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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Jun 02. 2023

진인의 삶을 향해서.

장자 나를 깨우다. - 이석명

슬로우리딩 10기(2023.4.17~6.2)

장자 나를 깨우다. - 이석명


슬로우 리딩 멤버들과 함께 읽어온 책들이 쌓여간다. 나는 무엇을 찾기 위해 이렇게 책을 읽고 사유하며 사람들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가.

대단한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 다독의 여왕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책을 놓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많은 것을 바라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적어도 내가 책을 읽고 문장의 의미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은 그야말로 없을 ‘무’였다. 수많은 ‘자’로 끝나는 중국의 철학자들의 말들을 인용한 글들을 읽으면서도 생각했던 것은,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삶에 당신들의 말씀을 적용하기에 나는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각박한 현대사회를 치열하게 살고 있네요. 느림도 사유도 사치 같고, 시시각각 떨어지는 미션들을 해 나가며 살아가기 바쁘네요.”


반감이 가득했다. 뭐가 그리 앞을 보고 나아가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중요했던지, 자꾸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론적인 책들에 더 끌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이 들어가면서 철학자들이 하는 말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고 사유하게 되었다.

장자의 우화, 말씀 역시 그랬다.

처음에는 다소 엉뚱하고 극단적인 느낌이 다분한 우화들을 접하고 자신만의 사상을 풀어내는 장자의 태도에 의아함이 가득했다. 약간은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상황에서 어찌 저런 생각을? 그 시대에 남들이 가지 않는 길,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고 말하는 힘이 보였다. 어쩌면 장자는 모두가 YES를 외칠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장자가 말하고 싶은 것들은 어쩌면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크고 작은 상황의 변화를 벗어나 삶과 죽음, 모든 면에 대한 큰 그림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사실, 장자의 사상은 거들뿐, 우리는 충분히 나아가야 항 방향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데 현실을 살아가는데 치여서 못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나만 그런 것일까?

 

자유, 시비, 가치, 불이, 양생, 명, 생사, 수양, 진인

 

장자가 강조하는 단어들을 순서대로 적어본다. 이 단어들은 이 책의 챕터 제목이요, 순서대로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 이 단어들의 중간쯤, 아니 아니면 그만큼도 못 간 것 같다.

자유, 시비, 가치의 중함에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하다가 점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덕을 찾고 삶과 죽음에 대해 초월한, 통달한 장자의 태도는 여전히 공감이 어렵기도 했다. 특히 죽음에 대한 이해는 혹시 내가 누군가의 죽음, 나의 죽음이 맞닥뜨려 온다면 이해가 갈까? 아마 내가 더 삶을 살아보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게 될 깨달음이 장자의 말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확실했다.

 

장자의 ‘시비’ 부분에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원숭이들>이라는 제목을 만났다.
P56 양행은 대립하는 두 가지 입장을 모두 바라보고, 두 입장을 모두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나도 옳고 너도 옳다’는 양가적 입장이며, ‘이것은 저것일 수 있고 저것도 이것일 수 있다’는 전향적 사고다. 서로 각자의 논리가 있음을 용인하는 것이 양행이다. 이것이야 말로 시비문제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시비문제를 없게 하는 절묘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중략…
인생 전체로 보면, 특별히 더 행복한 사람도 특별히 더 불행한 사람도 없을지 모른다. 지금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면 머지않아 평안한 삶이 다가올 것이고, 지금 분에 넘치게 행복하다면 언젠가는 힘든 시기가 도래할 것을 예상해야 하지 않을까?

 

살면서 내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 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나도 적극적이고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의 사람이지만 강하고 억세지 못하며, 사람들에게 강요하면서 일어나는 분란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생각과 말이 무조건 옳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사람의 생각은 환경에 의해 세월의 흐름에 의해 언제든 바뀔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이다.

누군가의 말을 경청하지만, 꼭 맞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늘 양면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한다면 시시비비가 붙을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의견차이가 대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렇게 생각한 원인을 파악하고 결과 도출까지의 과정을 서로 함께 분석해 나가다 보면 어떤 결론에 이를 것이고, 그 결론을 주장한 이상 책임이 따른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장자가 말하는 ‘양행’ 하나만이라도 올바르게 깨우친다면 사람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의견충돌의 순간들이 조금은 정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웅다웅 살아 봤 자, 그 삶이 그 삶이고 고단했다가 평탄했다 가의  반복이다. 너무 허망한가? 아니, 단순하게 생각하면 좀 낫다.

 

“자유롭기 위해 깨어나야 하고, 변화해야 하며 현재의 나에 고착되지 않고 일상적인 나에 머물지 않고 나날이 새로워지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삶을 살아가면서 생기는 아픔과 상처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나 자신만이 나의 상처를 제대로 이해하고 올바른 치유법도 찾아낼 수 있다. 어쩌면 나의 아픔과 상처는 내가 선택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의 앞으로의 삶에 대한 갈무리를 잡아본다.

‘진인’

낮춤의 태도를 갖춘다. 사소한 것이라 하여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일이 딱 들어맞게 되어도 스스로 이루어 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못된 일이 있어도 지나간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외부환경에 영향받지 않는다.

현재의 삶에 온몸으로 몰입하며 살아가는 진인에게는 근심이라는 의식의 찌꺼기가 생겨나지 않는다.

 

내가 살아가는 삶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니까.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에 더욱더 풍성해지는 것이 삶이니까.

‘양행’과 ‘진인’을 두 가지를 새기면서 장자와 만났던 두 달간의 시간을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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