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풀려가나 보다. 이제 우수와 경칩도 지나고 다음 주면 춘분을 앞두고 있다. 즉, 봄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것인데, 나는 왜 아침저녁으로 왜 이리 손발이 한 번씩 시려오는지 집에서는 여태 니트 가디건을 벗어놓지 못하고 싸매고 있다.
오늘은 봄노래 한 곡을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언제나 나에게 그대는 봄이야.
척 봐도 시작하는 저들 어쩐지 웃음 나~
그때 우린 저들 같았을까? 떠올려 보지만,
그래 마냥 좋았어 다시 내겐 없을 만큼 ~
허나 지나버린 얘기인데 웃을 뿐이야~
봄바람처럼 살랑~날 꽃잎처럼 흔들던 사람.
꿈처럼 지난날들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봄바람처럼 살랑~ 내 가슴을 또 흔드는 사람.
언제나 나에게 그대는 봄이야.~
-이문세의 봄바람.
이 노래 가사를 음미하고 듣다 보니, 처음 만났을 때, 따듯하고 맑은 미소가 아름다웠던 남편이 생각났다.
봄이 들어서는 2월에 태어난 그.
이문세 노래들을 즐겨 듣던 그다.
첫인상이 좋았다. 단정한 옷매무새, 듬직해 보이는 체격에 뽀얀 피부, 검정 뿔테 안경, 선한 미소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매주 데이트 코스를 짜고 어딘가로 날 데리고 가 주었다. 어딜 가는지 딱히 말해주지 않아서 더 흥미로웠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웃찾사 코미디 프로그램 공개방송도 데리고 가주었고, 수목원, 경복궁 삼청동 산책(이 때도 높은 샌들 신고 나갔는데 엄청 걸었지..), 창덕궁 규장각, 옥류천을 도는 예약제 궁투어, 퀴즈 프로그램 사전 모임 하는 방송국까지;; 그전에 만나던 남자들과는 사뭇 다른 다채로운 데이트 코스를 잡아주어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흥미 유발을 제대로 해준 사람이다.
설사 이 남자랑 사귀지 않아도 나는 주말마다 여행하는 기분으로 여기저기 쏘다니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추후에는 이런 계획들이 그가 아주 열심히 고민하고 짠 작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언제나 그는 큰 산처럼 우리 가족의 듬직한 가장이 되어 주었다.
함께 15년을 살아오면서 눈살 찌푸릴 일이 어디 없었을까.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연애할 때, 신혼 초에 보았던 그의 설렘과 수줍음이 서려있는 맑은 미소를 떠올린다.
지금은 우리 둘 다 많이 변했고, 이제 서로의 속옷 빨래를 개키고 방귀를 뿡뿡 뀌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주말부부를 하다 보니 평일에 없는 남편의 빈자리가 이따금씩 느껴진다. 덩치는 커도 생각도 많고 감성적으로 여린 남편인지라, 늘 많은 대화를 하며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중요한데, 매일 그렇지 못해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열심히 각자의 시간들을 보내고 만나는 금요일 밤에는 봇물 터지듯 수다타임이 밤늦게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그런 시간도 우리에겐 소중하다.
노래 가사처럼, 꿈처럼 지난날들 이젠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때 보다 더 편한 사이로 곁에 머물러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에겐 봄처럼 따듯한 미소를 지닌 그가 있으니까. 올해도 우리는 함께 새로운 봄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