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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삼 Dec 20. 2023

상영관에서는 무슨 일이?



보통 영화관은 세 파트로 나뉜다. 매표, 매점, 그리고 플로어. 그래서 입사를 하게 되면 세 파트를 돌며 교육을 받게 되는데, 우리 영화관은 한 파트에 고정적으로 일하는 시스템이라 나는 매점에서만 일을 했다. 그러다 당시 매점 관리자가 플로어로 이동하게 되면서 나를 데리고 갔는데, 이게 내가 관리자로 스카우트된 가장 큰 이유가 될 줄이야. 뭐 이건 좀 더 나중 이야기고.



여하튼 그렇게 이동한 플로어 야간은 매점보다 더 늦게 마쳤다. 아무래도 마지막 상영까지 남아, 관객들을 안내하고 청소를 해야 했기에 마감 시간이 정말 늦었다(매점이 00시 30분 퇴근이라면, 플로어는 03시 정도에 퇴근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빠르고 청결한 마감은 나의 소명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늦으면 관리자도 퇴근할 수 없었기에 여러 사람의 기대가 내 어깨에 짊어졌다(그럴거면 도와주면 되잖?)


플로어는 입장, 입구, 출구로 포지션이 나뉘었는데, 입장은 각 상영관 컨디션 체크 후 상영 안내를 하고, 입구는 입장 대기 홀 정리와 상영관 내 청소와 분실물, 시설물 이슈 대응을, 출구는 관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 및 영화관 메인 홀 정리, 상영관 청소 지원을 했다. 이 시기에 깨닫게 된 것은 인간은 생각보다 잘 흘리고 쏟는 존재라는 것. 그럴 때마다 플로어 근무자는 동에서 닦고, 서에서 닦으며 걸레와 혼연일체의 움직임을 보였다.


플로어는 기본적으로 청소를 많이 하고 더러운 걸 많이 다뤄야 했다. 더불어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후회와 자기 연민에 쉽게 빠지는 곳이기도 했다. ‘못난 나’라서 이런 일을 겪나, 하고 말이다.

특히 어린이 영화 상영 후 청소를 하러 들어갈 때면 쏟아져 있는 팝콘과 음료의 양이 다른 상영관보다 배는 많아(말 그대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하지만 가끔은 팔걸이에 잘 꽂혀 있는 음료가 무서울 때도 있는데, 이것은 꽤 높은 확률로 음료가 아닌 다른 따뜻한(?) 무언가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었다. 손끝에 느껴지는 따스함에 혐오와 수치의 감정이 물밀듯 밀려왔다. 영화가 끝난 상영관은 정말 많은 일이 벌어져 있다. 시설물이 부서져 있기도 하고 분실물을 습득하기도 한다. 지갑, 우산, 가방을 두고 가는 건 다반사고, 목발(대체 어떻게 귀가하시는지), 틀니(...)에 심지어 금붕어까지 놔두고 가기도 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분실물들은 주인을 찾지 못하고 경찰서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입장은, 관객들과 가장 트러블이 많은 포지션이다. 의외로 관람가 때문에 많은 클레임이 들어오는데,

청소년 관람불가(이하 청불)의 경우,

1. 성인인데 신분증 안 가져왔다.

2. 우리 애 보호자가 난데, 왜 같이 못 들어가냐

가 주된 요인이다(참고로 청불은 보호자가 동행해도 나이가 되지 않으면 관람 불가하다).


대부분 ‘1’의 상황이지만, 가끔은 ‘2’의 상황이 오면 응대하기가 정말 힘이 든다. 한번은 고객이 ‘2’의 상황으로 격분하여 손에 든 콜라를 던지려 했다. 응대 중 몹시 짜증 났던 나는 ‘그래, 나한테 던져라’는 마음으로 있었지만, 그 고객은 바닥에 강하게 던져 주변 고객들에게 민폐를 끼쳤다. 관객끼리 큰 싸움이 날 뻔한걸, 겨우 말리느라 진땀 뺐지만 그 고객은 티켓을 환불하고 욕까지 하고 유유히 본인 집으로 갔다. 뭐 이런 사람이 있어,라며 읽고 있겠지만 세상엔 생각보다 상식 밖의 사람이 많다. 본인 발 받칠 거라고 베이비시트(어린이들을 위한 좌석 쿠션)를 2~3개씩 가져가질 않나, 아이만 자리에 데려다주고 나온다는 보호자가 같이 영화를 보고 있지 않나, 너무 시끄럽다고 영화 소리 줄여달라고 하질 않나 등등. 이런 모습들을 보면 인류애가 와르르 무너진다.




입구 포지션은 퇴장로를 확보하기 위해 끝나기 5분 전에 상영관으로 들어가 준비한다. 그리곤 엔딩 후 천장에 조명은 잘 들어오는지, 출구문은 맞춰서 열렸는지 확인한다. 이러한 작업 때문에 입구 포지션은 영화 엔딩을 볼 수밖에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보고 싶었던 영화의 상영관으로 들어간다? 그때는 스포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눈을 희번덕 뜨기도 하고, 귀를 막 누르기도 하면서 말이다. 아니면 개봉하는 날, 출근 전에 영화를 관람해버린다. 관심 없는 영화라 해도, 결국 엔딩을 보기 때문에 어쨌든 흥미를 잃기 마련이다. 한번은 동료 A가 공포 영화 <나이트메어>(2010)의 상영관에 들어갔다가, 비명을 질러 관객들의 반응이 후끈해지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이때가 동료들과 가장 즐겁게 일했던 것 같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지만 오픈반까지 참석해 회식을 하는 유쾌함과, 어떻게든 벽에 튄 음료 자국을 지우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닦는 집요함까지. 정말 청춘이 느껴졌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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