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직을 맡고 처음 배정받은 포지션은 플로어였다. 그곳에서의 나의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일단 모든 포지션의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매표, 매점, 플로어 세 포지션의 업무 진행도를 보고 현장 지원을 해야 하며 물밀듯이 밀려오는 클레임을 일선에서 처리해야 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하루가 훌쩍 가지만 플로어 부 관리자의 업무는 따로 있다.
스텝용 상영 시간표(목걸이형) 제작, 상영관 내부 수리 및 진행도 체크, 상영관 관련 물품 관리, 그리고 선재*실 관리와 선재 조립물** 제작 등.
*'선재'라는 것은 '선전 재료물'의 준말로써 영화 포스터나 전단지, 굿즈 등이 있다.
**선재 조립물은, 영화 배급사에서 홍보용으로 제작한 전시물을 말하며 배너형, 박스형이 있다.
선재실은 영화 관련 물품과 분실물, 그리고 ‘아무 데나 놔두자니 좀 그런 물품’ 등을 보관하는 창고였다.
주말을 제외하곤 매일 선재물이 입고 되니 쌓이고, 출고되어야 하는 전단지는 헤집어져 있고.
뭐랄까 처치 곤란의 카오스랄까. 이곳은 너저분하고 발 디딜 틈도 적었으며 종이 군내와 먼지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었다. 나의 전임자는 일에만 지장 없으면 괜찮다는 주의여서 이렇게 관리했다고 했다.
(....)
나는 기왕 맡은 일이라면 깔끔하고 체계적으로 만들고 싶었기에 선재실을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더 확고히 하기 위해 관리자 커뮤니티에 공지를 올렸다.
[선재실 출입금지, 보수기간 00월 00일 ~ 00일]
이슈가 되었다. 그게 좋은 쪽이건 아니건 다들 한 마디 씩 했다.
- 기대된다, 잘해봐라, 놀러 갈게, 그냥 하면 되지 글은 왜 등등등
맞다. 그냥 하면 되지 왜 이렇게 나댔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막내 관리자로써 내 이미지를 확고히 하고 싶었다. 단지 '나이가 좀 있어서, 현장 멀티가 가능해서'가 아니라 이런 사람이 당신들의 사무실에 들어왔다는 것을 공표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영화 <인턴>을 보면 '줄스(앤 해서웨이)'가 항상 답답해하던 책상이 있었다.
오갈 데 없는 어중간한 것들이 쌓여져 있는 그곳을 보며 그녀는 출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그러던 어느 날 깨끗이 치워져있는 책상을 보고 '벤(로버트 드 니로)'을 다시 보게 된다.
눈에 확 띄던 순간이었다.
나도 그랬다. 단지 사람들이 그래도 되는 곳이라 생각했던 선재실을 내 성격을 못 이겨 치운다고 했지만,
그 후로 나는 야무지게 일하는 사람이란 이미지가 모두에게 생겼다. 쟤는 일 맡기면 결과가 나오는 애라고 말이다.
선재실은 어떻게 됐냐고?
포스터와 전단지는 개봉, 개봉 예정, 종영으로 나눠 정리했고 전단지는 개봉한 영화만 뜯어서 관리,
선재 조립물과 분실물은 따로 칸막이를 두어 보관했으며 회계장부는 연도별로, PC와 전산장비, 기타 경품들은 구역별로 정리하여 네임텍을 부착했다.
여럿이 들어와도 이물감 없는 바닥과 친절한 이용 안내문까지. 누가 봐도 전과 다른 모습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심지어 건물 미화 이모님도 감탄했다).
물론 현장 지원도 하면서 정리까지 하려니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때론 퇴근을 한 뒤에도 정리를 했고(보수 날짜를 넉넉히 뒀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모습을 상사에게 어필했다.
그리고 약속한 보수 기간이 끝날 무렵, 나는 다시 관리자 커뮤니티에 공지를 띄웠다
[GRAND OPENING 선재실, 00월 00일부터~]
* 선재실 물건 엿보기 *
1. 포스터
포스터는 사이즈가 두 개로 나뉘는데 2절은 대국전, 4절은 포스터라 불렀다. 주로 사용하는 건 포스터였는데 배급사마다 보내주는 수량이 달랐다. 대형 배급사는 넉넉하게 보내줬지만 중소 배급사는 최소한의 수량이 아니면 보내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A3로 프린터 해서 부착하기도 했다). 아니면 개봉을 확정 지은 영화관에만 보내주기도 했는데,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이렇게 느끼게 될 줄이야.
하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당시 부점장이 개관 이후 모든 영화의 대국전을 선재실에 모으고 있었다. 나중에 이벤트로 사용해 보려고 했다는데 퇴사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2. 전단지
전단지는 한 영화 당 적으면 5백 장, 많으면 8천 장~1만 장까지 입고된다. 이 역시 배급사가 대형이냐 중소냐에 따라 입고량이 다르다. 영화가 전국적으로 인기가 많으면(예를 들어 <명량>) 좌석 수가 많은 영화관에만 추가 물량을 보낸다. 아무리 요청해도 상대적으로 작은 지점은 추가 발송 안 해주더라. 모든 게 자본주의 논리인 극장 업계다.
2-1. 전단지 배치 마케팅
(5칸 짜리 전단지함을 기준으로 작성)
최상단 1번이 청불 영화인 이유는 청소년 및 어린이 고객의 손이 닿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2번은 보통 예매율 1~2위 작품의 전단지를 배치하고, 5번은 애니메이션이나 가족 영화 위주로 배치한다. 왜냐하면 어린이들이 직접 전단지를 가져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2-2. 기억에 남는 전단지
혹시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한때 <히말라야>의 전단지로 셀카 찍는 게 유행이었다. <히말라야>의 전면 부분이 황정민 배우의 얼굴이라, 전단지를 내 얼굴에 대면 황정민처럼 보이는 착시가 생겨 인기가 많았다. 지금의 챌린지처럼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3. 선재 조립물
대형 배급사의 경우, 영화 홍보를 위해 조립형 홍보물을 보내주는데 이런 것들은 각 잡고 조립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요즘이야 배너나 네모 박스형 조립물이 많지만, 예전에는 정말 하나하나 끼워 맞추는 게 많았다. <토이스토리 3>가 그랬다. 포스터를 보면 등장하는 캐릭터 모두가 박스에서 튀어나와 있는데, 그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었기에 난이도 최상의 조립물이었다. 게다가 이런 조립물들은 박스 재질이기 때문에 손에 잔 상처가 많이 났다. 장갑을 끼고 싶어도 바로 현장에 나가야 되는 상황이 생기기에 대부분 맨손으로 작업했다. 그래도 설치된 조립물을 보고 관객들이 즐겁게 사진 찍는 걸 보면 뿌듯함을 느꼈다.
4. 기타 등등
분실물은 3개월에 한 번씩 경찰서로 이관하는데 그때 묵혀졌던 여러 냄새와 먼지들이 자유를 찾아 공기 중으로 퍼진다. 한 번 하면 온몸이 먼지로 뒤덮인 기분이라 샤워하고 싶었다. 다른 pc나 부속품들은 당시 부점장이 수리할 예정이라며 갖다 놨는데, 역시 퇴사 때까지 수리는 없었다. 몇 년 후 점장이 된 내가 전부 불용처리하였다.
그렇게 다이내믹한 입사 첫 달이 끝나갈 무렵, 관리자 중 1명이 추가 퇴사를 했다.
나는 막내 관리자에서 벗어났고 시간이 흘러 두 달 뒤, 또 관리자 1명이 퇴사하여 나는 부관리자 중 첫 번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