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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삼 Dec 06. 2023

관객이 아닌 직원으로서.





처음엔 전 직장을 그만두면서 조금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뤄뒀던 복학도 준비해야 했고 여러모로 나 자신을 학생 모드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벌면서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학생은, 돈이 있어도 마음이 쪼들리기에 가만히 쉬기는 힘들었다. 그날도 그런 마음에 학교 커뮤니티를 뒤졌고, 그러다 문득 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 20대에 꼭 해봐야 하는 아르바이트, 영화관 +


이 흥미로운 문구는 건조한 구인공고 틈에서 본인의 역할을 가진 듯 반짝거렸고, 나는 조금 고민하다 이력서를 제출했다(물론 보험으로 고깃집 아르바이트 자리에도).

접수를 하긴 했지만, 연락이 올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이가 좀 있기도 했고, 영화관이라면 규격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니 분명 까다롭게 채용을 진행할 거라 생각했다.               





“서비스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자유롭게 말씀하셔도 돼요. 정답이 있는 건 아니에요.”     


흰색 벽으로 둘러싼 낯선 공간, 지금껏 영화를 보러 오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곳에서 나는 면접을 보고 있었다. 앞선 질문에 옆 사람들이 하나, 둘 대답을 이어갔고 곧 내가 답변해야 할 차례가 왔다.     


“서비스란 먼저 다가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의외로 손님들은 궁금한 것을 바로 물어보지 않더라고요.

그냥 헤매고 있죠. 그런 분들께 '도와드릴까요'라고 한마디 말 거는 것, 그게 서비스라 생각합니다.”               




‘실수한 건 없겠지’     

방금의 분위기를 곱씹으며 긴장했던 마음을 달랬다. 그러곤 약간은 상기된 얼굴을 차가운 바람에 식히려 벤치에 앉았다.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 영화관 앞엔 크리스마스가 먼저 찾아와 나무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매번 오던 영화관인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낯선지, 생경한 마음을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떨어지면 다른 곳 가는 거지 뭐.’          





며칠 후 나는 면접 장소였던 그곳에 앉아있었다. 같이 교육받을 사람(=입사 동기)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정적이 우리의 목을 서서히 휘감을 때쯤 슈퍼바이저라는 사람이 왔다.     


“많이 기다렸죠? 탈의실로 이동할게요”     


우리는 근무 복장 설명에 맞춰 환복 후 서비스 교육을 들었다.

무난하고 지루한 교육이었음에도,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건 '위스키‘ 미소 짓기 교육.

(김치는 입꼬리가 내려가서 이쁘게 보이지 않는다 했다)

서비스에 미소는 기본이기에, 우리는 정말 취할 정도로 ’위스키‘를 외치며 반복 연습을 했다.

다행인 것은 바빴던 현장 상황에 몇 시간 방치되어, 조금 요령을 피울 수 있었다는 것. 아쉬웠던 건 너무 방치되다 보니 퇴근 시간이 늦어졌다는 것(게다가 마지막까지 위스키 검사를 받았다).

여러모로 노곤한 첫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 날 우리는 슈퍼바이저의 안내에 따라 교육실 밖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정성과 감동으로 모시겠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람으로 붐비는 홀에서 약간의 율동과 오글거리는 멘트를 구사하며 인사하는 슈퍼바이저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굳어버렸다. 제발 아니길 바랐지만, 그 율동과 멘트는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었다.

무척이나 창피했지만 우리는 그동안 연습해 온 위스키를 얼굴에 가득 담아 하트를 그리며 인사했다.

다행히 그 모습을 좋게 본 듯, 얼마 가지 않아 다시 교육실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후 회식 자리에서 선배들이 말하길, 그 인사 교육에 보통 퇴사를 결정한다며 신규에게 ’제발 나가지 말고 버텨라‘라고 마음속 응원을 한다고 했다. 그러곤 이 치욕스러운 교육을 굳이 할 필요가 있냐며 다들 입을 모아 말했다. 잠깐의 창피함, 서비스 정신 함양 등으로 치부하기엔 그 강도가 너무 세다는 게 문제였다.     



여담이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관리자가 된 나는 그 교육을 폐지 시켰다.          





크리스마스의 영화관은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신나서 뛰어다니는 아이, 전단지를 나눠보는 커플, 요란법석하게 떠드는 가족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괴리감이 생겼다.     


아, 이제 나는 저들과 같은 관객이 아니라 직원이구나.     


2008년 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온 겨울,

나는 그렇게 영화관이라는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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