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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씨 Oct 13. 2021

바람을 피웠다.

안녕, 나의 이십대

통유리로 내부가 훤히 보이는 작은집들을 지나치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꿈에서도 바람이었는데, 꿈속 남편은 가수 김범수였고 몸이 아주 좋았다. (꿈에서 뭘 한 것도 아닌데 몸이 좋았다는 기억이 나는 건 뭔지..) 남편과는 사이가 나쁜 건 아닌데 불꽃 튀는 사랑도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대학시절 나를 참 아껴줬던 실제 인물과  몰래 데이트를 즐겼다. 대단한 데이트도 바람도 아니고 그냥 골목길 데이트였다. 몇십 년을 만나지 않은 친구건만, 종종 그는 내 꿈에 등장한다.


스물한 살 대학 첫 MT.

술에 취하는 엠티에서의 기억은 술탓인지 많은 기억이 없지만, 백 씨와의 만남은 또렷하다. 한 선배와 시비가 붙어 싸움이 나려던 찰나, 옆자리의 내가 백 씨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말렸더랬다. 그 아이는 그때 나한테 반했다고 했다. 별 것 아니었는데, 사랑이란 건 참 찰나다. 교회를 가야 하기에 아침 일찍 길을 나서던 나를 따라 그도  채비를 했다.


그 후로도 우리는 등굣길 메이트가 되었다. 신촌에서 버스를 한번 더 타야 했던 학교길에, 지각할 것 같은 날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화해 택시 카풀을 했다. 그렇게 정은 쌓였고, 이때부터 이 아이는 십여 년간 나만 (어쩌면 착각일 수도 있지만) 좋아했다. 받아주지 않아도 그는 나를 기다렸고, 나도 그가 좋기는 했으나 사귀려고 하면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순수하게 나 자체로 사랑해주었다는 기억은 꿈에 나타난 지금의 순간에도 참 따뜻하다.


아마 그와 내가 사귀어 연인이었다면 이렇게 아련한 기억일까. 내가 그를 끝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유는, 이혼한 가정사와 불투명한 그의 미래였다. 나는 스무 살에도 순수하지 못하고, 마음이 팍팍했다. 그 시절, 내 가정사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웠고 우울했다.


아빠는 제법 잘 꾸려 나갔던 교회를,  한 성도님의 꼬임에 넘어가 이전을 결심했다. 참 귀가 얇았다. 사람을 좋아한 탓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사업하는 집사님의 보증을 서 주었다가, 1억 는 돈을 홀라당 우리 빚으로 가져왔던 적도 있다. 우리 먹고 살 돈도 없는데 1억은 갚을 길 없는 빚이었다. 독촉 전화는 매일 오고, 나는 대신 전화를 받으며 엄마, 아빠는 안 계신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엄마는 그때부터 온갖 부업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엔 이사였다. 한 집사님이 이사를 오면 본인과 더불어 한 무리가 교회를 나올 수 있고, 여러 지리적 이점들로 설득했던 것 같으나, 자세히는 모르겠다. 아빠는 또 빚을 내어 아현동의 한 건물로 이사를 했다. 우리는 화장실도 손수 만들어 썼던 길가의 두 칸짜리 방이 있는 곳을 집으로 삼았다. 그 집사님들은 한 두 달여 교회를 나오다가, 안수기도를 받으며 몸이 상했다나 어쨌다나 하는 이유로 나오지 않았다. 안수기도를 해줬던 목사님은 협력 목사님으로 아빠가 존경하는 분이었고, 세게 안수를 한다거나 하는 분이 아니었다. 매우 점잖은 분이었다. 성도는 늘지 않았고, 교회의 세만 빚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성질이 불같던 언니도 스물두 살에 이른 시집을 갔다. 아빠가 억지로 넣었던 대학은 자퇴하고, 작은 회사에 취직했는데, 그때 지금의 형부를 만났다. 교회를 다니지 않아 아빠는 반대했으나, 언니는 이제 스무 살이 넘었다. 조용히 짐을 싸 형부에게로 갔다. 이른 나이에 시집간 언니는 친구도 잃고, 가족도 잃고, 홀로 시집살이와 연년생 육아를 견뎌내야 했다. 형부도 그 당시엔 어린 나이여서 둘은 싸우기도 많이 하고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행복하지 않은 언니를 보며 나의 두려움도 커져만 갔다.


사춘기 시절에 풍파를 견뎌온 내 이십대는 이랬다. 어두운 가정사와 마음의 짐을 어찌할 바 몰랐고,  순수한 사랑에도, 이 사랑이 나를 불행으로 이끌 것 같았다.  매일같이 동네 친구들과 술 먹고 노는 백 씨가 못 미더워 나는 더는 아무것도 발전시킬 수 없었다.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아무것도 재지 않고 순수하게 나 자체를 사랑해줬던 한 사람 기억된다는 것이. 그런 사람이 인생에 한 번 있었다는 것으로,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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