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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삼 Aug 12. 2020

2. 5월9일.

2020.08.11. 화요일


그날은 유독 잠이 오지 않아, 계속 뒤척이던 밤이었다.
자정부터 불을 끄고 누웠지만, 왜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아마도 저녁에 먹은 커피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저녁에 마신 건 커피가 아니었다.


저녁엔 오랜만에 영화관 운영진 3명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고, 좋아하는 카페에 가 떠들썩하게 놀았다. 업무에 대한 답답함, 상사에 대한 불만을 거나하게 풀고 집에 들어오니 10시가 좀 넘어 있었다. 좀 늦긴 했지만, 나는 평소처럼 다음 날 출근 준비를 해놓고 자리에 누웠다.

잠은 정말이지, 너무할 정도로 내게 오지 않았다.
하다못해 양도 세어보고, 지루한 TV프로그램도 틀어놔 봤지만 소용없었다.
지루할 뿐 잠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쯤 흘렀을까. 잠의 초입에 들어설 쯤 전화가 울렸다.

엄마였다.

그리고 아주 슬프게도, 그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심을 알리는 전화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술과 담배를 정말 좋아했다. 엄청나게 피고 마신 것에 비해, 다행인지 불행인지 잔병치레는 거의 없는 편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건강검진을 다녀와선, 큰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듯했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며칠이 지나, 아버지를 태운 버스가 도착하고 우리는 택시로 옮겨 탔다.

- 뭐 어이가 아픈 겁니까?
- 진료받아보면 알긋지 뭐
오랜만에 만난 부자(父子)의 대화는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종결하고, 택시엔 라디오 소리만 생성됐다.
병원에 도착해 예약 접수를 확인하고, 해당 진료과로 이동해, 아버지와 나란히 병원 의자에 앉아 그냥 틀어져있는 TV를 봤다. 아버지는 무언가를 짐작하는지 말을 하지 않았고, 나는 무슨 결과가 나올지 불안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신성한 내시경 검사 앞에, 내 말이 부정(不淨) 탈까 싶어 겁이 나 말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아버지의 이름이 불리고, 나는 그 자리에 더 앉아 아버지를 기다렸다.





- 느그 아빠, 돌아가셨다.
엄마의 말은 약간의 떨림과 흥분이 있었지만, 한편으론 의연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사고가 멈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듣나? 느그 아빠 하늘로 갔어.
- 응.. 엄마. 내 바로 내려갈게.
전화를 끊고 고개를 들었는데, 눈앞이 뱅글뱅글 돌았다. 너무 슬픈데, 여기서 울 시간을 쓰면 안 될 거 같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뭘 챙겨가야 할지, 이 새벽에 어떻게 내려가야 할지. 혼란한 생각들이 혼합해져 갈 때, 나는 폰을 들어 친구에게 전화했다.

- 자는데 미안하다. 어... 우리 아빠 돌아가셨다. 나 좀 집에 데려다주라.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없고 무책임한 전화였지만, 친구는 기꺼이 데려다준다고 기다리라 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TV를 보다, 보호자를 찾는 간호사의 부름에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버지는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의사로 보이는 사람이 내게 와 말했다.

- 아무래도 환자분은 암인 것 같습니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핑 돌고,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는 듯했다. 어지러워 쓰러질뻔했지만, 주변에 벽이 있어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다. 내시경으로 찍은 사진들을 보며, 의사는 설명했다.

아버지는 폐암 말기였다.

설명을 듣고 있는데, 정신은 그곳에 없었다. 눈앞이 아득해져 가는 느낌.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설명을 다 듣고, 자리에 일어나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갔다. 아버지는 아직 잠을 깨지 않아, 숨을 힘겹게 쉬며 누워있었다. 나는 옆에 있는 침대에 걸터앉아, 가만히 아버지를 쳐다봤다. 그러게 왜 담배를 피웠는지, 그러게 왜 술을 마셨는지, 원망스럽고 안쓰러운 마음이 공존했다. 그리고 미웠고 짜증났고 슬펐다.

잠에서 깬 아버지는 힘겹게 나를 보며 말했다.

- 안 좋다고 하재?
- 네, 암이랍니다.
굳이 숨기고 싶지 않았다. 현실은 드라마 같지 않더라.

- 그래...
아버지는 몸을 힘겹게 세웠다.

- 집에 가자.
- 네, 일단 집에 가입시더.
아버지를 남해로 가는 버스에 태우고, 엄마에게 전화했다. 어쩐지 엄마는 담담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도 집으로 가 평소처럼 컴퓨터를 켜고 선풍기를 켰다.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뉴스를 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제 곧 더운 여름이 오려고 씁쓸한 풀냄새가 가득했던 그날.
그날은 5월 9일. 어버이날 바로 뒷 날이었다.




세삼매거진
2020.08.11.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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