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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Feb 02. 2022

동해 바다, 그리고 추억.

속초, 대포항


수도권에 살면서 산은 그래도 마음먹으면 가까이에 많이 있어 오를 수 있지만 바다는 그렇지 않았다.

가장 접근성이 좋은 바다는 서해지만, 그래도 동해바다가 더 좋았고, 모래와 뻘이 섞인 서해보다는 맑고 깊은 물, 파도가 철썩이는 동해바다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더 자주 찾았던 것 같다.


결혼 후 부산을 자주 가게 되면서, 제주도가 인기가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남해바다의 멋진 풍광과 바다의 멋을 알았지만, 사실 그전까지 동해바다는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지친 마음의 안식처이면서 젊은 날의 추억들이 가득한 그런 바다였다. 이제는 길이 좋아져 당일치기 강원도 여행도 가능하게 되었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차를 타고 구불구불 미시령 고개를 넘어 가야 강원도에 접근할 수 있었다.


어릴 적 가족들과 휴가철에 동해바다를 찾는 것은 당연했고, 20대가 되어 친구들과 여행을 가는 곳도 동해였다.


여행하는 멤버들은 다 달랐지만, 철썩이는 동해바다는 그때 그때 나의 지친 삶을 어루만져주었고, 많은 사람들과의  많은 이야기들, 추억들이 남아있는 그런 장소였다.


천진난만했던 어린 시절에는 가족들과 함께 동해바다가 가까이 있는 콘도에서 묵으며 물놀이도 하고, 항구에서 회도 먹고 인근 관광도 하며 즐거운 추억들이 가득했다면, 20대가 되어 친구들과 찾았던 바다에서는 사랑, 미래에 대한 두려움, 다양한 고민들, 그때만 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간직한 채 동해바다를 찾았었다.


20대 때 고등학교 친구들과 찾았던 강원도 바다. 자주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이 바다여행이 우리 셋의 마지막 바다여행이 될 줄은 그땐 몰랐다. 살다 보니 생각보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 가기가 쉽지 않은 현실적인 상황들이 펼쳐질 줄은 그때에는 잘 몰랐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닷가를 산책하며 이런저런 포즈들을 취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땐 뭐가 그리 즐거웠을까. 까르르 거리며 사진 찍고 웃고 떠들고 별게 없어도 참 즐거웠다.


구불구불 버스를 타고 도착한 속초 대포항. 입구 앞에 유일했던 새우튀김 트럭에서 튀김을 사 먹었고, 적당한 곳에서 회를 한 접시 떠서 포장했다. 당시 대포항에는 프라이팬과 불편한 좌식의자, 테이블 하나씩 놓고 장사를 하시는 아주머니들이 모여있는 장소가 있었는데, 쭈뼛쭈뼛 눈치를 보며 고른 자리에 착석을 하고 주문을 하면, 그 자리에서 통통한 오징어순대를 턱턱 잘라 계란물 바로 입혀 치익치익 지져주시던 정겨운 시장통의 모습이었다. 친구들과 잘 마실 줄도 모르는 소주 한 병과 오징어순대를 곁들여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던 추억. 정확히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렇게 시작된 저녁 식사는 숙소에 와서도 밤 새 계속되었던 것 같다.


결혼 후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과도 속초를 종종 찾았다. 부산 출신 남편은 동해를 자주 못 가봤기에, 가깝게 자주 찾을 수 있는 동해바다를 의외로 좋아해 주었다. 그와 찾는 바다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다.


몇 년 사이 속초, 강릉에는 맛있는 먹거리들이 넘쳐났고 우리가 속초를 찾던 그때의 잔잔한 감성은 찾아보기 힘든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대포항은 잘 지어진 건물에서 쾌적하게 회를 쇼핑할 수 있게 변해있었고, 오징어순대를 파는 곳들은 많지만 그때처럼 아주머니가 바로 그 자리에서 프라이팬에 지져 주시던 오징어순대, 그 감성은 사라졌다.


아직도 친구들과 동해바다를 찾았던 기억은 생생한데, 지금은 너무나 변해버린 속초는 옛 추억을 떠올리는 나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겨준다.


요즘 바다를 찾는 사람들은 여행 간 김에 맛있는 것도 먹고, 오션뷰의 멋진 풍광을 바라보며 묵는 숙소, 뷰 좋은 카페에서 추억을 쌓으러 가는 여행자들이 대부분이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다음 세대의 바다는 또 다른 이미지로 남아 있겠지 싶다.

바다에서 만들어 내는 많은 추억들. 모두들 그 추억들을 쌓으러 바다에 간다. 누군가에게 바다가 주는 의미는 사람과의 추억이 아닐까.


문득, 친구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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