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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Mar 11. 2022

아름다운 공명, 울림을 주는 사람

깊이 있는 울림


공명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무척이나 생경했다.


쉽게 말해 공명이란 한자 뜻 그대로 남과 더불어 우는 일이다. 남이 울면 따라오는 것이 공명이다. 남의 고통이 갖는 진동수에 내가 가까이하면 할수록 커지는 것이 공명인 것이다. 그 소리가 울려 퍼져 음악을 만들 듯 우리 사회에도 아름다운 공명이 울려 퍼질 수 있다면 그땐 분명 우리 사회는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슬퍼할 줄 알면 희망이 있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공명의 사전적 의미 : 남의 사상이나 감정, 행동 따위에 공감하여 자기도 그와 같이 따르려 함.


공감과 비슷한 느낌인데 조금 더 깊이 있는 울림이 있는 의미로 생각되었다.


본의 아니게 일을 쉬게 되었던 재작년, 작년 초까지.

 불균형의 삶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였다. 집 문제, 내 일, 내가 끌고 가고 싶었던 아이의 학습방향 모든 상황들이 어긋나고 있음을 감지했다.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싫어서 한국을 떠나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점점 쌓여가는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은 나빠지고, 학교에 가지 못하고 어설픈 온라인 수업만 하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속상했다. 10년간 큰 소리 한번 지르고 키워본 적 없던 순한 아들에게 모난 소리를 하고 심지어는 매를 들기도 했다. 나의 스트레스와 감정 소모를 아들에게 풀고 있는 격이었다. 그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 예민했고, 날이 서 있었다. 변해버린 삶들이 참 야속했다.


정말 한국이 치가 떨리게 싫었던 시간들이어서였을까. 하루빨리 남편이 해외 주재든 뭐든 나갈 기회만 있었음 좋겠다 란 생각이 간절했었다. 아이를 이 좁은 땅덩이처럼 좁은 시야를 가진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넓은 세상에 나아가 시야를 넓히고, 이 세상은 보다 폭넓은 방향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던 중, 나는 우연히 SNS에서 인도에 사는 선량 작가님을 알게 되었고, 매일 끊임없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글쓰기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진솔함 가득한 작가님의 피드들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 분은 어찌 이리 꾸준히 글을 쓸까. 피드에는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인도 삶에 대한 절절하고 솔직한 마음들이 적혀있었다. 꾸밈없고 솔직한 작가님의 문체가 좋아서 계속 글을 보고, 소소하게 소통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별개로, 나는 여전히 아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입시에 찌든 한국식 교육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읽어본 ‘프랑스 영재교육법’ 책을 통해 읽어본 프랑스식 교육과 학교가 더욱더 궁금해졌고, 그러다가 찾아본 책이 선량 작가님이 쓴 책, ‘프랑스 학교에 보내길 잘했어.‘였다. 해외살이를 하는 친구가 쓴 에세이처럼, 덤덤하게 자신의 교육관을 따라가는 작가님과 아이들이 부러워졌다. 그러면서 되돌아보았다. 나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있는가..

책 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편견 없이 포용과 존중을 배우는 사랑스러운 두 아이와 엄마의 성장기.’

‘단정짓지 않기, 기다려주기, 경계 없이 헤엄치게 하기, 지금, 여기 행복한 아이가 자란다!’


내가 그동안 아이를 키워오면서 관철시키려 노력해왔던 나의 생각과 같았다. 그런데 나는 여러 가지 상황이 변했다는 핑계로 불안정한 감정을 아이에게 미친 듯이 쏟아내어, 아이도 나도 혼란스러운 시간들을 보내게 했던 것이다. 아차 싶었다.


한국에서 한국학교를 다니는 아이에게 프랑스 교육법을 관철시킬 수는 없었다. 학교도 선생님도 마인드 자체가 달랐다. 내가 혼자 아이를 바꾸게 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럴수록 더 내가 꿈꾸던 방향의 교육을 꿋꿋하게 고집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 그 아이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앞으로 얼마나 세상을 폭넓은 시야로 보며 크게 될 것인가를 생각했다.


공명, 어찌 보면 나는 작가님의 글쓰기 모임에 합류하여 글을 쓰면서 그녀의 사상이나 감정, 행동 들에 공감하여 따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내 글을 격려해주시는 글멘토 선량 작가님과 글쓰기 멤버들과의 기분 좋은 소통도 좋았다. 작가님과의 글쓰기 모임 덕분에 나의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글로 쏟아내며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이 정리되어감을 느꼈다.


아이에게 혼란스럽지 않은 엄마의 모습으로, 삶에 대해 생각하고 글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조용히 대입해 보다 보니, 묘하게 하나 둘 매듭이 풀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아름다운 공명이었다.


작가님과 글쓰기 멤버들의 글을 읽고 쓰고 공감하며 서로의 글을 나누면서 울고 웃으며 마음의 앙금을 풀어나갔다.

대단한 실력은 아니지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이 글이 또 누군가를 공명하게 해 줄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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