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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씨 Sep 13. 2023

엄마의 입원

엄마가 아픔을 호소한 건 꽤 되었다.

고관절 협착증으로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떠돌아다니며 주사를 맞고, 침을 맞고 다녔던 것은 알고 있었다. 치아가 좋지 않아 잘 씹지 못하고, 소화가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 알고 있었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아니, 신경 쓰지 못했다. 연세가 있으니까, 병원 다니며 치료받고 있으니까.. 그리고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병원 다녀오라는 말 밖엔..


부쩍 살이 빠지고, 평소보다 훨씬 기운이 떨어진 건 얼만 안 된 일이다. 엄마의 생신이 있었고, 목욕탕을 좋아하던 엄마가 전혀 목욕을 즐기지 못하는 것을 보고도 그냥 기운이 많이 없어지는가 보다 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소고기를 동생의 남자친구를 맞이한다고 몇 점 드시고는, 잇몸에서 피를 2시간 반이나 흘렸다고 한다. 이것도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우리 가족 모두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엄마 역시 뭔가 이상이 있다고 여겨 내과를 방문했고, 다행히 초음파 검사는 깨끗했다. 다들 안심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청천벽력의 소식을 들었다. 피검사를 해보았더니 혈소판 수치가 낮다고 소견서를 써줄 테니 대학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단다. 


엄마의 증상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체중감소, 잇몸출혈, 무기력증.. 혈액암이 네이버에 검색되었다. 눈앞이 하얘졌다. 동생에게 얘기했더니, 엄마 팔에 멍도 있었단다. 멍도 혈액암의 증상 중 하나였다. 의사인 도련님에게 소견서를 보여줬다. 혈소판, 적혈구, 백혈구의 수치가 모두 현저히 낮다고 했다. 월요일에 병원에 간다고 했기에 당연히 병원 예약을 한 줄 알았건만, 엄마는 소견서만 있으면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단다. 예약도 해두지 않았다. 


그럼 진료를 보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텐데.. 응급실을 가야 하나.. 결국 주말을 견디고 월요일 아침 응급실로 왔다. 급속도로 검사가 진행되고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폐렴의 합병증까지 동반되어 위험하다고 했다. 


몸의 이상을 느끼고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었을 엄마를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럼에도 자식들에게 티 내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는 엄마가 왜 이렇게 안쓰럽고 미안한 건지..


응급실에서 대기실을 거쳐 입원실로 오기까지 이틀이 걸렸는데, PCR검사를 하지 못해 보호자 출입이 불가했다. 그 아프다던 골수검사도 엄마는 혼자서 견디었다. 부랴부랴 PCR검사를 하고 3일째 되는 날 엄마를 다시 만났다. 안 와도 된다고 하던 엄마는 내가 오자마자 이것저것 시킬 것도 많았다. 간호사가 와서 보호자분이 오늘 오셨나 봐요, 하자 애들이 셋이고, 8살짜리 아들이 열나고 아픈데도 이렇게 왔다는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나를 위한 변명을 하더랬다. 


왜 빨리 오라고 말 한번 하지 않았을까. 왜 괜찮다고, 혼자 있어도 된다고, 바쁜데 뭐 하러 오냐고 하는 걸까. 그렇게 아프고 힘든데. 도대체 어떻게 3일을 버텼을까.. 엄마는 그런 엄마였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힘이 든 것을 숨기려고만 하는 엄마. 그게 참 속상하고 화도 많이 났었다. 받을 줄 모르는 엄마가 답답했다.


함께 점심을 먹는데, 엄마는 한 수저도 들지를 않았다. 항암제를 먹은 이후로 속에서 음식이 받질 않는다고 했다. 토해도 먹자고 하니, 나부터 먹으라고 했다. 나는 잘도 먹었다. 그리고 엄마가 드시길 기다렸다. 엄마는 천천히 먹는 모습을 나에게 보이기 싫으니, 나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라고 했다. 왠지 엄마가 안 드실 것 같아 같이 있겠다고 했다. 드시다 멈추면, 먹여도 드리면서 덜어낸 죽 3/1은 다 먹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커피와 이것저것 엄마가 사다 달라는 것을 사들고 나갔다 온 사이에 엄마는 먹은 것을 다 토해냈다는 것을 알았다. 기침할 때마다 피가 나왔고, 심장도 제 기능을 원활히 해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엄마의 컨디션이 좋아, 폐렴에도 불구하고 항암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조금 더 안전하다는 비급여 체료제는 5천만 원가량의 약값이 들 거라고 했었다. 5천만 원.. 앞으로의 치료까지 생각하면 감당해 내기 어려운 치료비였다. 약간의 차이지만 급여공제가 되는 약제가 있었고, 엄마에게 조금 더 안전한 항암제는 5천만 원의 비용이 든단다. 딸들은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다행히도!!!!!! 엄마의 보험이 있었다. 모아둔 돈과 보험비를 합치면 치료비는 충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분 좋게 치료를 시작하겠노라고 밝혔다. 


코 골고 잠꼬대하는 소리로 가득한 5인 병실 안... 잠은 오지 않고, 앞으로의 항암의 일정이 어떻게 될지, 두렵고 두렵지만, 엄마와 함께 잘 해낼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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