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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삼 Feb 07. 2024

영화관의 낮과 밤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터벅터벅 올라가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이제 왔냐며 알은 체를 한다. 불꺼진 영화관은 언제봐도 참 낯설다. 내가 퇴사할 그 날까지도 참 낯설었다. 나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오는 매점 근무자는 내가 온 줄도 모르고 묵묵히 일만 한다. 어제 세척해놓은 기기 부속품들을 조립하느라 판매한 물품들을 정리하느라 팝콘을 튀기느라 바빠서 사람 오는거 모를만 하다.


사무실 보안을 해제하고 출근 카드를 찍는다. 귀에는 거슬리지 않지만 선명히 찍히는 날카로운 기계식 소리를 뒤로하고, 유니폼으로 갈아 입으로 간다. 그리고 어제 처리하지 못한 클레임과 오늘 이슈를 체크해서 노트에 옮겨 적는다. 금고를 열어 매표와 매점의 준비금을 꺼내고 스텝들을 모아 아침 조회를 한다. 아침 예매율, 오늘 이슈와 시제를 전달하면 본격적인 오픈을 진행한다.


홀에 설치된 모니터 여러 개와 극장 곳곳에 설치된 부속 기기(스티커사진기, 인형뽑기 등)를 켠다. 오늘은 덜 고장나기릴 바라는 마음도 포스트잇처럼 붙인다. 매표와 매점의 오픈 상황은 부관리자에게 맡기고 나는 상영관을 보러 간다.


극장은 관객이 입장하기 전, 각 상영관마다 스크린, 사운드에 이상이 없는지 테스트 삼아 영사기를 돌린다. 보통 영사 기사가 챙기지만, 상영관 컨디션 체크 겸 나도 참관했다. 특히 영화가 개봉하는 목요일은 꼭 참관해 체크한다. 스크린과 영상 사이즈가 맞는지(스크린 비율이 1.85:1인데 2.35:1 영화가 상영되면 알맞게 조정해야한다. 이 작업을 허투루하면 배우들의 목이 잘리는 대참사가 일어나기도 하는데 실제로 비율을 잘못 맞춰 관객들에게 사과한 일도 있었다), 사운드가 미송출되는 스피커가 있는지 등등 영사 사고는 정말 재앙이므로 예리하게 본다. 가끔은 내가 너무 일찍 올라가면 정적이 가득한 상영관을 만나는데 그럴 때면 조금 무섭기도 하다. 참고로 우리 영화관은 3관에서 귀신을 봤다는 내려오는 설화가 있다. 아쉽게도 나는 본 적이 없다.



조조영화, 보통은 아이를 등원 시킨 엄마들이 많이 온다. 따뜻한 커피 한 잔 시켜 호호 불어 한 두번 마시다 시간이 되면 각자의 영화가 상영되는 곳으로 간다. 가끔 어린이집 단체가 오면 홀은 활기로 가득찬다.  여러 곳이 겹치면 순서를 정해주어 입장을 도와준다. 같은 시간대 같은 영화라도 보면, 저쪽 어린이집 자리가 더 좋네, 왜 이렇게 붙어있네 하며 볼멘소리를 하지만 대체로 그 이상의 어필은 하지 않는다.


한바탕 바쁜 조조 시간이 지나면 극장엔 고요한 평화가 감돈다. 홀은 한가해졌지만 또 다른 ‘일’은 이제 시작된다. 어제 처리하지 못한 클레임을 연락하고 마감 시 에러난 정산을 바로 잡는다. 점심 쯤 매점 업체에서 물건이 입고 되고 영화 외장하드는 수시로 입출고를 반복한다. 들어온 선재물을 정리하고 매점 선입선출과 청결을 유지한다. 관리자끼리 만나는 건 어렵다. 그나마 같은 포지션 관리자끼리 근무면 회의도 하면서 밀린 업무들을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드물어 각자 포지션에서 밀린 업무의 진도를 뺀다. 관객이 많은 날은 물론 현장 상황에만 신경써서 극장의 좋은 컨디션을 유지한다.



저녁은 하루 중에 관객이 제일 많다. 학교를 마치고 회사를 퇴근하고 가족끼리 혹은 친구끼리 저녁을 먹고 영화관에 온다. 정말 볼만한 영화가 없지 않는 이상 저녁엔 항상 관객이 많다. 그래서 야간 스텝도 많다. 그들은 바쁜 것에 익숙해져 있고 빨리하는 것에 익숙하다. 물론 그러면서 놓치는 서비스적인 부분도 있지만 장,단점은 있는거니까. 그래서 그런지 주,야간 스텝이 근무가 겹칠때면(주말 오후쯤) 서로를 답답해하는 모습이 웃기다. 야간 스텝은 주간 스텝의 고객 응대가(느리고 멘트가 너무 많다), 주간은 야간 스텝의 고객 응대가(빠르고 불친절하다) 말이다.


저녁엔 하루를 마감하는 작업을 하기에 스텝들이 바쁘다. 관객도 많은데 마감 청소도 해야하고, 포스터도 바꿔야하니 다들 마음이 조급하다. 그러면서 오는 클레임은 물론 다 관리자 몫이다. 그렇게하다 흘러 넘치면 다음 날 주간 관리자에게 넘긴다.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남기지만 마음은 무겁다. 마지막 영화가 상영이 시작되면 그때부턴 정산과의 싸움이다. 오차는 없는 지, 차액은 없는 지 매표, 매점 꼼꼼하게 보면 시간이 꽤 흘러가 있다. 다음 날이 영화 개봉 요일이면 더 바쁘다. 각 상영관과 야외 포스터와 전단지를 전부 교체하고 없는 것들이 있다면 대체재를 빨리 마련해 셋팅해야 한다. 그리고 각 상영관마다 상영되는 영화를 셋팅해야 한다. 그리고 테스트까지 하면 밤은 어느새 새벽이 되어있다.



새벽에 스텝들과 건물에서 나와 헤어질때면 항상 기분이 이상했다. 차가 달리지 않는 도로, 인적이 없는 인도, 난시로 인해 가로등 불빛이 번져있는 이 디스토피아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집으로 가고 있지만 정처없이 걷는 기분. 아마도 잘 보이지 않는 미래 때문이었을까. 나의 하루도 불 꺼진 극장처럼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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