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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Aug 23. 2023

인생은 타이밍, 그때 그 열정을 상기하며..

이상하고 쓸모없고 행복한 열정  ㅡ신나리지음(느린서재출판사)



가족과 여름휴가를 떠나는 날.

아침 7시 반 비행기를 타려고 서둘러 공항에 도착했다. 새벽 5시 좀 넘어 도착한 공항에서 짐을 부치고 긴 수속을 마치고 탑승장 앞에서 대기하던 중이었다.

습관적으로 넘겨보던 인스타그램 속, 책 한 권을 소개하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고 쓸모없고 행복한 열정'


제목부터 묘하게 끌렸다.

'내가 좋아하는 일, 재미있는 일을 앞뒤 재지 않고 가볍게 당장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무거운 용기에 감동했다.'

'나의 단짝, 전학, IMF, 라디오헤드, PC통신, 영화마니아, 싸이월드, 결혼 그리고 곗돈.. 다시 피아노.. 80년대생에게 보내는 그 시절의 한 조각'

띠지의 문구들.. 정말,  잘 뽑으셨다.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80년대생의 심금을 울리는 몇몇 단어들의 나열만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북토크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갈까? 가볼까?

왠지 여행을 떠나는 들뜬 마음에, 다음 달부터 변하는 나의 일상 속에 뭔가 소소한 이벤트를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두려움은 없다. 그리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늘 그랬다. 마음이 끌리면 행동으로 옮겼다. 하지만 무방비상태로는 성격상 잘 되지는 않는다.

소소하게 장치를 만들어 놓고, 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움직일 뿐이다.


무작정 출판사에 DM을 보냈다. 북토크에 참가하겠다고, 참가비를 입금할 계좌를 받고 입금을 하기로 하고 답을 기다리던 중 비행기에 탑승했다. 옆자리 남편에게 말했다.

"나, 다다음주 금요일 저녁에 북토크 모임이 있어. 다녀올게."

그리고 질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될 대로 되라지. 비행기는 긴 준비시간 끝에 이륙을 한 듯했고 나는 착륙할 때까지 쭉 숙면을 취했다.

공항에 내려 로밍해 간 폰을 켰더니 출판사 담당자님으로부터 북토크 참석 계좌가 도착해 있었다.

그냥 바로 입금해 버리고 책도 주문해 버렸다. 이렇게 끌리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야!

앞뒤 재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4일간 열심히 여행을 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반가운 책이 도착해 있었다.

여행 전 두둥실한 마음에 저질렀던 일이 돌아오니 현실로 펼쳐지고 있었다. 마음먹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비교적 빨리 하려는 편이다. 그래야 후회가 없을 테니까.


이상하고 쓸모없고 행복한 열정이라니.

이 책을 읽고 싶게 된 것은 순전히 제목이 이끄는 마케팅에 현혹되어서가 맞다.

일상이 심드렁한 80년대생 아줌마에게 과거의 열정을 상기시켜 주는 도화선이 된 것 같았다.


한창 꿈을 키우던 과거 10대, 20대의 나는 늘 나의 인생에 도움이 될만한 책들만 찾아보던 처세서 사냥꾼이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의 책을 읽고 나면 마음이 불편하다. 물론 배울 점은 많은데 왠지 이질감이 느껴지고 아직 부족하지만 내가 지금 이 나이까지 살아와보니 어떤 상황에 대해 확실한 정답이 없더라. 확률을 굳이 따져보면 미리 준비하고 노력하는 자에게 성공과 영예가 안겨질 것은 당연하겠지만, 절대 그 확률이 우리 모두에게 들어맞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은 것 같았다.


이 책을 통해 어쩌면 현재의 나를 위로받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열정을 되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내가 가졌던 쓸모없지만 행복했던 그런 열정들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나에 대한 그리움, 연민, 많이도 변한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잠시 과거를 소환하고 곱씹고 싶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책장을 펼치기 전까지... 도대체 나는 여기에서 무얼 찾고 싶었던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다 떠나서 단순히. 이 책을 통해 열정부자였던 그 시절 나를 잠시나마 소환하게 해 주었으며, 책을 덮는 순간까지 숙제처럼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나의 열정은 무엇인지 찾고 싶다는 강박도 살짝 잔류한다.

읽는 동안은 재미있었는데 덮고 나니 다시 머릿속엔 현재의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한다.

또 시작이다. MBTI에 맞추긴 그렇지만, 여러 번을 해도 맨 앞은 E요, 맨 뒤는 J다..

뭔가 좀 딱딱 떨어졌으면 좋겠고, 이게 안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물론 해소할 수 있는 방법들이 나름의 소소하게 빠져든 열정들이었던 것 같은데 이 또한 몇 년 전부터 행방이 묘연해졌다. 뭔가 하지 않음 안 되는 불안감 같은 것도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늘 무언갈 하긴 하는데, 확신에 차서 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하는 것이었다. 열정을 쏟아붓지만 현재를 사는 것에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내 쓸모없는 행복했던 열정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건지 싶었다. 가만히는 못 있겠고 뭔가 빠져들 것에 갈수록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나이 들어가는 나에게 가끔 짜증이 난다.


엊그제, 모처럼 만난 친구가 나에게 묻는다. 뭘 그리 늘 열심히 하냐고. 멍 때리거나 쉬거나 좀 해보란다.


"그러게 말이야.. 가만히 있는 법을 잃어버린 거 같아. 뭔가 해야 할 거 같고 그래."


정말이다. 일종의 강박이다. 벌려놓은 것들이 있는데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쓸모없는 열정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다. 그냥 지속적으로 무언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걸까. 자꾸 열정의 행복여부를 떠나 열심히 고군분투해야 뭐라도 될 것 같다. 강박이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가 만들어 놓은 괴물이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터, 그러므로 번아웃도 훅, 상처받기도 참 쉽다.


과거로 과거로 돌아가본다.

회사생활하던 시절의 애증의 상황들, 학창 시절 빠져들었던 음악과 연예인 덕질에 대한 회상, 크고 작은 사회적인 이슈들, 여행에 눈을 뜨고 갈망했지만 혼자서 당차게 나가지 못한 아쉬움, 현실에 안주하기 위해 모험은커녕 대학 가고 바로 취업하고 그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했던 나의 밀레니엄 시기..

잠시라도,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멍했다.

맛깔나게 써주신 글들 덕분에 재미있고 짜릿했고 몽롱했고 내 청춘이 그리웠다.







P127  음악 전공이던 사수생은 내가 예술대를 오고 가는 걸 보더니 이런 말을 해주었다.

"네가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면 언젠가 뭔가 걸려들게 돼."


대학시절, 잊고 있었던 복수전공을 준비하던 때의 회상. 자꾸 찝쩍거리면 뭔가 걸리는 것인데 결국은 선택에서 포기해 버린 과거가 존재했다. 전공 이외에 복수전공을 하고 싶었다. 사실 영어를 전공하고 싶었다가 갑자기 고2 때 일본어에 빠져 대학입학 때 일본어 전공을 선택했다. 그런데 학교를 다니다 보니 뒤늦게 광고홍보학과가 너무 매력적이라 생각이 들어 복수전공을 해볼까 해서, 3학년때나 되어서 수강신청을 덜컥했다. 그러나 첫 수업을 듣고 생각했던 수업과 많이 다르고 어렵고 자괴감에 빠져 수강을 포기하고 다른 교양 학점들로 채워 학기를 이수했다. 만반의 준비 없이 질렀다가 된통 당한 것 같았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고 결국 영어와 일본어에만 집중해서 1년의 휴학기간 동안 계속 외국어 공부만 하다가 졸업식 전에 모기업에 취업하였고 그렇게 대학생활은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내 안테나는 너무도 짧았던 것일까. 왜. 나는 그때 그 정도밖에 열정을 쏟지 못했나. 살면서 후회 없이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망각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기억만 남기고 나쁜 기억은 삭제해 버리는 망각 말이다.



P145

여행이 주는 자유는 모든 역할로부터 자유다. 어디에 사는지,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 무엇을 했는지, 모두 지워지고 나의 몸 하나만 남는다. 그리고 국적, 소속된 나라 이외의 증명할 아이덴티티가 사라진다. 거기에 자유가 있다. 멈추지 않고 계속 이동해야만 하는 여행자는 그 무엇과도 질척거리는 관계로 들어가지 않는다. 거기에 고독이 있다. 그 자유와 고독을 사랑했다.


혼자 객기 부리며 떠나보지 못했지만, 책 속에 펼쳐지는 아는 여행지들이 반갑다.  남편과 혹은 친구와 떠났던 캄보디아의 유적지, 어지러웠지만 열정이 가득했던 방콕 카오산로드 구석구석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20대 중반, 친구와 떠난 방콕 카오산에서 함께 투어 하던 옆자리의 프랑스 남자들의 끝나고 맥주 한잔 할까? 제안이 있었다. 영어도 안되고 서양인이 무섭다며(?) 호텔에 가겠다는 친구의 말에 혼자 어울리긴 그래서 거절했던 순간이 기억이 난다. 그때, 혼자라도 갈 걸 그랬어.. 도전할 걸 그랬어. 그랬다면 또 어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남았을지 누가 알아? 무엇이든 부딪혀 보지 못하고 조심스러웠던 내가 자꾸 밟힌다.

결혼하고 아이와 남편과 떠난 두세 번의 방콕에서는 더 이상 여행지에서 그런 호의는 없었다.

역시, 리즈시절, 그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을 터. 쓸데없을 수 있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누군가와의 인연을 기대하기에 나는 너무 많이 변했다.








꿈을 키웠지만 쓸모없는 열정부자였던 나의 10대, 20대의 나에서부터 40대의 현재의 나까지.

나의 기억 속 모든 쓸모없는 행복한 열정들은 10대, 그리고 20대 중반정도? 까치로 멈춰버린 것 같아 조금 쓸쓸했다. 행복한 열정은 30대의 챕터에서도 있었는데, 바로 전공과 직업과 전혀 상관없이 열정으로 시작해서 일궈온 베이킹 하며 사는 삶 말이다.

그런데 왠지 어느 순간부터 현실에 치여, 그때의 열정, 행복만으로 빠져들지 못하고 경제적인 이유 현실적인 이유를 자꾸 계산하고 있는 현실적인 인간이 된 나를 발견한다.

잠시 다른 일을 해보고자 일탈을 해보았지만 역시 불안한 건 마찬가지 였다.

열정적으로 하려 했지만 방향은 자꾸 이상하게 틀어졌다.



그래서, 넌 지금 어떻게 살려고 하는 건데?

이 책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 뭔데?

없다. 그냥.

곧 나에게 다가올 잠깐의 쉼의 시간 동안 그 쓸모없는 행복한 열정을 다시 상기시켜 보려고 생각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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