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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삼 Aug 18. 2020

4. 자전거.

2020년 8월 18일. 화요일.


여름의 행보가 가장 활발한 8월은 불지옥이 따로 없기에, 그나마 선선한 아침, 저녁 시간을 노려 자전거를 타야 한다. 그래서 이번 연휴 아침, 일찍 일어나 자전거를 탔다.

나는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페달은 밟은 만큼 나아가고, 오르막에선 살아있음을, 내리막에선 삶의 여유를 느껴, 탈 때마다 기분이 좋다. 특히 잡생각이 많이 날 때 자전거를 타면 근심, 걱정이 바람과 함께 날아가는 것 같아 많은 도움이 된다.


사실 나는 자전거 타는 법을 늦게 배웠다. 또래 친구들은 3-4학년 때쯤 배웠다면, 나는 5학년 여름이나 돼서야 겨우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 그것도 몇 번을 도전하다 포기한 후의 이야기였다. 몇 번을 타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니, 친구가 말했다.

-신앙의 힘을 빌려보는건 어때?
-응?
-찬송가라도 부르면서 타.

계속 안되던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정말 적절한 가사와 박자에 힘입어, 놀랍게도 나는 자전거 타기를 바로 성공했다.
어린 나는 '이게 신앙의 힘인가' 하고 놀랐다. 그리고 한동안 평소보다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두 발 자전거 타는 법을 열심히 배웠지만, 나에겐 자전거가 없었다. 친구들이 코렉스, 삼천리에 가서 18단, 21단 자전거 체인에 기름칠을 하고, 바람을 넣을 때, 나는 그들의 어깨너머로 구경만 했다. 엄마에게 사달라고 조를 법도 한데, 나는 조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집안 사정을 어느 정도 인지했던 아이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친구들의 자전거를 빌려 타는 것으로도 무척이나 만족했다. 그래도 그마저도 행복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야자 후 집에 가는 게 너무 고단하고 피곤하단 이유로, 아버지에게 자전거 한 대 사줄 수 없냐고 했다(사실은 같이 집에 가는 동네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친구 아버지가 오토바이로 데리러 와서, 나는 20분이나 되는 그 깜깜한 언덕 길을 혼자 걸어 집으로 왔다. 나는 거기서 오는 서러움과 쓸쓸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는 흔쾌히 말했다.

-그래, 자전거. 내가 구해다주께!

나는 깜깜한 귀갓길을 빨리 지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무척 기뻤지만, 아버지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보통... 사준다고 안 하나?'

그리고 찜찜한 마음은 며칠 후 눈앞에 구현되었다. 아버지는 대체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쌀 배달 자전거를 끌고 왔다.

-이게 뭡니까??
-자전거지 뭐야, 이거 타고 학교 왔다갔다 해.

기어가 27단도 아닌, 그렇다고 18단도 아닌 1단 자전거(기어 없음). 이걸 타고 집까지 오려면 타는 것보다 끌고 오는 게 힘이 덜 드는 자전거. 심지어 요즘 쌀 배달도 오토바이로 하는데, 이걸 어디서 구해온 건지. 나는 패닉에 빠졌다.

다음날, 나는 정말 타기 싫었지만 구해온 아버지 성의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타고 가는 와중에 이걸 타고 학교까지 가는 건 아닌 거 같아, 마을 초입에 있는 전봇대에 자전거를 세우고 걸어갔다. 그렇게 며칠 등, 하교를 하니 너무 피곤했다. 학교를 갈 때는 내리막이라 쉽게 갈 수 있었지만, 집으로 올 때는 오르막이라 기어 없는 자전거론 무리였다. 또, 내 몸 하나도 버거운데 이 무거운 자전거까지 끌고 가려니 짜증이 났다. 그래서 이후에는 그냥 걸어 다녔다. 그리고 몇 주가 흘렀나,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자전거 타고 싶다길래 구해줬드만 놔두고 다니네? 안 타고 다닐거면 내가 가져간다?
-예, 그거 몬타겠습니더. 너무 무거워요.

약간 서운해 보이는 아버지의 표정을 무시한 체,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그 자전거를 보지 못했다. 왠지 아버지에게 미안했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자전거를 타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넝쿨에 휩싸인 전봇대를 보니, 그때의 계절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했다. 그거 밖에 못 구해줬던 아버지와, 그거라도 받지 않던 내가, 여름의 끝자락에서 서로에게 서운함을 표현하던 그때가 생각나 울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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