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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씨 Sep 05. 2023

엄마의 무심함

막내 딸아이의 얼굴이 좁쌀만 한 붉은 반점과, 부르튼듯한 흉으로 얼룩졌다. 그제 조금 올라왔는데 '모기가 돌아다니더니, 모기에 물렸나?'하고 내일 되면 괜찮아지겠지 했다. 어제 아침도 간지럽다기에 알레르기인가 싶어 약을 먹일까 하다가 못 먹이고 유치원을 보냈다. 그런데 하원하고 보니 아뿔싸, 붉은 반점이 얼굴에 한가득이고 입술 밑의 흉은 자꾸 손을 대고 긁어서 턱 전체로 퍼져 있었다. 병원에 가야 하나? 이제야 급한 마음으로 바빴다. 피부과 의사인 서방님께 물어보니 습진에 농가진화가 된 것 같다고 가렵지 않게 항히스타민제를 먹고 항생제 연고를 발라주라고 했다. 일전에 받아두었던 항히스타민제와 같은 약봉지에 있던 새 항생제 연고마저도 버린 남편에게 한바탕 짜증을 내고, 약통에서 찾아낸 연고를 가까스로 찾아 발라주었다.


생각해 보니 아침마다 아이가 얼굴이 간지럽다고 했었다. 뭐 때문에 알레르기일 까만 생각 했는데, 돌이켜보니 기본적인 세수와 로션을 하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의 아침 세수는 거른 지 오래다. 유치원에서는 점심에 치카와 세수를 한번 더 하니까 대수롭지 않게 보냈다. 학교에 들어간 첫째만 하루종일 씻지 않을 터이니 꼭 씻겨 보낼 뿐이다. 당연한 일과를 해주지 않았다는 것. 엄마의 무심한 불찰이다.


둘째 딸아이는 구몬을 하고 있다. 7세부터는 조금씩 매일 앉아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시작한 것이고, 오빠가 1년 넘게 잘해오고 있기에 당연히 동생도 잘할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둘째는 달랐다. 아무리 말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오빠보다 이해 속도가 빠른 둘째를 내심 기특해했었다. 그런데 자꾸 미루고, 아는 것도 물어본다. 처음에는 써주기도 하고, 대답해주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도와주지 않았다. 혼자 하지 않으면 구몬은 이제 그만하자고 했다. 아이는 구몬선생님을 좋아했다. 오실 때마다 좋아하는 간식이나 슬라임 따위의 놀거리를 가져오시기 때문이다. 결국 숙제를 하지 못한 채 구몬 하는 날이 왔고, 선생님이 단호하게 이번에는 선물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상담시간에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5를 분기점으로 어려워해요. 처음에 잘하다가도 5를 넘어가면 앞부분도 헷갈려하고 어려워하더라고요."


아, 하기 싫어서 도와달라고 한 게 아니라 정말로 어려웠구나. 어려워서 하기 싫어진 거구나. 둘째에게 미안했다. 엄마가 또 이렇게 무심했다.


첫째 아들이 아침에 엄지손가락이 아프다며 주먹 쥐기가 힘들다고 했다. 손가락을 봤더니 엄지손톱 가의 살 부분을 뜯어내서 벌겋게 되어 있었다. 거기 뜯어서 아픈 거야~라고 하고 학교에 보냈다.


진짜 뼈가 아픈 건 아니겠지. 내가 또 무심한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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