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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삼 Jan 24. 2024

티켓을 보다가 너희 생각이 났어




글을 쓰기 위해 예전 극장을 계속 생각하다보니 문득 궁금해져서 검색해보았다. 여전히 많은 관객들이 찾는 그곳엔, 변해 버린 극장의 모습과 사람들의 즐거운 사진들로 가득했다. 그러다 사진 속 관람 티켓 인증이 보여 눌러봤더니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어떻게 사려나”


한때는 매일 보는 사이였지만 지금은 아닌, 남은 아니지만 남과 다를 바 없는 존재의 등장에 눈 앞은 추억의 그곳이 펼쳐졌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벌써 세 번째 케이크,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케이크를 받은 날로 기록될 것이다. 기실 생일은 나에게 큰 의미 없는 날이다. 얼마나 의미 없냐면 나는 생일보다  팥을 먹는 동지를 더 챙길 정도니까, 이 정도면 생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대충 설명이 될 것이다. 그런 나의 생일을 이렇게 스폐셜하게 만든 건 ‘E'의 마음 덕분이다. E는 내가 매점 스텝으로 일할 때 입사했다. 키는 작고 몸도 여리여리했지만 요즘 표현으로 ’극E‘라서 어딜가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다. 그런 E와는 친해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일 때문에 계속 붙어있다보니(같은 포지션, 같은 시간대) 친해질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친해졌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E는 나를 무척 잘 따랐다. 우리는 꽤 오래 합을 맞췄고 호흡도 좋은 편이었다. 물론 그건 E가 나에게 맞춰줬기 때문일 것이다.


이 날의 케이크 사건도 E가 기획했고 실행했다. 일부러 내 생일에 매점 회식을 잡았고 관리자, 동료, 본인, 이렇게 각각 케이크를 준비했다. 무려 세 번의 생일 축하 노래가 술집에 울려퍼졌고 나는 그때 대단히 묘한 감정에 빠졌다.


이후에도 E는 명절에 집에 다녀오면 먹을 것들을 따로 챙겨주기도 했고, 힘내라며 종종 음료를 사주기도 했다. 내가 관리자가 된 후엔 ’알고 보면 따뜻한 사람‘이라며 주변 스텝들에게 말하곤 했다(초기 관리자 때의 나는... 정말 별로였다). 이런 시간들을 보내며 나는 은연 중에 E를 평생 챙겨주리라는 마음을 먹었다.


퇴사 이후에도 E와 종종 연락하며 인연을 이어갔지만, 퀘스트처럼 눈 앞에 펼쳐지는 고난도의 현실이 서로의 끈을 놓게 만들었다. 누가 놓겠다고 말한 것도 없이, 스르르.







관람 인증 속 익숙한 이름


티켓에는 많은 정보가 표시되어있다. 요즘 대부분은 간단한 모바일 티켓이지만 예전의 종이나 영수증 티켓엔 읽지도 않을 숫자와 글자가 빼곡히 적혀있다. 많이 읽어봤자 영화 시간, 좌석, 결제 내역이겠지만 말이다(하지만 이마저도 읽지않고 찾아온 관객들로 인해 영화 시간, 좌석 착각 등 으로 현장 클레임이 많이 들어온다).


상단에는 이 티켓을 어디서 출력했는지 표시 되어있다. 앱으로 예매하고 현장에서 키오스크로 출력했는지 아니면 A라는 스텝에게 했는지 말이다. 티켓에는 몇시 몇분에 누가 판매했는지 다 적혀있다. 그렇다보니 내가 반가운 이름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었고.


또, 이 티켓을 한번 출력했는지 두 번 이상 출력했는지 알 수 있다. 이벤트의 반복 참여를 막기 위함인데 그럼에도 재출력 티켓을 가지고 와서 우기는 관객들은 당연히 있다. 다 알면서도 어떤 때는 봐주기도 한다(팁을 주자면 주변 상가 할인이나 주차권을 위해 여러 장의 티켓을 원한다면 매표소에서 분할 출력 요청을 하면 된다).


하단 바코드에는 예매 일자와 관리자가 접근 가능한 번호가 있다. 이 번호로 환불이나 교환, 적립 등 모든 정보를 내부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관람 인증을 해도 바코드는 미 노출하는 것을 추천한다.


환경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지류 티켓은 사라지는게 맞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영화를 즐기는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그때의 감성이 그리운 것은 사실이다. 포토티켓이다 뭐다 하지만 그때의 종이 티켓의 질감은 대체할 수 없다. 영수증 티켓이 보편화될 때 더이상 티켓의 감성은 사라졌다 평했지만, 지금은 그 영수증 티켓도 그립다.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던 그 감성을 말이다.




스텝 바이 스텝

: 같이 일했던 스텝들에 대한 짧막한 이야기


‘스텝 1’

눈이 잘 오지 않던 이 지역에 눈이 많이 내린 날, 버스조차 운행을 멈춰 출근을 기대하지 못했지만 스텝 1은 한시간 반을 걸어 출근을 했다. 그야 말로 출근 길 레전드를 찍은 스텝 1.


’스텝 2‘

학교 수업이 길어지면서 출근을 서두르던 스텝 2는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였지만 출근을 했다. 물론 깜짝 놀란 나는 바로 병원에 보냈다.


‘스텝 3’

전날 술을 많이 마시고 온 매표 스텝 3. 티켓을 판매하다 올라오는 구토를 주변 쓰레기통에 처리(?)하고 유유히 러쉬를 쳐냈다.


‘스텝 4’

PC존(그 시대의 유물)에서 게임을 하는 관객이 있으면 그 구역 근무자에게 무전을 보낸다.

"지금 PC존에서 게임하고 있습니다"

그럼 "확인했습니다" 하고 관객에게 사용 안내를 하는데 스텝 4의 대답은,

"제가요?" 였다.





그때는 영원할 줄 알았던 우리들의 인연이 지금 와서 돌아보니 추억으로만 남았다는, 이런 진부한 글로 적힌다. 아쉽지만 점점 바래질 이야기들을 오늘도 찾아내어 적어본다. 그게 내가 해야할 일인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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