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날이 대단한 날이 아니었어도, 대단한 사건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어도, 기억의 형태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같은 상황이어도 각자의 삶 속에서 느끼고 생각한 바가 다 달라서, 시간이 한 참 흐른 뒤에라도 각자가 느끼는 그 사건들을 퍼즐처럼 껴 맞춰 보는 시간들도 새롭게 느껴진다.
팬더믹이 길어진 덕분에 우리 가족에게 변화가 생긴 게 있다면, 바로 ‘여행’을 살짝 내려놓았다는 것이다. 여행과 현실의 삶을 적절히 조율하며 살아온 가족이었지만, 그 평범했던 일상은 본의 아니게 팬더믹이라는 상황으로 인해 무너져버렸다. 우리 가족은 이제 근 3년째 국제선 비행기를 타지 못한 채, 더 먼 세상으로 발돋움해 보고 싶었던 여행자의 세포를 접어야 했다.
내가 바라는 여행은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다른 나라, 다른 문화를 접하고 싶고, 세상 밖 사람들이 이야기, 음식, 습성, 그리고 그들의 삶이 궁금했다. 우연히 들어선 골목길에서 만났던 귀여운 새끼 고양이, 한적한 주택가에서 발견하는 작은 카페, 사람 냄새나는 시장통의 분위기와 먹거리들, 그리고 사람들을 구경하는 그런 소소함이 좋았다.
팬더믹은 평범했던 지난날들을 평범하지 않게 만들어 준, 그 덕분에 삶에 있어서 잃어버린 것들에 관해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안겨준 애증의 상황이기도 했다.
아들이 내일 학교에 성장 사진들을 가져가 활동을 한다 하여 함께 도란도란 추억을 이야기하며 사진들을 골랐다.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주로 여행 다니며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아들 돌 무렵부터 거의 매년 한 두 번씩 가까운 나라들을 다니곤 했었는데 주로 다녔던 곳은 일본이었고 좀 커서 갔던 싱가포르나 태국에 대한 기억들은 더 또렷하게 남아있다.
아들은 관광지나 유명한 맛집, 유명한 거리보다는 우연히 들어간 아이들이 만든 미술작품 전시를 보았던 기억, 걷다가 우연히 만난 동네 놀이터에서 놀았던 기억, 덥고 힘들었을 때 먹었던 달콤한 아이스크림 한 입의 순간, 졸린 눈을 비비며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여행 가는 생각에 들떠했었던 소소한 순간들을 기억한다.
“엄마 나 일본 또 가고 싶다. 사진 보니까. 그때 참 좋았던 것 같아.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힘들겠지 나도 알아.”
엄마도 가고 싶다. 일본 친구들, 언니들도 만나고, 3년째 인사도 못 드린 하늘나라에 계신 마쯔이 언니 묘에 가서 인사도 드리고 싶고, 일본 감성 디저트도 맛보고 싶고. 고즈넉한 골목길도 걷고 싶고, 아침마다 울리던 뽀롱뽀롱 횡단보도 소리도, 까악 까악 울어대는 까마귀 소리도 괜스레 그립다. 가게에 들어서면 활기차게 외치는 “이랏샤이 마세” 소리도 그립고, 띠롱띠롱 전자오락기 소음과 일본 애니메이션 대사와 음악이 뒤섞인 전자제품 양판점 ‘요도바시카메라’에서 아들 때문에 꼭 들렀던 오못챠(장난감) 코너나 건프라 코너도 생각나네. 일본 잡화를 구경하고 한국 지인들을 위한 선물들을 잔뜩 골랐던 돈키호테 잡화점의 요란스럽고 화려한 건물도 아련하고, 장난감처럼 예쁘게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스시와 독서실처럼 파묻혀 먹던 일본 라멘도 그립다.
이제 이러한 것들은 한국에서 대부분 누릴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살 수 있는 것들이 되었고, 기뻐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의미는 내가 그곳에 있었고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먹은 순간들이 소중하기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대단하고 거창한 여행이 아니었어도, 그 속에서 우리 세 가족이 보고 듣고 느끼는 바가 다 달랐던 것처럼, 행복했던 여행의 기억들은 각자의 가슴속에,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한 번씩 일탈을 꿈꾸며 떠났던 여행을 추억하면서, 그때의 행복했던 시간들을 이야기 나누며 웃고, 언젠가 또 떠날 날이 올 것이라고 바래보며 지금의 평범하지 않은 날들을 견뎌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