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제안

by 수박씨

남편이 불현듯 제안했다.


"너 일 그만두고, 우리 파주로 내려가 살까?"


내년 4월, 4년째 산 전셋집의 만기일이다. 남편 직장도 그대로, 나역시도 광화문으로 출퇴근하는 실정이라 이사은 언감생심이지만, 전셋값이 천장부지로 치솟아,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지금 사는 집만한 곳을 들어갈 수 없었다. 평수를 줄이거나, 경기권으로 가는 것밖에는 없었다. 평수를 줄이자니 40평대에 달하는 집 빼곡히 쌓여있는 짐들, 아이 셋의 공간, 어머님의 공간까지, 버려야하지만 버릴 수 없는 것들이 가득했다.


파주는 결혼하고 첫 애 돌까지 지냈던 지역이다. 그 때는 본사에 있어서 나라도 출퇴근이 편했지만, 지금은 둘 다 너무 멀었다. 하지만 집값만큼은 매력적이고, 생활환경도 좋았다. 갈 수만 있다면 가고 싶었다.


"일을? 그만두라고?그건 안되지, 오빠가 자리잡은 것도 아닌데."


"요즘 너 너무 스트레스받고 예민해진 것 같아. 파주로 가서 육아에 전념하는 건 어때?"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집으로 가져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성수기 때 아무래도 집에서도 힘들어했었나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일로 인한 스트레스는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으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주말마다 독박할 때면, 아이들에게 나도 감당이 안되는 화를 내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옥상에서 놀던 다섯살 아들에게 소리치며 화내자, 내가 둘째 챙기는 사이 말도 안하고 집으로 슬쩍 내려가 버렸다. 또 추석 연휴 때는 아무래도 할아버지네 가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보내달라고도 했다. 이유를 물으니 자기가 자꾸 말썽부려서 엄마가 화낸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생리 때가 다가와 호르몬의 영향으로 생각했지만, 그 때마다 애들한테 이렇게 화를 낼 것인가 생각하니 아찔했다. 이유가 뭘까. 정말 회사 일로 예민해진걸까?


남편의 제안은 솔깃했지만, 일을 그만두는게 답은 아니란건 알았다. 남편도 예민하질 때가 있는건 당연할텐데 느닷없이 일을 그만두라는 건 동기가 안됐다. 그보다는 일도 가정도 정리가 안되어 있다는게 문제란 생각이었다. 회사를 나가면서 집정리를 제대로 할 시간도, 애들 건강검진을 챙길 여력도 없는 게 맞았고, 마음 한 켠에 '해야지 해야지'하는 부담감만 쌓였다.


남편과 내가 공동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정리도 육아도 남편이 더 많이하고 있다고도 생각됐으나, 그래서인지 어디다 뭘 뒀는지, 뭘 버렸는지 몰라 싸우기 일쑤였다. 더군다나 이사를 가야되는 실정때문에 집안 정리도 자꾸 미뤄졌다. 어짜피 이사가야하는데 뭘, 하면서.

아이들의 생활도 어린이집 준비물이나 예방접종 등 꼭 해야하는 것 외에는 챙길수도 없었으며, 주말에는 삼시세끼를 쿠팡의 밀키트, 간편요리, 외식 등으로 겨우 해결했다.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들이었다. 그것이 틈새가 생길 때면 '버럭'하고 화로 불쑥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단은, 집정리를 해봐야겠다, 라는 마음이 들어 이북으로 정리 관련 책을 구매했다. 이게 웬 쌩뚱맞은 결론일까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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