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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씨 Oct 05. 2021

죽일 놈의 체력

체력=근성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체력이 없어 근성도 없다. 조금 하다 안되면 나가떨어져 버린다. 쉬 열이 올랐다, 쉬 식어버리는 전형적인 한국인이었다. 아이에게도 다를 바가 없다. 아이들 수준에서 정말 신나게 놀 수는 있지만, 한 시간 이상 지속되면 짜증이 슬금슬금 올라오며, 이젠 너희들끼리 놀아! 하고 꽁무니를 뺀다. 한창 신나게 놀던 아이들은 으잉? 갑자기? 이렇게 재밌는데? 하는 얼굴로, 그럴 수는 없지, 하며 옷자락을 잡고 늘어진다. 이때부터는 엄마의 표정이 무서운 괴물로 변하며 웃음기가 사라진다. 그리고 '엄마 이제 힘들어'를 입에 달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그제야 풀이 죽어 다른 놀거리를 찾으러 떠난다.


휴일이었다. 모처럼 엄마, 아빠가 다 쉬는. 비가 왔다. 서울숲을 가려던 계획이 무산되었다. 느지막이 아침식사와 정리를 마치고, 엄마 아빠 잠깐 쉴게, 너희들도 핸드폰 좀 봐, 하고는 [어쩌다벤져스]를 재미나게 시청하려던 참이었다. 패드로 숫자 쓰기 게임을 하고 있던 막내가, 클릭이 잘 안되자, 엄마 아빠를 번갈아가며 잡아끈다. 친절히 패드를 아빠 앞에 두고 클릭이 잘 안될 때마다 눌러주며 티브이 시청을 이어갔다. 아빠가 해줘도 짜증 나는지 냅다 집어던지고는 엄마와 '신데렐라' 역할극을 청한다. 역시나 친절히 역할극을 시작했다. 같은 '신데렐라'인데 주인공이 언니, 엄마, 막내와 번갈아 바뀌면서 역할극은 끝없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꾸만 자리 이동을 원했다. 엄마는 티브이를 보면서 하고 싶다고~!!!


우여곡절 끝에 [어쩌다벤져스] 1회분의 방송이 끝났다. 이제부터 뭘 할까. 원래는 집에서 여름옷 정리를 할 참이었다. 옷 정리를 과연 할 수 있을까? 핸드폰을 보여주지 않으면 놀자고 난리일 텐데. 하는 수 없이 키즈카페를 가기로 합의했다. 이 코로나의 시국에도 많은 부모들이 키즈카페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 코로나 확진이 걱정되어 못 나가느니, 어떻게 되더라도 어디라도 나가야만 한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나가서도 한 놈은 동네 키즈카페를 가자고, 다른 놈은 농구하는 방방이가 있는 키즈카페를 가야 한다고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결국 가족은 찢어졌다. 둘째는 아빠와 동네 키즈카페로, 나머지는 엄마와 차를 타고 농구대 방방이가 있는 키즈카페로! 예상은 했지만 대기가 27명이다. 역시, 코로나 시국에도 키즈카페는 호황이다. 대기를 걸어놓고 점심을 간단히 먹어야겠다 싶었다. 그 사이 동네 키즈카페의 문이 닫혀, 나머지 가족도 어렵사리 합류했다.


예상보다는 빨리 우리의 순서가 왔다. 음식이 이제 막 나왔는데 들어오라는 키즈카페의 전화를 받고 후다닥 포장하여 입장을 서둘렀다. 아이들이 놀이장으로 신나게 뛰어 나갔다.


이제, 자유다!!!!!


우리 부부는 한 숨 돌리며 포장해 온 음식을 주섬주섬 먹었다. 흐뭇하게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제 겨우 세 살인 막내가 혼자 어디를 가도 따라나서지 않았다. 눈으로만 살폈다. 잘들 노는구나~라고 안심하는 사이, 10분? 20분? 지났을까. 첫째가 높은 곳에서 멋지게 점프하겠다며 뛰어내리다 가슴으로 떨어졌다.

괜찮아, 괜찮아, 안 괜찮으면 병원 갈까? 하며 자리에 앉아 안정을 취했다. 그런데 이놈이 이제 집에 가잔다. 2시간권을 끊었는데 지금 가면 어쩌니,, 할 수 없이 아빠가 자리에서 일어나 첫째와 놀아주러 나섰다. 그래, 역시 남자는 아빠와 놀아야지, 여유의 웃음을 띄우며 감자튀김을 씹고 있는데, 둘째가 자꾸 앞을 왔다 갔다 하더니, 한! 번~만~! 자기를 따라오란다. 아뿔싸, 불안의 서막을 알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그 후로 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설이다.


엄마 아빠가 휴일에 키즈카페를 가는 건, 아이들이 부모 없이도 아주 잘! 놀아주기 때문이다. 그 낙으로 코로나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키즈카페를 갔건만, 나는 2시간 내내 방방이를 뛰어다녔다. 뛸 때마다 오줌이 찔끔찔금 세어 나와 방방이를 하면 안 될 것 같았지만, 그래도 신나게 뛰었다.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엄마도 좋았다. 체력이 떨어질 즈음, 첫째와 볼풀장에 있는 공으로 서로를 맞추는 놀이를 했다. 이제는 그만하고 싶은데 첫째는 계속했다. 인상을 구기며 엄마 이제 그만할래, 하고 아이의 앞으로 갔는데, 첫째는 아랑곳하지 않고 플라틱의 작은 공을 내 볼에 찰지게 찰싹- 한 번, 두 번, 세 번, 깔깔대며 던졌다. 따끔했고, 기분이 나빠졌다.


야!!!!!!!!!!!!! 엄.마.가. 그.만.한.다.고.했.찌!!!!!!!!!!!!!!!!!!!!


씩씩거리며 자리로 돌아오는데, 첫째는 계속 따라온다. 너무 재밌다고 계속 놀잔다. 나는 다시 짜증을 퍼부었다.


엄마 힘들다고! 넌 왜 엄마하고만 놀라고 그래, 동생들이나 친구들이랑도 놀아!!!!


아이는 아빠를 발견하고 그리로 가서 나머지 시간을 보냈다. 곧 나올 시간이었다.

나가는 데에도 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 둘째와 신경전을 벌여야 했는데, 하루가 엉망진창, 피곤이 몇 겹으로 쌓였다. 엄마 체력이 이렇게 바닥이 났으니,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가기는 싫고, 몸은 피곤하고, 말도 안 되는 떼를 쓰고 울고 불고 하자, 나는 둘째의 입을 톡톡 치며 엄포를 놓았다. 그만 울어!!!!!!!!!!!!!!!!!!



이런 계모 같은 엄마가 있을까? 다른 엄마들도 나처럼 화를 주체하지 못할까? 나는 분노조절장애인 걸까?

화를 꾹꾹 눌러왔어도 결국 터지는 순간은, 체력의 한계에 다 달았을 때다. 더군다나 여성 호르몬의 분비가 많아지는 날에는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아이들은 엄마의 불안정안 분노에 시시각각 노출되어 있다.


집에 가서도 마지막에 화를 내고야 만 나 자신을 원망하며 우울했다.

그리고 첫째한테 가서 사과를 건넸다.


엄마가 몸이 너무 피곤해서 짜증을 냈네. 미안해


첫째가 대답했다.


엄마도 아기야? 짜증내면 아기잖아.


호르몬의 영향이 클 거다. 아랫배가 살살 아프고 짜증 수치가 올라가는 것이 마법의 날이 오고 있음을 알렸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온몸으로 짜증을 표출할 건 뭐람. 첫째 말대로 어른답지 못하고, 아이의 미성숙함 그 자체다.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본성은 위기 상황일 때 나온다던데, 나의 위기는 아이들이랑 놀 때란 말인가. 아이들이 참말 불쌍해졌다.


글은 뭐하러 쓰나. 글 쓸 자격이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느닷없이 이럴 때 생각하게 된다. 내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성숙하지 못한데, 책은 뭐하러 읽고, 글은 뭐하러 쓰나. 그러나 역으로 미성숙하기에 치유하고자, 배우고자,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고 변명해본다.


엄마, 그래도 노력할게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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