니 다음 일이 수월했다. 나름의 방법도 생겼고, 손도 빨라졌다. 중요한 건 실수도 줄었다. 그게 정말 뿌듯했다. 탁월한 일은 아니지만 익숙해지긴 했다.
도망가지 않는 법을 알려주신 것이, 이번 기도의 응답인가 보다. 다 지나간다. 다 잘할 수는 없다. 잘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더 대단하다. 남들에게 조금 욕을 먹어도 괜찮다. 지나고 나면 익숙해지고, 그걸 버티고 해냈다는 자기인정도 생긴다.(but, 천직은 아니다. 계속은 못할것 같다. 그저 존.버.다.)
하고 싶은 건 시간부터 내보자. 상황을 만들어야 하나, 상황이 되면 해야하나. 휘몰아치던 일도 이제 마무리가 되어가니, 새해도 시작되었으니, 뭐라도 해봐야겠다. 일단 회사 할인이 있다니 공부하고 싶었던 사이버대학에 입학원서를 작성중이다. 그리고 작가님이 사라지셨다는 브런치의 알림에 응답하여, 다시 써볼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