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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Mar 15. 2022

5년 전의 나

추억여행



오늘의 사유하기. 5년 전의 나로 추억여행을 해보았다.

그래도 그동안 꾸준히 기록해 두었던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덕분에 2017년의 나, 우리 가족의 삶을 들춰볼 수 있었다. SNS에 꾸준히 기록하던 습관 덕분에 5년 전의 ‘나’는 무얼 하고 있었나 되돌아볼 수 있었고, 과거로의 추억여행이 시작되었다.


2017년은 아들이 7살 때였다. 나와 남편도 역시 지금보다 5년이나 젊어서인지 사진 속의 우리 둘은 참 앳돼 보였다. 나는 베이킹스튜디오 운영을 시작한 지 2년이 막 지나가는 중이었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스튜디오강의와 예약주문, 지역 마켓 참여, 외부 출강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베이킹 관련 일들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스튜디오에서 동네 엄마들에게 재능기부로 일본어를 가르치기도 했었다. 일과 육아와 살림, 남편을 챙기며 바쁘게 살았던 시간들이었다.


5년 전 그 해에는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다녔다. 여름휴가로 강원도 구석구석을 여행했고, 언니, 조카들과 함께 오사카, 나고야 여행을 갔었다. 레고덕후 아들은 나고야 레고랜드의 추억을 아직까지도 이야기한다. 7살 아들에게 얼마나 행복했던 시간이었을지 사진 속 아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또한 그 해에는 친정부모님과 결혼 10주년 기념 제주도 여행도 갔었고, 주말마다 하루, 이틀짜리 여행을 다니면서 박물관, 미술관 비롯 다양한 체험들을 통해 아들 견문도 넓혀주고 나도 콧바람을 쐬며 참 바지런하게 다녔었다.


 1년의 계획을 세울 때, 남편의 회사 휴가 일정을 짤 때에는 늘 비수기에 주말 앞뒤 꽉꽉 채워 길게 여행을 다녀올 수 있도록 날짜를 조정하고 스튜디오 일정을 맞추어서 멀리 떠날 계획을 짜곤 했었다. 먼 나라가 아니어도 한 도시에서 며칠씩 머물러 보며 도시를 즐기고 해외 친구들도 만나고, 이런 식의 휴가 계획들이었다.


매 해 여행경비에는 어느 정도 비용 지출이 있었고, 내가 회사를 그만두게 된 이후에도 베이킹 일을 하면서 벌게 되는 돈들을 여행경비로 충당했다. 자영업은 내가 일 한만큼 돈을 벌게 되는데 나는 육아와 병행하며 스튜디오를 운영했기에 공격적인 수입창출을 내지는 못했다. 그저 여행경비를 내가 벌 수 있음에 행복했다. 이 또한 남편이 회사를 다니고 있기에 가능했던 삶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해외여행길은 막혀버렸고, 위험을 무릅쓰고 비행기를 탈 만큼의 여행 중독자는 못 되나 싶다. 이제는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했다고 해야 할까. 이제는 그때에는 걱정하지 않았던 금전적인 문제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시기에 봉착했다.


코로나로 인해 삶의 많은 부분들이 변했다. 집값 차이가 나는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경제적으로 혜안을 넓히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속상했다. “5년 전에 뭐라도 준비했었다면..”이라고 후회하기엔 이미 늦어버렸고. 지나고 보니 그때에는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올 거란 일말의 희망조차 거론되지 않던 때였다.


하지만, 그다지 돈에 얽매이지 않고 살았던 그때, 가족이 함께 여기저기 여행 다녔던 시간들은 모두 추억이 되었다.


삶에 가치를 두고 있던 ‘여행’을 즐겼고 많은 경험을 쌓아볼 수 있었기에 후회는 없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경험들, 7살의 아들이 겪어 볼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시켜주었기에 여전히 후회는 없다. 모든 경험들은 인생에 자양분이 되어주었고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5년 전, 일은 바빴지만 즐거웠고, 아이는 해맑았으며, 얽매인 것들은 있었지만 여행이 주는 그 ‘맛’ 덕분에 버텼었다.


그래서 여전히 여행이 고프다.

12살이 된 아들에게 직접 발로 걷고 눈으로 보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데 몇 년째 못해주는 것 같아 참 아쉽다.


그래서 앞으로의 5년도 기대가 되는 바이다. 지난 5년도 좋았지만, 앞으로의 5년은 더 희망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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