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삼 Feb 14. 2024

영화관에 입사하면 무엇을 배울까

영화관의 교육들




1. 신규 서비스 교육


영화관에 일하면서 많은 일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잘했다고 생각한 게

'신규 입사자 교육 매뉴얼' 제작이다.


처음 내가 입사해서 교육받은 매뉴얼은 지루한 서비스 이론과 달랑 몇 줄 있는 극장 소개였다.

(그것도 몇 관에 몇 좌석인지 적어놓은 게 다였다)


실제적으로 내가 신규 스텝 매뉴얼 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서 잊고 있다가, 슈퍼바이저가 되면서 면접에 교육까지 하려니 이 매뉴얼로는 턱 없이 부족함을 느꼈다. 보다 못한 나는 교육을 재편하기로 했다.


일단 책자로만 진행하던 교육을 빔 프로젝터와 화이트보드를 설치해 수업의 형태로 만들었다.

또, '서비스-인사'로 진행된 교육은 '서비스-현장 순찰'로 바꿔 이론과 현장의 모습을 다 담아내려 했다.


서비스 교육은 크게 '극장 소개-기본 서비스 교육-사내 규칙 안내' 세분화 시켰다. 실질적으로 필요한 자료를 모으고 군데군데 동영상을 삽입해 분위기를 환기 시키는 포인트도 넣었다. 줄글로 되어있던 서비스 교육은 키워드 4개를 뽑아 강조했다. 많이 해봤자 다 기억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하자는 의도였다.


사내 규칙은 스텝으로 들어오면 누릴 수 있는 복지와 상벌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특히 각 근무지에서 생길 수 있는 부정(不正)을 예시와 함께 다뤘는데 아무래도 사회 초년생이 많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부정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고객이 티켓 구매 후 멤버십 적립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을 본인의 부모님이나 지인 이름으로 적립했다. 이러한 행위에 대해 대부분이 부정이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꽤 디테일하게 예시를 두어 교육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싱글싱글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부정을 저지른다.


마지막으론 어느 포지션이나 공통적으로 문의가 들어오는 내용으로 매뉴얼을 마무리했다.

분실물 수령 장소나 키오스크 사용, 스티커 사진기 같은 부속 기기 클레임 대응 등과 같은 것으로 말이다.


이렇게 하루의 교육이 끝나면 다음 날엔 현장 순찰을 진행했다. 포지션에 배치되기 전에 본인이 어떤 공간에 머물고 있는지 알려줄 필요도 있고, 무엇보다 비상시 대피 경로 및 소화기, 소화전 위치 교육이 필요해 신규 교육에 넣었다.


이렇게 교육하고 나면 각 포지션에 가도 어느 정도 완성된 스텝이 되어있었기에 관리자와 현장 스텝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 방식은 내가 퇴사하기 전까지도 유지되었다.


 


2. 소방 교육


입사하고 나면 한 달 안에 소방 교육을 받아야 한다. 물론 소방서 현장이나 온라인 교육이 아닌 그냥 극장 관리자가 교육을 진행한다.


보통 첫 달에는 화재의 종류와 소화기, 소화전 사용법, 그리고 비상 대피로에 대해 교육을 받는다.

이 교육에서 흥미로운 내용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서버에 불이 나면 제발 ABC 소화기(우리가 아는 빨간 소화기) 쓰지 말고 여기 있는 하론 소화기(가스식 소화기, 잔여물이 적게 남음) 써줘"고


또 하나는 "매점에 불이 나면 탄산에 호스 연결해서 밸브 열면 소화기처럼 쓸 수 있다"였다.


대부분 이게 제일 기억에 남는지 나중에 소화기 사용법을 물어보면 엉망진창으로 대답했다(속상).

극장에서 교육한다 해서 대충 할 듯 하지만 산소호흡기 착용에 심폐소생술 교육도 한다는 사실. 그리고 반기마다 소방서와 합동 훈련도 꾸준히 한다. 다중이용시설이기에 오히려 더 타이트했다. 퇴사할 때까지 교육했다(웩).




3. 위생 교육


음식점에 대한 위생이 이슈가 되면서 영화관 매점에도 단속설이 돌고 있었다. 거기에 발맞춰 우리 극장과 연을 맺은 멀티플렉스 브랜드 'A'는 자체 위생 점검을 시행했다.


개인적으로 우리 극장 매점은 깨끗하다 생각하여 자신 있었는데, 첫 점수가 70점대여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법정 위반은 없었음) 일반적인 깨끗함은 물론이고 그 이상이 있어야 했는데, 아무도 몰랐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일단 위생 점검 자료와 실제로 받은 권고 및 주의사항을 토대로 스텝 및 관리자 교육부터 해야 했다. 단순히 정리와 청소를 넘어 습관과 인지의 영역으로 만들어야 했기에 이론은 치우고 현장 실무 위주로 급하게 교육했다.


이것이 위생 교육의 첫 시작이었다. 이 이후로는 항상 90점대를 유지해 전국 상위권에만 있었고(바통을 이어받은 관리자는 항상 부담스러워했다), 이 교육은 매점 스텝이라면 꼭 들어야 했다.



-그때 형성된 습관과 인지의 영역 -


습관의 영역

1. 아무리 바빠도 현장 판매할 때는 손 씻고 물기 제거 후 손 소독하기.

2. 음식물 소분 시, 꼭 소분일과 폐기일 표기.

3. 스쿠퍼(팝콘이나 얼음을 퍼는 기구) 손잡이는 음식물에 닿지 않기.


인지의 영역

1. 적재 시 비음식물은 아래, 음식물은 위 보관. 같은 층 보관한다면 구분 가림막 필수.

2. 사용하는 세제나 약품의 MSDS는 근무지 내 파일에 비치.




4. MOT 교육


실제로 일어날만한 상황에 대해 스텝들이 고객과 직원으로 나뉘어 실전처럼 응대해 보는 교육이다.

스텝들의 연기력과 평소 응대 실력을 볼 수 있는데, 생각보다 모두 진지하게 임한다.


의외의 재미는 스텝의 응대가 미흡하면 담당 포지션 관리자가 이마를 짚는다는 것이다(절레절레도 포함).


모두가 웃으면서 받는 교육은 이게 유일한 것 같다. 그리고 서로의 포지션을 더 알고 가까워지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다. 신규 스텝들은 하기 싫어했다. 물론 이유는 창피하니까.





아직까지 마음에 걸리는 건, 신규 교육 매뉴얼을 재 리뉴얼하지 못했다는 거다. 슈퍼바이저에서 점장이 되면서 물밀듯 밀려오는 업무에 도무지 손볼 수 없었다.

리뉴얼하려고 새벽까지 남아 사진을 찍었지만 결국 쓰지 못했다. 그 정도의 아쉬움, 다른 건 없다. 그 외는 지겨웠다. 너무 많이 했다.





이전 10화 영화관의 낮과 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