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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Jan 26. 2022

내 가방의 변천사

그래서, 지금 네 가방은 뭔데?



가방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시간.


내가 20대에는 막연하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우리 엄마도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셨고 가족이 백화점에서 외식을 하는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었기에, 나 역시도 40대쯤 되면 백화점에서 우아하게 명품백 들고 쇼핑을 하는 중년 어머님의 모습을 상상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딸 셋 키우며 아빠의 월급으로 재테크 열심히 하시면서 자식들에게는 좋은 것 먹이고 싶고 좋은 것 해주고 싶어 했던 엄마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생각보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게 되면서부터 그런 삶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다양하게 쇼핑할 수 있는 매체들도 많이 있기도 하고.


내가 몇 년 전부터 외출 장소에 맞게 들고 다니는 가방들은 이러하다.


두 손이 자유롭기를 바라는 날에는 가볍게 맬 수 있는 작은 크로스백.

가까운 곳에 외출할 때 부담 없이 들 수 있는, 특히 여름철 가벼운 복장일 때 딱 좋은 에코백.

지인들과의 만남의 자리에 나갈 때 들고나가는 가죽 백.

가끔 격식을 차리는 자리에 나갈 때 한 번씩 들고 다니는 명품백.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가방 욕심은 사라지는 것이. 사실 지나고 보면 그다지 가방에 크나큰 물욕도 없었던 것 같은데 옷장 속에는 이름 있는 명품백 몇 개들이 보인다. 모두 20대에, 결혼 전에 구입했던 것들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한창나이, 열심히 공부해서 입사한 회사를 다니면서 매달 꽂히는 월급을 어떻게 운용할까 고민하던 시절, 일부는 여행에 쓸 돈을 꼭 남겼었다. 내 삶에 있어서 숨통이 틀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여행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당시에는 여행에 간다는 것은 꼭 면세점에 들르겠다는 의지도 있었다. 명품 화장품과 명품백을 사용하는 것이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 된 나를 대변해 주는 듯, 마치 나의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는 길인 듯 친구들과 면세점 쿠폰을 챙겨 아주 비싼 것이 아니어도 지갑이나 가방, 화장품을 호기롭게 쇼핑했고, 여행 후 남는 것은 추억과 사진, 그리고 나를 위한 이런 선물들이었다.


그래서 남아있는 명품백 중 가장 쓸만한 것은 뭐냐고? 결혼 때 장만한 루이 비* 그 모델뿐. 세월이 흘러도 격식을 차리는 자리에 들고 가도 괜찮은 그 가방뿐이다. 그래, 진정 좋은 명품은 세월이 흘러도 가치가 있다더니 그건 맞는 것 같다. 인정!


30대 나의 가방들은 아이 기저귀 가방과 두 손이 자유로운 배낭과 작은 크로스백, 그리고 에코백들이 있었다. 한참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중이었는데, 그 일이란 것이 집에서 동네에서 내 베이킹 공방을 오가는 것이므로 역시 잘 차려입고 다닐 필요도 없었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눈썹 휘날리게 일터로 가야 하고 또 아이 끝날 시간에 무섭게 달려와야 했으니 운동화 신고 동네 순이 복장에 에코백 하나, 이게 딱 좋았다.


 40대에 접어들었는데 여전히 가방은 변하지 않았다. 거추장스러운 것이 싫고 가볍게 들 수 있는 것이 좋다. 요즘도 역시 가벼운 크로스백과 에코백이다.


젊을 때에는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 그리고 남과 비슷한 수준, 혹은 남보다 더 나아 보이고 싶어서 가방을 사고 명품을 찾았던 내 모습들이 있었다면 지금의 담백해지고 가벼워진 내 가방, 내 모습이 더 좋다.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제품들을 선호한다.


요즘 내 가방 안에는 스마트폰, 물티슈, 파우치, 지갑, 볼펜, 머리끈, 휴대폰 충전기, 책 한 권, 이 정도가 늘 들어있다. 딱 좋다. 내 가방은 실용적이고 부담 없고 이제 남들의 시선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변한 내가 나는 나쁘지 않다.


그래서 명품백이 싫은 거냐고? 아니, 누가 선물 주면 고맙게 받을 준비는 되어 있지 뭐.


인간의 그래서 모순덩어리인 거다.



아들이 만든 에코백 그림, 실존하지 않는 대륙의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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