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우리는 왜 간호사를 인식하지 않는가.

by 세삼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2018)



이따금씩 뉴스에서 간호사의 업무 불합리함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 살기도 바쁜 세상에, 당시에만 안타까운 감정이 드는 정도였을 뿐 더 이상의 관심은 두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후속 기사 역시 오래가지 않기에 자연스레 머리속에서 잊혔다.

나는 비교적 자주 병원에 다녔음에도(어머니가 아프시기에) 간호사 인권에 대한 부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에게 간호사는 항상 바빠서, 무언가를 부탁하기도 미안한 존재(=간호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병동에서 큰 소리가 나길래 나와봤더니, 환자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간호사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 야 이 X아 내가 퇴원하겠다는데 네가 지X이야, 선생님(=의사)이랑 이야기 끝났다고!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하던지 반대쪽 병동의 사람들도 다 나와 보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간호사는 울듯한 얼굴로 응대를 이어갔다.
- 어르신 아직 퇴원 안되세요. 선생님도 그런 말씀하신 적 없고요.
라며 이야기했지만, 할아버지는 온갖 욕이란 욕은 다 퍼붓고 있었다. 그렇게 실랑이하다 흰색 가운을 입은 선생님이 왔고, 욕지거리를 뱉던 할아버지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간호사는 의사가 오자 수 분 후 자리를 떴고, 구경하던 사람들도 각자 병실로 돌아갔다. 기분이 이상했다. 당시 서비스직에 일하고 있던 내게 익숙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저 반대의 상황에서 겪었다. 여자뿐인 매표소에서 난리를 피우는 아저씨가 있다고 해서 가보면, 내 앞에선 조곤조곤 말했다. 아저씨를 보내고 나면, 여 스텝들은 변화된 아저씨의 태도와 억울함에 종종 눈물을 보였다. 방금 본 모습과 비교해서 다를 게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번뜩 생각났다. 뉴스에서 종종 다루던 이야기, 간호사에게 행해지는 병원의 차별과 환자의 진상 짓에 대해서 말이다.


* 병원 관계자는 개인끼리 일어난 폭행 사건이니 억울하면 개인 자격으로 경찰에 신고하라는 말도 안되는 조언을 하고는 사라졌다. 실소가 터져 나왔다.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던 간호사가 보호자에게 폭행을 당했는데 개인이 알아서 하라니.

** 자기가 해야 할 일까지 간호사들에게 미루던 나이 어린 의사의 태도에 한동안 분한 마음을 삭여야 했던 시간들도 있었고, 그런 의사에게만 호의적인 많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멱살도 잡혀봤으며, 그들에게 무수히 많은 손가락질과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욕설도 들어봤다.




언제나 환자의 생명 최일선에 있는 고마운 간호사님들.




책은 나의 잘못된 생각의 방향을 곧게 잡아주었다. 간호사가 단지 의사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필수불가결한 독립적인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왜 진작에 깨닫지 못했을까를 생각해봤다. 책에서도 말하듯, 한 쪽으로 치우친 미디어의 효과가 나에게도 한몫했다. 드라마며 영화며, 의사에 대한 이야기는 있지만 간호사는 없다. 의사는 주도적이지만, 간호사는 항상 소모의 대상일 뿐이다.


*** 병원에서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고 간호사는 환자를 돌본다. 의사에게 치료를 가장 잘 받을 수 있도록 24시간 내내 환자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간호사의 사명은 환자들의 삶에 직접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들의 고통과 죽음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일이었다. 의사의 치료가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간호사의 돌봄은 희미해져가는 생명을 붙잡는 일이었다.


이후 병동에 있으면서, 환자들이 간호사들에게 하는 언행을 지켜보았다. 의식하고 눈과 귀를 열어보니 상황은 아주 가관이었다. 아가씨라 부르는 것은 예사고, 물 심부름에 설거지 요청은 빈번했으며, 수액이라도 교체하려면, 왜 이렇게 자주 교체하냐며- 환자 갖고 장사한다며- 갖은 면박을 다 줬다. 환자 가족끼리 싸우는 거 말리다가 휘말리기도 하고, 면회 시간 아직 아니라고 안내해도, 굳이 들어오겠다는 방문자에게 쌍욕을 먹기도 했다. 그럼에도 간호사들은 '어르신~ 고객님~'하며 밝게 응대했다. 속상할 법도 한데, 티도 내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의 어머니가 퇴원할 때쯤, 한 장의 종이가 쥐여졌다. 병원 서비스 친절 조사였다. 항목에 체크를 하고 메모할 곳도 없는 종이에 나는, 묵묵히 적어내려갔다.

어머니에게 친절하게 해주어 감사합니다. 속상한 날이 없기를 응원합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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