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0대에는 막연하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우리 엄마도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셨고 가족이 백화점에서 외식을 하는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었기에, 나 역시도 40대쯤 되면 백화점에서 우아하게 명품백 들고 쇼핑을 하는 중년 어머님의 모습을 상상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딸 셋 키우며 아빠의 월급으로 재테크 열심히 하시면서 자식들에게는 좋은 것 먹이고 싶고 좋은 것 해주고 싶어 했던 엄마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생각보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게 되면서부터 그런 삶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다양하게 쇼핑할 수 있는 매체들도 많이 있기도 하고.
내가 몇 년 전부터 외출 장소에 맞게 들고 다니는 가방들은 이러하다.
두 손이 자유롭기를 바라는 날에는 가볍게 맬 수 있는 작은 크로스백.
가까운 곳에 외출할 때 부담 없이 들 수 있는, 특히 여름철 가벼운 복장일 때 딱 좋은 에코백.
지인들과의 만남의 자리에 나갈 때 들고나가는 가죽 백.
가끔 격식을 차리는 자리에 나갈 때 한 번씩 들고 다니는 명품백.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가방 욕심은 사라지는 것이. 사실 지나고 보면 그다지 가방에 크나큰 물욕도 없었던 것 같은데 옷장 속에는 이름 있는 명품백 몇 개들이 보인다. 모두 20대에, 결혼 전에 구입했던 것들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한창나이, 열심히 공부해서 입사한 회사를 다니면서 매달 꽂히는 월급을 어떻게 운용할까 고민하던 시절, 일부는 여행에 쓸 돈을 꼭 남겼었다. 내 삶에 있어서 숨통이 틀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여행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당시에는 여행에 간다는 것은 꼭 면세점에 들르겠다는 의지도 있었다. 명품 화장품과 명품백을 사용하는 것이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 된 나를 대변해 주는 듯, 마치 나의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는 길인 듯 친구들과 면세점 쿠폰을 챙겨 아주 비싼 것이 아니어도 지갑이나 가방, 화장품을 호기롭게 쇼핑했고, 여행 후 남는 것은 추억과 사진, 그리고 나를 위한 이런 선물들이었다.
그래서 남아있는 명품백 중 가장 쓸만한 것은 뭐냐고? 결혼 때 장만한 루이 비* 그 모델뿐. 세월이 흘러도 격식을 차리는 자리에 들고 가도 괜찮은 그 가방뿐이다. 그래, 진정 좋은 명품은 세월이 흘러도 가치가 있다더니 그건 맞는 것 같다. 인정!
30대 나의 가방들은 아이 기저귀 가방과 두 손이 자유로운 배낭과 작은 크로스백, 그리고 에코백들이 있었다. 한참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중이었는데, 그 일이란 것이 집에서 동네에서 내 베이킹 공방을 오가는 것이므로 역시 잘 차려입고 다닐 필요도 없었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눈썹 휘날리게 일터로 가야 하고 또 아이 끝날 시간에 무섭게 달려와야 했으니 운동화 신고 동네 순이 복장에 에코백 하나, 이게 딱 좋았다.
40대에 접어들었는데 여전히 가방은 변하지 않았다. 거추장스러운 것이 싫고 가볍게 들 수 있는 것이 좋다. 요즘도 역시 가벼운 크로스백과 에코백이다.
젊을 때에는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 그리고 남과 비슷한 수준, 혹은 남보다 더 나아 보이고 싶어서 가방을 사고 명품을 찾았던 내 모습들이 있었다면 지금의 담백해지고 가벼워진 내 가방, 내 모습이 더 좋다.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제품들을 선호한다.
요즘 내 가방 안에는 스마트폰, 물티슈, 파우치, 지갑, 볼펜, 머리끈, 휴대폰 충전기, 책 한 권, 이 정도가 늘 들어있다. 딱 좋다. 내 가방은 실용적이고 부담 없고 이제 남들의 시선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변한 내가 나는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