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삼 Jan 31. 2024

우리는 야유회를 갑니다

(관리자는 야유회도 일이다)




우리 극장은 지방에 위치해 있어 목금토가 아니면 심야가 없다. 그런 우리도 여름과 겨울 시즌은 일주일 내내 한시적 심야 영화를 상영한다. 그리고 이 심야 기간이 끝나면 그 노고를 치하하고자 ‘야유회’를 간다.



9화. 우리는 야유회를 간다


문제는 이 즐겁고 축하해야 할 야유회가 현장 관리자들에겐 그저 해결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가서 먹고 마시고만 할 수 없다는 지침 아래, 관리자들은 협심해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했다.


나의 첫 관리자 야유회는 배치되고 2개월 차 때였다. 거의 막내(입사 다음 달 신규 관리자가 들어왔다)라 선임 관리자들의 프로그램에 살 정도 붙이는 수준으로 참여했지만, 일정 진행은 어째서 인지 내 몫이 되었다.


버스 안에서 뚝딱거리는 인사와 인터뷰를 마친 뒤 도착한 계곡은 생각보다 물이 적어 모두가 실망스러워 했다. 어떻게든 분위기 반전을 위해 프로그램을 끌어가려 했지만 그마저도 갑작스런 폭우로 인해 진행할 수 없었다. 결국 모든 사람이(심지어 서브 관리자까지도!) 만취하는 바람에 이 날 야유회는 압도적으로 망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아 꽤 자존심이 상했고 이 날은 퍽 기억에 남았다.



기실, 나는 레크레이션 진행에 자신 있는 사람이었다. 교회에서도 그랬고, 동아리에서도 나는 마이크를 잡고 곧잘 사회를 봤다. 게다가 내가 본 예능이 몇 편인데, 게임 짜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런 내가 작년 그 수치를 겪었으니 올해는 다르게 하리라, 내가 누군지 보여주마 라는 마음으로 전권을 달라했다. 그리고 1부터 10까지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목표는 오는 버스에 모두를 잠들게 하는 것이었다.


버스 안, 나는 아주 유려하게 인터뷰를 이끌어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유재석빠’여서 그의 모든 프로그램을 섭렵했는데, 이때는 <무한도전 2011 가요제> 버스 인터뷰를 참고해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 인터뷰 이후 나의 진행 능력을 인정 받아 영화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사회를 봤다. 역시 회사에서는 뭐 잘한다고 함부로 까불면 안된다).


그리고 물에 들어가기 전 진행한 국민 체조에 가요가 나오게 편집해 모두를 춤추게 했고, 줄줄이 말해요와 방석 퀴즈를 섞어 모두를 열광하게 만들었다.


유느님 그의 진행 능력을 따라한 덕분에 현장은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뺨치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유느님께 감사의 인사를.



그리고 또 1년 후, 나는 당시 최고의 예능 <런닝맨>을 해보자는 의견을 냈다. 야유회 역사상 첫 단체 유니폼 제작 요청에 상위 관리자들이 당황했지만, 내 눈의 광기를 읽었던걸까? 생각보다 쉬운 승낙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하나 둘 야유회 떡밥을 뿌리기 시작했다.

커뮤니티에 [야유회 D-XX일. 뛸 준비 되었습니까?] 라는 멘트를 적는다던가,

이름표(런닝맨 시그니처) 사진을 찍어 올린다던가 말이다.


떡밥을 문 스텝들의 반응은 팝퍼 속 오일보다 더 뜨거웠고 그 날의 야유회 역시 활짝 핀 팝콘처럼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버스 안, 어째서인지 나는 이 날을 기점으로 내가 하는 일에 권태가 생겼다.



반복되는 근무에 마음은 게을러져 가고 주야 교대에 신체 밸런스는 무너져만 갔다.

무엇보다 끝나지 않을 듯한 이 지루한 일상이 나에게 무겁게 다가왔다. 숨이 턱 막힐 것 처럼 말이다.


그렇게 하루, 한 달, 일 년을 보내던 어느 날, 그 날도 뭐 다를 바 없이 야간 출근을 핑계로 점심때까지 늘어져 있었다. 고요한 정적이 싫어 POOQ(OTT플랫폼)을 켰는데, 이상하다 채널 썸네일이 다 똑같았다. 의구심 가득한 나의 검지는 그 중 하나를 조심스레 눌렀다. 약간 느린 와이파이 덕분에 어떤 남자의 목소리만 까만 화면을 채웠다. 그리고 다급하던 목소리의 내용을 알아채기 전에 영상이 나왔다.


검푸른 바다, 휘몰아치는 물결, 그리고 서서히 기울어져 가는 배.


괜찮을거라 생각했다. 충분히 구할 수 있겠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게 평소와 같이 편의점 음식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지겨운 직장 속으로 뛰어 들었다.


티켓을 팔고, 팝콘을 튀기고, 쓰레기를 쓸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늦은 저녁을 먹을때쯤 다시 만난 그 바다는 칠흑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중간중간 들려오던 소식은 전원 생존, 무사 귀환이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뭔가 단단히 잘못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이후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과 같은 것을 보고 같은 마음으로 살았다.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겐 꼭 갖고 싶은 것이었단 생각에 깊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몇 달 후, 어김 없이 야유회 일정이 논의에 올랐지만 모두의 반대로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몇 년 후, 아는 후배 블로그에서 당시 고인이 된 친구를 기리는 글을 읽었다. 이름이 낯익어 알아보니  예전에 나와 같이 극장에서 일했던 분이었다. 순간 머리가 멍해지면서 그 분의 얼굴이 떠올랐고 나는 한참동안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이전 08화 티켓을 보다가 너희 생각이 났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