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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씨 Oct 10. 2021

오은영 효과

엄마 반성문

삼 남매의 둘째는 우리 집의 유리공주다. 손이 야무지고 똑 부러져서 전혀 손이 안 갈 것 같은 아이인데, 한 번 감정이 틀어지고 마음이 맞지 않으면 떼를 쓰고 악을 쓰고 아무리 설득해도 듣지 않는다. 특히 씻을 시간이 되면 아이와 나 혹은 남편과 극도의 갈등을 빚는다. 씻기 싫은 아이와의 갈등은 재미있게 놀면서도 씻겨보고, 씻을 때마다 용돈도 줘보고,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도 줘보고 갖은 방법을 동원했고, 효과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혹은 남편이 기다려주지 못할 때 갈등은 정점을 찍었다.


요즘 또 우리 부부가 피곤해졌나 보다. 아이를 기다려주지 못했다. 마음속에는


도대체 언제까지!!!!

오빠, 동생은 다 하는데, 왜 너만! 유독!
말을 안 듣니!!!!


가 되었다. 물론 말로도 뱉었던 것 같다. 얼마나 상처일까. 상황이 반복되면서 뭔가 문제가 있음을 감지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그래서 오은영 박사님을 찾았다. 제목도 이렇게 리얼할 수가 없다. [참지 못하는 아이 욱하는 부모]. 첫 장부터 형광펜의 도가니였다.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것은 동생이 생긴 아이가 징징거리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본능이라는 점이다. 아이에게는 부모의 보살핌과 사랑이 생존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경쟁자가 생긴 것이다. 사랑을 나눠 받아야 한다. 먹을 것을 나누는 것도 불안한데, 사랑을 나눠야 되니까 본능적으로 두려워진다. 엄마를 뺏기거나 엄마에게 사랑을 못 받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아이는 불안하다. 당연히 사랑받기 위해 아이들이 제일 먼저 쓰는 방법은 자기도 아기처럼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잘하던 행동도 안 하고 징징대면서 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때도 받아 줘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요구나 행동은 안 되겠지만, 웬만하면 아이의 응석을 받아 주는 것이 좋다. 아이가 안심할 수 있도록 사랑을 충분히 충전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148p
나는 왜 조급함을 가지게 되었을까?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아이들이 그 나이에 저지를 수 있는 미숙함, 아이라서 당연한 것들을 수용받고 크지 못한 경우 그럴 수 있다. 작은 실수에도 혼이 많이 났거나, 혼이 나지 않으려고 마음을 졸였거나, 부모에게 잘 보이려고 너무 애를 쓴 경우(결국 혼이 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참 편하지 못하게 큰 것이다. -181p


유리공주인 둘째는 사랑이 만족스럽지 못했나 보다. 더 예뻐하고, 안아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느끼기엔 그러지 못했건 것 같다. 첫 째는 첫째라 안쓰럽고, 첫 정이라 애틋했다. 막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물고 뜯고 싶도록 사랑스러웠다. 둘째도 물론 예뻤고, 똑 부러지는 아이라 혼자 하도록 두었다. 참 야무지게 혼자도 잘했다. 그래서, 관심을 더 받고자 하는 투정이었을까? 그렇다기엔 유독 씻을 때, 하기 싫은 걸 해야 할 때 심해지는데. 그렇다고 안 하는 건 아니니.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 그걸 참지 못하고 있는 우리다. 어른의 문제였다. 욱함도 습관이라, 한 번 욱하고 나면 더 잦은 욱이 나왔는데, 그럴 때는 아이들의 조그만 실수에도 버럭하고 나왔다. 우유나 물을 따르다 흘렸다거나, 오줌을 실수했다거나.


강압적인 육아로 감정적 핍박을 받은 아이는 평생 감정을 수용받지 못한 의존 욕구가 남는다. 그래서 누구든 나를 잘 대해 주지 않거나 이해해 주지 못하면 큰 분노가 생긴다. 그러면 쉽게 욱하게 된다. 또한 감정적으로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어릴 적에 공감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남의 입장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줄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면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한다. 항상 자기감정만 소중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해할 만한 상황인데도, 상대가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때도 욱할 것이다. 또한 보고 듣고 자란 것이 모두 강압적인 대처라 아이가 할 줄 아는 대처가 ‘욱’밖에 없게 된다. 그것이 최선이 아닌 줄 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욱으로 끝내는 아이가 될 수 있다. -319p


20대 후반 무렵, 부모님과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부단히 노력했었다. 교환일기를 써보자고도 해보고, 대화도 나누었지만 화만 더 날 뿐이고, 벽과 이야기하는 기분으로 시작과 동시에 막을 내린 날들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꽉 막혔어, 대화가 안돼, 바뀌지 않아로 마무리됐다.


심리학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착오를 저질렀단다. 원부모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부모를 바꾸려고, 화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가 어떤 모양인지 살피고, 나의 상태, 내 아이와의 관계를 제대로 설정하고자 알고 가야 하는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부모님과의 이야기들을 꺼내봐야겠다. 이십 대 이후로 접어뒀던 마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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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 참! 책을 읽고나서는 욱이 확 줄었다. 이것이 오은영 효과인가. 정신줄을 잡고 있었더니 기다릴 수 있게 되었고, 화내지 않고 가르칠 수 있었다. 어른이니까. 난 아이들을 가르쳐야만하는 부모이니까. 내 몸이 힘들다고, 내 욕구가 먼저라고, 생리 전 증후군이라고 더이상 핑계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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