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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씨 Oct 16. 2023

남편의 면접을 본다는 건

남편의 직업 특성상 4~5년, 혹은 그 이내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다녔다. 한 곳에서 오래 있는 경우도 있지만, 남편의 경우에는 규모가 작은 곳에서 시작하여 차근차근 단계를 올라가고 있기에 직장을 옮기고 있다. 그 과정에서 면접에 아내도 함께 오라는 조건이 두어 차례 있었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한창 바쁠 시즌에 면접일정이 잡혀 휴가를 낼 수 없어 한 번도 동행하지 못했다. 그래서인가 남편은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그 사이 나는 퇴사를 했고, 이번 면접은 참여하기에 좋은 타이밍이었다. 남편의 면접을 보러 서울 반포 노른자 땅으로 향했다. 남편의 직장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일까? 어떤 대답과 자세를 보여야 할까? 나 때문에 떨어지면 어떡하나? 여러 생각이 스치며 면접장소에 도착했다. 


강남에 살아본 적 없는 나는 위압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동네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국제학교, 그것도 영국계 귀족학교라고 불리는 곳이라는데, 학교 앞에 외교관 차들이 아이들을 하교하러 대기 중이었다. 옆 초등학교에는 악기를 하나씩 둘러맨 교복 입은 아이들이 하교 중이었고, 동네 카페 등지에는 인천의 우리 동네에서 보는 외국인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이런 동네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또 교육시킬까.


그렇게 동네에 도착하자마자 입이 쩍 벌어지며 면접을 기다렸다. 면접에 들어가니 7명의 면접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남자였다. 면접을 처음 보는 것이 아닌데도, 남편의 면접이라 그런지 더 낯설고 어리둥절했다. 아는 바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다. 직무 관련 질문은 남편에게 쏟아졌고, 나의 가치관이나 경력 따위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남편의 자랑만 해주면 되었다. 나는 해맑게 남편의 자랑을 해야 했다. 


"남편은 최고 장점은 성실합니다. 안팎으로..."


그리고 여러 질문과 답이 오갔지만 나는 그저 보고 듣기만 하면 되었다. 




주말 내 연락을 기다렸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나는 이미 토요일에 마음을 접었으나, 남편은 결정된 문자가 오기 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40줄에 일반직의 신입자리에 가려던 나의 사내 면접과 오버랩되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초조함과 기대감, 그 희망고문... 너무 잘 알고 있어 남편에게 이미 떨어졌다는 사실을,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계속 인지시켜 주었다. 덜 상처받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남편은 현실을 부정했다.


남편이나 나나 이제 누군가의 색깔을 입을 때가 아니라 입혀줄 때인데, 우리는 아직도 더 경험하고 싶고, 배우고 싶고, 더 큰 곳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싶었나 보다. 사실 남편의 면접은 다들 만류하기도 했었다. 이직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과 무리가 있었고, 나이도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직은 시기가 맞나 싶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한 번쯤은 경험하고 싶어 하기에, 또 막상 가보니 나도 배울 점이 많아 보였기에, 붙었으면 싶기도 했다.


이렇게 매번 꺾이고 나서야,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가 있다. 어디까지가 욕심이고, 어디까지가 하나님의 계획일까? 욕심껏 지원하고 떨어져 보고 나서야, 떨어진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인정하는 것인가? 붙었다면, 정녕 붙은 것이 하니님의 뜻이었을까?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그 크신 뜻을.


여하튼 여태까지 부부 동행의 면접에서 떨어진 것이 나 때문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가도 떨어졌으니. 아님 나의 준비부족 때문이었을까. 에잇 모르겠다. 여하튼 떨어진 면접은 며칠간의 후유증이 있다. 잘 다져서 나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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