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퍼의 청결을 수호하고 양질의 팝콘을 제조하는 명실상부 팝콘의 1인자.
옷을 세탁하고 샤워를 해도 단내가 진동하는 팝콘 그 자체인 나는, 팝콘맨이다.
근무지를 매점으로 발령받은 이후, 나와 팝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일단 매일 팝퍼 청소를 해야 했다. 그중 캐틀(옥수수가 튀겨지는 냄비)은 팝퍼(팝콘 기계)에서 분리 후 싱크대까지 이동시켜 수세미 질을 했는데, 무게도 엄청 무겁고 굉장히 뜨겁기에 화상도 잦았다(그래서 캐틀이 타기라도 하면 그을음 때문에 그 작업이 배로 힘들었다).
캐틀을 청소하고 나면 팝퍼를 청소해야 했는데, 한 곳 한 곳 페인트 붓으로 팝콘 부스러기를 쓸고, 소독제로 여기저기 기름기를 닦았다. 이렇게 매일 2대를 청소하면 한 겨울이라 해도 땀이 뻘뻘 났다.
이렇다 보니 수업을 마치고 영화관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캐틀의 상태와 팝퍼의 내부를 체크했다.
‘오늘은 얼마나 닦아야 되려나..’
캐틀이 심하게 탄 날은 나도 모르게 화가 나, 인수인계 일지에 경고성 발언들을 적곤 했다.
- 팝콘 태우지 마세요, 오일 채워 놓고 퇴근하세요, 신규 관리 똑바로 하세요 등
뾰족한 송곳이 된 것 마냥, 가차 없이 다른 근무자들을 찔렀다.
그렇다고 이것 때문에 팝콘맨이 된 것은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팝콘을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뭐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방법들이, 그때는 나만 아는 레시피라 생각해 뿌듯하기도 했다.
당시 주변 동료들에게 알려 준 맛있는 팝콘 만드는 법
1. 캐러멜 팝콘을 만들 때는, '오일+옥수수+캐러멜 가루' 그뿐만 아니라, 소금을 조금 넣으면 단맛이 확 산다.
2. 팝콘을 동글동글하게 만들고 싶다면 '오일+옥수수+소금'을 한꺼번에 넣지 말고, 오일을 넣고 충분히 데운 뒤 옥수수와 소금을 넣어라. 그럼 '뻥이요' 과자 같은 팝콘을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팝콘을 가장 빠르고 깔끔하게 담았다.
당시 판매한 팝콘 사이즈는 스몰, 미디엄, 라지가 있었는데, 보통 한 손에 스몰은 4통, 미디엄은 2통, 라지는 1통을 잡아 담는 게 일반적이었다면 나는 5통, 3통, 2통으로 각 사이즈 '+1'의 효율을 보여줬다.
별거 아닌 능력 같지만, 단체 관람객이 방문할 때면 나의 능력이 꽤 힘을 발휘했다. 그래서 야간 근무 후 주간 근무에 배정되어 단체 관람객의 주문을 쳐낸 적도 많았다.
또, 내가 담은 팝콘은 팝콘 가루가 적기로 유명했는데 보통 팝콘을 담을 때 왼손에 팝콘통, 오른손에 스쿠퍼를 들고 퍼 올리는 게 기본 자세다. 이때 바닥에서 시작해 위로 긁어 올리면서 퍼는데(왜냐하면 팝콘 중간에서부터 스쿠퍼가 들어가면 튀겨진 팝콘이 부서져서 먹기에 적합하지 않은 가루가 돼버린다), 만약 바닥을 더 긁으면 가루가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스쿠퍼가 상승되는 그 적정한 선을 잘 찾아야 딱 먹기 좋은 팝콘만 통에 넣을 수 있다. 나는 그 선을 잘 찾았다.
쓰다 보니, 팝콘 예찬론. 하찮은 분야의 달인이 된 나를 이야기하는데, 모든 일이 그렇듯, 좋아하면 잘하게 되어있는 건 불변 아니겠는가?
그래서 탄산음료를 뽑을 때도 시럽이 부족한 지, 탄산이 부족한 지 아는 경지에 오르고,
예매 관객 수를 보고 판매될 팝콘 수를 예측해 수량을 준비하고,
고객을 응대하면서 팝콘을 튀기고 영수증 종이를 갈며 음료를 뽑는,
이 분야 달인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글을 계속 적다 보니, 그때의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고 그것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게 참 부럽다.
물론 지금의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지만, 상실된 나의 모습 ‘일할 맛’을 느끼던 그때가 입안에서 가루처럼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