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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Mar 22. 2022

좋아서 하는 일

베이킹 선생님입니다.



“시 한 편”


너무 많이 알려고 애쓰지 마.

너무 많이 가르치려고도 애쓰지 마.

아는 것이 힘이 도리일 때도 있지만

모르는 것이 약일 때도 있잖아

알 권리가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모를 권리가 있는 거야

사랑하는 데 무슨 지식이 그리 필요할까

오늘 네가 그저 평화롭기를

오늘 네가 그저 아름답기를


-오늘 너에게, 홍영철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장래희망으로 적곤 했던 ‘선생님’

나도 그 많은 장래희망들 중 가장 오래 가지고 갔던 장래희망이 바로 ‘선생님’이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미술 선생님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말이다. 물론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면서 다른 분야로 바뀌었지만.


그런데 의아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돌고 돌아 지금 ‘선생님’이라 불리는 일을 하고 있다. 아이들 과목별 과외선생님, 일본어 과외선생님 정도는 했었어도 내가 베이킹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사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완벽하게 그 분야에 대해 학위를 따고, 전문가의 경지에 이른, 그 분야에서 엄청난 노력을 했고 성과를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비전공자인 내가 이쪽 분야를 가르치고 있다고 하니 의아해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테다.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전공하지 않았던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뒤늦게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애써왔고, 경력을 쌓고 경험을 쌓아가며 노력해왔다.


밤새워 레시피 연구를 하고, 오븐과 사투를 벌였으며, 강의를 들으면 내 것을 만들기 위해 시간과 노력과 돈을 썼다. 만드는 것이 너무 즐거워 계속 만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다 나눠주고도 또 만들고 샘플 테스트하고 반복되는 삶이 계속되었다. 돈이 목적도 아니었고 그저 만드는 게 재미있어서 매달렸고, 선물하는 기쁨과 뿌듯함이 좋아서 매달렸다.


새로운 디저트를 만들어 내고 내 입맛에 맞게 레시피를 조절하고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선물할 때의 설레임, 그런 과정들은 나에게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만약 생계형으로 돈을 바라보고 시작했다면 절대로 못했을 일이고, 지금 생각해도 그렇다.


열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고, 일이 잘 되어도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따라오는 대신 여기저기 근육통과 인대 손상, 건강 이상이 오는 일이다. 하면 할수록 체력을 요하는 일이고, 진정한 직업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오래 가져갈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학기별 센터별로 강의안을 구상하면서 새로운 메뉴들을 연구하고 고민하곤 한다. 아이들과 성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기에, 각각에 맞는 메뉴 구상, 그에 따른 시간 안배, 재료 구성, 각 센터별 설비에 따른 작업성 등을 고려해가며 짜내야 할 것들이 많아 적잖은 스트레스가 있다. 그래도 막상 수업이 열리면 설렌다.


내가 이 분야에 뛰어든 이상, 뭐라도 이뤄내어야겠다는 악착같은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처음 이 일을 선택했을 때처럼 지금도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고 있다.


요즘은 자신을 브랜딩 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글과 강의, 출간 등의 루트를 통해 ‘나’를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요즘의 나는 마음이 두 갈래로 갈라져 갈팡질팡이다.


맹렬하게 뭔가 하여 지금보다 더 한 발 나아가야 할 것 인가. 아니면 지금 하는 것들을 열심히 하며 유유히 살아갈 것 인가.


나는 그저 만드는 과정과 가르칠 때의 뿌듯함이 좋다. 가르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관계에서 오는 감정들이 좋다.

그냥 이 정도의 행복감을 가지고,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 나도 요즘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나는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내 할 도리를 다 할 뿐이다.

베이킹은 즐겁고 재미있고 내가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재는 것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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