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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삼 Aug 11. 2020

1. 쓴다.

2020.08.10. 월요일


현재의 나는 성질에 맞지 않게 몸을 쓰는 직업을 갖고 있어서, 글을 씀으로써 자존감을 높이려 한다.
나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평생을 생각했다. 비록 만들기 실력은 형편없지만, 그림과 글로 나의 생각을 표현해 세상에 무언가를 내놓아야 하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 생각에서 파생된 작업을 하는 스스로가 마음에 든다.

사실 요즘처럼 글을 쓴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평소 글 쓸 시간도 없었거니와, (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40대가 되면 본격적으로 쓰자는 생각이 있었다. 왠지 그때쯤이면 회사에서 퇴직하고, 한적한 생활을 하며 적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상황이 되었다.
40대 퇴직을 예상한 영화관은 30대 초반에 퇴직했고, 덕분에 이직한 회사는 치열하게 살던 나의 삶에 여유를 안겨주었다. 처음엔 이 여유를 흘려보냈지만, 차츰 책을 읽으며 글을 쓰는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30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
내가 '쓴다'라고 하는 첫 기억은 과학의 날 글짓기였다.
당시 '내가 예측한 미래 사회'라는 주제였고, 나는 원고지에 연필로 눌러 적어 선생님께 제출했다.
그 작업은 무척이나 지루했다. 원고지 첫 페이지에는 뭘 그렇게 지켜야 할 규칙이 있는 건지. 틀리기라도 하면 선생님의 빨간 펜이 바로 칠해져있었다. 나는 거기에 질려버려, 이후부터는 그림 그리기로 종목을 바꾸었다.

그렇게 한동안 글을 적지 않던 내가, 중3 때 어째서인지 교지에 글을 실은 적이 있었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는데, 그때 적은 글이 <한국 만화의 과거, 현재, 미래>였을 거다.
나는 내 글이 교지에 실린 걸 보고, 정말 부끄러워 숨고 싶었다. 잘 적었던 초반과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박성우 작가의 신작을 소개하는 글이 되어 부끄러웠고, 무엇보다도 너무 오타쿠 같아서 싫었다.

그리고 또 한참을 적지 않았다.


영화관에 일했을 때 나는, 그날의 에피소드를 아르바이트생들의 특징을 살려 글을 적곤 했다.
공지와 주의사항만 올라오는 게시글 속에 내 글은 단연 인기만발이었다.
-관리자님 글 너무 웃겨욬ㅋㅋㅋㅋ
-와 관찰력 무섭기까지 하네요 ㄷㄷ...
라는 댓글을 보며 혼자 뿌듯해하기도 했다.
(이때 처음으로, 내가 글로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감을 가졌다)

그때는 주변 사람들과 나에 대한 이야길 스스럼없이 적었다. 미니홈피며 블로그며, 유쾌하고 가볍게 다루어 누가 봐도 즐거운 기분으로 읽었으면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의 난, 그때의 유쾌함을 글로 적어내기 어렵다.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

누군가는 책을 많이 읽으면, 어휘력과 문장력이 늘어서 자연스레 글쓰기 실력도 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중압감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이 사람만큼 적어낼 수 있을까?
-책이 이렇게 많은데 굳이 내 글을 읽으려 할까?

오히려 그나마 갖고 있던 장점을 잃어버린 느낌을 받았다. 자신감도 더 줄어만 갔다.
누구의 말마따나 잘 쓴 글이든, 못 쓴 글이든 내 글이니까, 나는 조금 더 내 글을 사랑해 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시작하려 마음먹었다. 일간 이슬아를 따라 하는 것이든 뭐든.
나는 오늘부터 하나씩 적어 나가 볼 생각이다.






세삼매거진.
2020.08.10.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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