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리자님 5관에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새벽 1시가 넘어가던 어느 겨울, 일목요연하게 무전하는 D 치곤 개운하지 않은 무전이었다.
그래서 나는 뭔가 일이 생겼구나 하는 마음에 한달음에 5관으로 향했고, 그곳엔 중년부부가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무슨 일이야?”
D의 말은 이랬다. 5관에 영화가 끝나서 마지막 청소를 하고 있는데 고객 2명(중년부부)이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찾아왔다. 그래서 앉은 좌석을 찾아봤는데 지갑이 없었던 것. 그랬더니 다짜고짜 관리자를 불러 달라 했다는 거다.
“화장실이나 다른 곳도 찾아봤어?”
“화장실 안 가서 찾을 필요 없어요.”
부부 중 남자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남자 왜 이렇게 적대적으로 말할까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일단 고객님 저희가 한 번 더 찾아볼게요. 혹 여기 말고 다른 곳은 들리신데 없으...”
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화를 버럭 내며 소릴 질렀다.
“나는 여기서 잃어버렸는데, 뭘 어디를 갔냐고 물어봅니까! 아까 보니까 우리 나가고 저 사람(=D)이 들어오던데 진짜 못 본거 맞아요??”
“청소할 때 없었..”
“고객님 저희는 상영관에서 물건을 습득하면 바로 분실물 일지에 기록하게 되어있습니다. 특히나 이 밤에 습득한 거면 바로 사무실로 가져오게 되어있고요.”
나도 모르게 욱해서 D의 말을 끊고 말했다. 고객이 지갑을 잃어버려 속상한 건 알겠지만, 의심을 저지시킬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하던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근데 왜 없어요? 나는 오늘 주차하고 바로 여기서 영화만 보고 나갔다고요. 그럼 저 사람(=D)이 안 갖다준 거 아니에요??”
선을 넘은 고객의 말에 나는 이건 아니다 싶어 바로 말했다.
“고객님, 이 아이 제가 교육했고 그동안 아무 문제 없이 성실히 일해왔습니다. 고객님이 찾아시는 지갑, 일단 없으니 찾게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도 선을 넘었다.
“근데 고객님, 혹시라도 나중에 다른 곳에서 지갑 찾으시면 저희 직원에게 사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속상한 건 알겠지만 사람 면전에 두고 이렇게 의심하면 저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일하겠습니까?”
결국 지갑은 찾지 못했다. 주차장에서도, 상영관에서도, 아니 건물 어디에서도.
그 부부 역시 다신 보지 못했다. 찾았냐고 연락도 없었다. 다행인건 D는 그 사건 이후로도 2년을 더 일했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스텝들에게 '의리 있는 관리자'로 불렸지만, 속으론 다시는 선을 넘지 말자고 다짐했다.
2.
관리자가 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감사합니다. 영화관입니다.”
“어- 그래. 토요일에 <명량> 보러 갈거니까 자리하나 잡아놔라, 몇 시 있대?”
“네? 저희 예약은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가능...”
“야 니(너) 처음 왔나 보네, 윗사람 바까(바꿔)봐라”
오태식(가명을 썼습니다).
우리 영화관의 소문난 진상.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다짜고짜 전화해서 자리 준비하라 하고, 본인을 알아보지 못하면 길길이 화를 내는 관종 중의 관종.
연락이 뜸하면 교도소를 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출소한 노 답의 인간. 미친놈은 상대하지 말고 돌아가라 했던가, 그래서 우린 그냥 자리를 잡아 준다.
아, 물론 공짜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 와서
“내 오태식이다.”
라고 하면 시스템으로 잡아 놓은 좌석을 불러와(좌석 비번은 항상 '4444'로 설정해놓는다) 결제를 한다. 한번은 오태식이 매표소에서 이름을 말했지만 신규 스텝이
“네?” 라고 반문하자, 난리를 치려는 걸 마침 주변에 있던 관리자가
“아이고 오셨네요~” 라며 늬예늬예 스킬로 막은 건 유명한 일화다.
그리고 내가 점장이 되고 얼마 안 된 어느 날, 사무실로
“내 오태식인데, 점장님한테 인사 한번 하러 왔수다”
라며 내게 악수를 건넸던 그 모습 이후로 그는 퇴사때까지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교도소를 들어간 걸까, 뭐 어쨌든 나랑 상관없는 일이다.
이렇듯 강렬한 기억의 사람들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이뿐만 아니라 학교 단체 데리고 왔다고 관람권 좀 쥐여주라던 선생님들과, 앞 부분 못 봤다고 잠깐 틀어주라던 어떤 아저씨, 다 먹은 팝콘을 가져와 짜다며 환불해달라던 아주머니, 술 먹고 대기홀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가는 학생들, 매표 여스텝에게 찝쩍거리다 경찰에 연행된 새끼(손님이란 말 쓰기 싫음) 등등...
작은 에피소드들을 따지자면 정말 한도 끝도 없다.
그때는 이러한 반복들이 짜증 나서 똥 씹은 얼굴을 하곤 했다. 생각해 보면 몇몇 개는 서글서글 웃으며 응대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는 왜 그 모든 요구들이 클레임으로, 진상으로만 받아들여졌나 모르겠다. 사실 관람권 좀 쥐여주거나 팝콘을 환불한다 해서 내가 큰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딱 잘라 말했는지.
하지만 이런 것도 반복이라고 지금 일하는 곳에서도 동료들의 불만과 의견을 딱 잘라 대답하는 걸 보면, 정말 내 성격이 서글서글한 편은 아니구나 싶다. 지금 이 일도 결국 나중에 뒤돌아보면 '별거 아닌 일'이고 '손해를 보는 일'도 아닐 텐데 말이다.
사람 안 바뀐다는 말이 딱 맞다.
근데 그래도 위에 말했던 사람들은 좀 선하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