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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씨 Nov 05. 2023

나쁜 일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결혼하고 아이 셋 낳을 동안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기도 했고, 시댁 어른들도 얼마간의 돈이 생활을 위해 꼭 필요했기에, 서로의 요구가 맞아 근 8년간 어머님이 살림을 도와주셨다. 우리는 빨래, 설거지, 청소 등 단순한 일들을 주로 맡았고, 세 명의 성인이 있기 때문에 아이가 셋이어도 원활히 돌아갔다.


그러던 중 아버님은 약간의 치매 증세가 시작되었고, 엄마는 급성백혈병이 찾아와, 오롯이 우리 부부가 살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돌봄을 요하는 인구가 한 명 늘었는데, 그 일나눠줘야 할 남편이 3주간 아침밥만 먹고 나가서 밤 11시에나 들어오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것은 나! 혼! 자! 환자와 아이들뿐인 나머지 식구를 책임져야 한다는 소리였다. 아직 일주일도 안 지났는데 엉덩이 붙일 시간도 없는 하루 절로 눈물이 났고, 아이들에게는 불호령이 수시로 떨어졌다.


아, 이러다간 미칠 수도 있겠구나




그래도 어쨌거나 버텨야 했다.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매일같이 화내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은 아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너희들이 논 자리는 반드시 정리하고, 쓰레기는 휴지통에 버려줘라, 엄마가 일하거나 다른 사람과 대화 중일 때에는 너희가 기다려줘라, 엄마는 쫓아다며 치워야 하는 것, 동시에 엄마를 찾는 것이 너무 스트레스고 힘들러서 악마가 된다고 일러주었다. 아이들은 알겠다고 수긍해 주었다. 둘째가 왜 할머니만 잘해주냐, (아프시다고 하자) 자기도 감기약 먹는 아픈 사람이다,라고 주장하긴 했지만.




엄마가 아프시다는 소식에 여러 지인들이 반찬이나 추어탕, 보신탕, 육개장, 장어 등을 날라다 주셨고, 6인 식구이다 보니 양도 넘치게 주셔서 두 대의 냉장고가 빼곡히 채워졌다. 아직 아주 큰 깍두기 통을 어딘가에 넣어야 는데.... 냉장고를 정리해야 는 마지막 시간이 된 것임을 직감했다.


속에 숨어있던 반찬통을 꺼내어 보니 예~~ 전에 먹다 만 볶음밥, 예~~ 전에 누군가에게 받았던 찐 감자 따위가 상해있었고, 그 밖에도 더 이상 손가지 않는 남은 반찬동이 자리와 그릇을 차지하고 있었다. 김치냉장고에는 얼려 두었던 밤뭉치가,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이, 먹다 남은 케이크가 있어 싹~~ 다 비워줬더니, 넉넉~~ 한 공간이 생겼다.


아.... 이 정리를 어머님이 여태까지 해주셨었구나.



그러고 보면 나쁜 일은 꼭 나쁘지 많아도 않다는 것, 이면에 깨닫고 배우게 된다는 것은 진리였다. 머님의 부재는 이전에 몰랐던 (알았으나 덜 느꼈던) 감사함을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


아버님이 아프시니 어머님이 가정으로 돌아가고, 아버님의 케어를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공부하게 된 어머님은 새로운 만남과 공부에 이전과는 다른 에너지를 얻은 듯 목소리에 생기가 넘쳤다. 엄마가 아프니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오고, 뜻하지 않던 효녀소리도 듣게 되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여러 도움의 손길은 반찬 걱정, 식단 걱정을 덜어주었고, 넘쳐나는 음식에 게으른 나를 정리의 장으로 몰아세우는 효과까지 더해졌다.


 이렇게 저렇게 버티다 보면 남편이 부재한 3주가 지날 것이다. 그 시간은 어쩌면, 아이들도 나도 적응하며 새로운 좋은 습관으로 자리잡지 않을까, 은근 기대감도 든다.


그러니, 어찌 나쁜 일이 좋은 일이 되지 않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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